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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화산을 낀 호수섬, 오메테페

짐 검사랄 것도 없었다. 무장한 경찰들이 바리케이드 너머로 보였지만, 그들이 필요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파나마에서 넘어오는 국경과 달리, 조용하고 한산한 코스타리카 국경을 통과하는 데에는 30초가 걸렸다. 일자로 이어진 무국경 도로를 따라 5분 남짓 걸으니 니카라과의 국경이 나왔다. 그런데 그 곁에 함께 나부끼는 코스타리카의 국기가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일 주일 내내 비가 오는 화산 아래에서 최악의 크리스마스를 맞으면서 화산은 보지도 못했고, 태평양에서는 핸드폰을 도둑 맞았다. (게이 사건은 입 밖에 꺼내기도 싫다.) 그러나 막상 국경을 넘던 그 날, 무엇하나 제대로 된 일이 없었던 코스타리카의 국기는 한참 동안 내 발목을 붙들었다. 마치 그곳에 누군가 손잡아 줄이라도 있는 것처럼. 결국, 나는 다시 오겠노라고 다짐을 하고야 말았다.

오메테페로 가는 길  - 국경에서 치킨버스 1시간, 다시 보트로 90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오메테페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호수 위의 섬이다.
오메테페로 가는 길 - 국경에서 치킨버스 1시간, 다시 보트로 90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오메테페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호수 위의 섬이다. ⓒ 김동주

국경을 갓 넘은 니카라과는 어딘가 아프리카를 닮은 듯한 모습이다. 널빤지와 판자로 대충 지어진 가게들이 그렇고 모래와 흙으로 덮인 도로가 그렇다. 버스정류장에 들어서 있는 수많은 치킨버스를 보고 나니 맥이 풀렸다.

코스타리카가 왜 '중미의 낙원'으로 불렸는지를 실감했다. 치킨버스를 타지 않고 이동한다면 그곳이야 말로 낙원이다. 다행히도, 페리를 타는 곳까지는 반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화산에 미련이 남았던 나는 수도가 아닌, 두 개의 화산을 낀 호수 섬 오메테페(Ometepe)로 향했던 것이다.

두 개의 화산  - 호수길 위로 섬이 가까워지면, 두 개의 화산이 또렷히 보인다. 왼쪽의 큰 산이 콘셉시온, 오른쪽이 마데라스 화산이다.
두 개의 화산 - 호수길 위로 섬이 가까워지면, 두 개의 화산이 또렷히 보인다. 왼쪽의 큰 산이 콘셉시온, 오른쪽이 마데라스 화산이다. ⓒ 김동주

처음에 나는 니카라과 호수(Lake Nicaragua) 크기에 놀랐다. 티티카카를 보고 온 후라지만, 화산이 불을 뿜는 호수라니. 멍하니 호수를 보고 있으려니 섬에 사는 주민이라는 아저씨 한 분이 와서는 이 호수에 상어가 산다고 말해 주었다. 상어가 민물에 살았던 가라고 잠시 생각하다 어처구니없는 놀림이라고 생각한 나는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선, 니카라과 호와 연결된 강을 따라 불과 200m만 거슬러 오르면 카리브해라는 것. 때문에 카리브해 연안에 살던 상어는 지각변동 전에 여기에도 있었고, 오랜 세월이 지나 자연스레 진화했다는 것이다.

나도 진화하고 있다고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코스타리카에서의 기억은 혀로 자꾸 건드리게 되는 입천장의 헐은 상처 같은 기억이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산봉우리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뱃머리로 뛰쳐나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 그는 이야기를 이었다.

"큰놈이 콘셉시온이고, 작은 게 마데라스야. '오메'가 산이고 '테페'가 둘이라는 뜻이지."

