900쪽 가까운 소설을 한 편 읽는다고 가정해보자. 꼭 범죄소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 작품 안에서 범죄가 발생한다.
그럼 그 범죄가 어떤 형식으로건 해결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적당할까. 다시 말하면 900쪽 분량의 소설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작품 안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것이 적당할까.
사실 이건 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건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인물들이 스스로 행동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작가 자신도 모른다.
호흡이 빠른 소설의 경우 단 하루 또는 일주일 만에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소설은 무척 템포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들도 거기에 맞춰서 숨가쁘게 읽어나가야 한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몇 년 또는 몇십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려면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결말을 알기 위해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람을 죽이고 도망다니는 부자존 어빙이 2009년에 발표한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대략 900쪽 정도 되는 이 작품 안에서 흐르는 세월은 약 50년이다. 50년의 세월을 900쪽에 담아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존 어빙은 그 일을 해냈다.
작품은 1954년 미국의 뉴햄프셔주에서 시작한다. '트위스티드리버'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는 작은 마을이다. 많은 벌목꾼들이 나무를 베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다. 그렇게 베어낸 나무를 강물에 띄워서 하류로 내려보낸다. 많은 벌목꾼들이 있기에 그들을 상대로하는 음식점이나 술집도 있기 마련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벌목꾼들을 상대로 요리를 하는 요리사의 아들이다. 그 요리사의 아들인 12세 소년 대니는 어느날 착각과 실수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사람을 죽였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대신에 대니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아들과 함께 야반도주를 한다. 대니의 아버지와 친한 친구였던, 케첨이라는 이름의 벌목꾼이 이들의 도주를 돕는다. 대니와 그의 아버지는 뉴햄프셔를 떠나서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50년 동안 보스턴·버몬트주를 거쳐서 국경을 넘어 캐나다의 토론토에 머물기도 한다.
이들 부자를 뒤쫓는 사람도 있다. 당시 트위스티드리버 지역의 보안관이다. 그는 의문의 살인사건에 이들 부자가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고 수십 년 동안 대니 부자를 추적한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건, 보안관과 대니 부자가 만나면 과연 어떤 장면이 만들어질까?
자신의 과거를 숨기며 보낸 시간들대니 부자를 쫓는 보안관의 추적은 50년 동안 이어진다. 그 세월 동안 누군가를 쫓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동안 도피생활을 한다는 것도 그에 못지 않다. 뭔가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사람을 죽이고 도망다닌다면 그 심정이 어떨지는 말할 것도 없다.
대니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도피 중이기 때문에 자신의 실명을 밝히지 못하고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한다. 대니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하긴 도피생활을 하다보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처음보는 사람들 앞에서 숨겨야 할 것이다. 본명을 숨기고 과거를 감추고 태어난 곳을 속여야 한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럼에도 뭔가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에서 12세로 등장한 대니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환갑이 넘는 나이로 글을 쓴다. 누군가를 추적하고, 또는 누군가에게서 달아나는 데에는 50년의 세월도 부족할지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인생을 살면서 도망다니는 일 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쫓아다니는 일도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 1, 2. 존 어빙 지음 / 하윤숙 옮김. 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