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추리작가 엘러리 퀸은 존 딕슨 카아,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다작형 작가였다. 엘러리 퀸은 수십 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는데, 편의상 그의 작품들을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1929년부터 1935년까지 발표했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을 포함한 '국명 시리즈'다. 두 번째는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발표했던, <X의 비극>을 포함한 '비극 시리즈'다.
국명 시리즈에서는 작가와 동일한 이름의 탐정 '엘러리 퀸'이 활약하고, 비극 시리즈에서는 은퇴한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 '드루리 레인'이 범인을 추적한다.
이 두 가지 시리즈를 마감한 이후에, 작가 엘러리 퀸은 '라이츠빌'이라는 이름의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 시리즈를 만들어 낸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이 마을은 '산업화가 절반 정도 이루어진, 주민 1만 명의 시골 마을'이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이런 곳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면 당연히 그 피해자와 가해자는 유명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건의 세부사항들은 사건 관련자들에 의해 수년 동안 반복적으로 말해질 것이고, 그만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작가 엘러리 퀸은 자신이 창조한 탐정 엘러리 퀸을 바로 이 라이츠빌 마을로 내려보낸다. 1942년과 1945년에 각각 발표한 <재앙의 거리>, <폭스가의 살인>은 바로 이 '라이츠빌 시리즈'에 해당한다.
물론 탐정 엘러리 퀸이 사건 수사를 위해서 라이츠빌 마을에 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 작고 조용한 마을에 방을 하나 얻어서 하숙 비슷한 생활을 하며 소설을 한 편 완성하려고 한다. 살인사건 같은 범죄를 다룬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엘러리 퀸은 이방인이다.
이방인이기에 좋은 점도 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는 것이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이상적인 환경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도 어김없이 범죄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범죄는 마치 엘러리 퀸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방문에 맞춰서 일어난다. 마을의 경찰서장은 자신이 서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이곳에서는 한 번도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주민들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매력적인 탐정 엘러리 퀸의 모습1942년에 발표된 첫 번째 작품인 <재앙의 거리>로 시작된 '라이츠빌 시리즈'는 <폭스가의 살인>, <열흘 간의 불가사의> 등으로 이어진다. 이 시간 동안 탐정 엘러리 퀸은 작은 마을 라이츠빌을 뛰어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때로는 완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조용히 소설을 집필하려고 내려간 곳에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만난 셈이다.
작가 엘러리 퀸이 발표한 작품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국명 시리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국명 시리즈'에서 탐정 엘러리 퀸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추리작가들이 창조한 탐정들은 대부분 성격이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하다. 가정적이지도 않고 예민하기까지 하다.
엘러리 퀸은 약간 예외다. 작품 속에서 엘러리 퀸은 서글서글한 인상과 매력적인 말솜씨로 사람들에게, 여성들에게 다가간다. <재앙의 거리>에서 한 젊은 여성은 엘러리 퀸에게 "당신은 너무 잘 생겼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상대로 탐정의 인기투표를 한다면 엘러리 퀸이 아마 1, 2위를 다툴 것이다(특히 여성들에게는 몰표를 받을 가능성이 많다).
엘러리 퀸은 일종의 은둔을 위해서 작은 마을을 찾지만, 그 마을은 엘러리 퀸을 잠시도 그냥 두지 않는다. 어쩌면 이곳에서 일어난 많은 일이 엘러리 퀸에게는 소설의 재료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시리즈의 핵심은 역시 엘러리 퀸이다. 나이를 먹고도 변하지 않는 매력을 가진 탐정.
그의 활약이 반세기 전에 끝났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재앙의 거리> <폭스가의 살인> 엘러리 퀸 지음 / 정태원 옮김. 검은숲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