큰놈은 올해 벌써 한 번 분출했지만, 작은 녀석은 이미 심장이 멈춘 지 오래라는 말도 덧붙였다. 조금 더 섬에 가까워지니 콘셉시온(Concepcion)에는 마그마가 흘러내려 패인 자국이 선명했다. 푸른 녹음을 걷어내고 깊게 패인 상처의 윗부분에는 부끄러운 흔적을 덮으려는 듯 거짓말 같은 삿갓 모양의 구름이 걸려있다. 호수 한 가운데의 섬에 있는 화산이라니. 이토록 드라마틱한 곳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오메테페의 선착장  - 아직은 관광지로서의 모습이 드문드문한 오메테페는 여섯시면 거의 모든 가게문을 닫는다.
오메테페의 선착장 - 아직은 관광지로서의 모습이 드문드문한 오메테페는 여섯시면 거의 모든 가게문을 닫는다. ⓒ 김동주

한 시간이 조금 지나 섬에 도착하니 숙소에서 달려 나온 오토바이들이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뭐 다를 게 있으랴 싶어 아무나 붙들고 대뜸 뒷좌석에 앉았다.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오메테섬은 고요하다 못해 차라리 적막했다.

호수길을 따라 만들어진 제방은 부지런히 다이빙을 시도하는 아이들과 섬에 남은 몇몇 여행객 차지다. 아이들은 물이 더럽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한 호숫가에 앙증맞은 파도를 만들어낸다. 아마도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하필이면 화산을 낀 호수에 갇혀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니.

남은 콘셉시온마저도 활동을 멈춘다면 그나마 있던 여행객의 발길도 줄어들 텐데 말이다. 가볍게 인사를 건넸더니 물에 젖어 모래 범벅이 된 아이들은 천진하게 웃는다. 풍요로우면 풍요로운 대로, 척박하면 척박한 대로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며.

콘셉시온 화산에 오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행객이 적어 좀처럼 일행을 찾기 쉽지 않은 작은 섬 오메테페에서는 흔한 일이다. 콘셉시온 화산으로 오르는 여행자들을 위해 아침 일찍 문을 연 카페는 분주했다.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정원이 차서 트레킹을 하는 날이 일 주일에 하루 이틀밖에 되지 않는단다.

콘셉시온 화산 트레킹  - 총 7시간이 걸리는 화산 트레킹에는 현지 가이드가 동행해 자연생태와 길을 안내한다.
콘셉시온 화산 트레킹 - 총 7시간이 걸리는 화산 트레킹에는 현지 가이드가 동행해 자연생태와 길을 안내한다. ⓒ 김동주

가이드를 따라 걷다 보니 도로를 벗어나자 바닥의 흙이 온통 검다. 화산재가 섞여서란다. 호기심이 쭈그리고 앉아 한 웅큼 움켜지고 냄새를 맡아 보니 그저 거름 냄새다. 가이드인 로빈슨이 웃으며 근처에 말 농장이 있단다.

트레킹이라고 하지만 콘셉시온 화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제대로 길이 나 있지 않아 풀숲을 헤치고 다녔다. 군데군데 숨어 있는 진흙탕과 높은 경사로 쉽지 않지만, 인간의 손길이 덜 닿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언제나 놀라움과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콘셉시온 화산  - 원인모를 안개와, 화산이 뿜어내는 연기가 뒤섞이는 날에는 시야확보가 되지않아 정상으로 갈 수가 없다.
콘셉시온 화산 - 원인모를 안개와, 화산이 뿜어내는 연기가 뒤섞이는 날에는 시야확보가 되지않아 정상으로 갈 수가 없다. ⓒ 김동주

1800m 높이의 콘셉시온 화산 중턱에 닿았을 때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단순한 안개는 아닌 것이 그 속에는 메케한 유황 냄새가 났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간 안개에 삼켜질 것만 같은 풍경을 앞에 두고 로빈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이번에도 오르지 못했다라는 아쉬움이 퍼져나가면서 힘이 빠진다.

우리가 도시락을 먹는 동안 정찰을 갔던 로빈슨이 돌아와서 길이 없는 곳으로 이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풀숲을 뒤지며 20분여간 안개를 뚫고 나아가니 사방이 확 트인 초원이 펼쳐졌다. 바다 쪽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인기척에 놀란 사슴 몇 마리가 도망하고 위태롭게 패인 마그마 협곡으로 젖소와 염소들이 다닌다.

마그마의 흔적들  - 나무라고는 없는 푸른 초원 한 가운데를 갈라놓은 마그마의 흔적들. 방문하기 8개월전 마그마가 흘러내렸던 땅은 이미 굳어서 딱딱해져 있었다.
마그마의 흔적들 - 나무라고는 없는 푸른 초원 한 가운데를 갈라놓은 마그마의 흔적들. 방문하기 8개월전 마그마가 흘러내렸던 땅은 이미 굳어서 딱딱해져 있었다. ⓒ 김동주

마그마 분출의 영향으로 나무가 없는 그곳에는 칼집처럼 깊게 패인 검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산이 쪼개질 듯 위태로운 풍경, 대륙을 돌고 돌아왔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낯섦이었다. 올해 4월(2012년)에 불을 뿜었다는 그 협곡은 이미 돌로 굳어 딱딱해진 시커먼 암석 사이로 자라난 잡초들이 무성했다.

금방이라도 연기가 피어날 것만 같은 그 곁에서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아직 하늘은 걷히지 않아 콘셉시온은 끝내 꼭대기를 보여주지 않을 모양이다. 대신 조금 더 걸어 내려와 하늘이 완전히 깨끗해졌을 때 멀리 작은 화산 마데라스(Mareras)의 모습이 보였다. 콘셉시온과 꼭 닮은 고깔 구름을 눌러쓴 그 모습은 그저 아름답다.

마레라스와 콘셉시온 화산  - 안개의 영역에서 벗어나면 볼 수 있는 마데라스 화산의 모습(위)과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서 본 콘셉시온 화산(아래)
마레라스와 콘셉시온 화산 - 안개의 영역에서 벗어나면 볼 수 있는 마데라스 화산의 모습(위)과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서 본 콘셉시온 화산(아래) ⓒ 김동주

무려 6시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길을 막고 보도블록을 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조용한 호수 섬에도 개발의 물결이 이는 모양이다. 섬에 사는 사람이라야 몇백 가구 남짓하지만,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야생동물과 풀과 화산이 살아 숨 쉬는 곳, 한때는 주민이 키웠던 흑염소와 사슴도 산으로 올라가 야생의 무리가 된 지 오래고, 옛 흔적으로 남아 있는 오랜 나무조차 화산재에 반쯤 덮여 흙으로 되어 가는 곳.

그런 오메테페가 새하얀 보도블록이 아닌, 새까만 흙으로 덮인 채로 남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그날밤 마을에 단 하나 있는 펍에서 흘러나오던 <강남 스타일>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꿋꿋하게 살아가거라, 오메테페야. 가지지 못한 것이 너를 더 완벽하게 할 테니.

간략여행정보
코스타리카와 더불어 전 국토가 화산으로 들끓는 열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니카라과는 중앙 아메리카에서도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수도인 마나구아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은 코스타리카에서 건너오는 경우가 많다.

오메테페로 가는 배는 니카라과 남동쪽 국경근처의 산 호르헤(San Jorge)에서 탈 수 있으며 편도 80분정도 소요된다. 물가가 싸고 개발이 덜된 국가로 아직은 여행객의 수도 적은 편이며, 마을내의 모든 상점은 6시면 문을 닫기 일수다. 몇 개 없는 ATM 도 툭하면 현금이 없기 일수니 니카라과 화폐 역시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오메테페 섬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콘셉시온 화산 트레킹을 위해서는 1,700m, 전망대 까지는 1,000m 에 올라야 하며 각각 왕복 9시간, 7시간이 걸리며 제법 험하고 경사가 높아 쉽지 않은 편이다.

좀 더 자세한 오메테페 섬 여행후기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5211040



#오메테페#니카라과#콘셉시온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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