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시작합니다."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 사람들과 연대자들이 1000여 명이 모였다. '미니팜협동조합 밀양의친구들'이 30일 오후 밀양 상동면 고정마을 주차장에서 '밀양장터 문화제'를 열었다.
일부에서는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이 끝났다고 하지만 이들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함께 힘을 모으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들은 농산물을 팔고 사거나 음식을 나눠 먹고 노래도 함께 불렀다.
주민들이 추수한 마늘, 꿀, 된장, 매실액, 부추, 깻잎, 고구마, 감자, 맥문동, 복숭아 등 농작물을 도시에 사는 연대자들이 구입했다. 또 주민들은 부침개와 다슬기국 등을 만들어 내놓았다.
이곳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산에는 온통 철탑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 과수원에서는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15번 철탑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 주차장에서 보니, 113번, 114번, 116번, 117번, 118번, 119번과 120번 철탑이 보였다.
한전 밀양 5개면에 총 69기의 철탑을 세우는데 공정율이 90%를 넘어서고 있다. 5개면의 송전선로 주민은 총 2206가구인데 이 중 260가구가 한전과 보상에 합의하지 않고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싸우고 있다.
"연대자들과 함께 하니까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주민들은 다시 힘을 얻었다. 강귀영(41·동화전마을)씨는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철탑을 뽑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괜찮고 할 만하다"라며 다짐했다. 강씨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떡볶이와 생과일 주스를 만들었는데 힘이 난다"고 덧붙였다.
김영자(상동마을)씨는 "좋다. 무엇보다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함께 하니까 좋다"며 "이런 행사를 자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산에 세워져 있는 철탑을 바라보면서 "저것들만 바라보면 분통이 터진다"며 "강제적으로 철탑을 세우고 있는데, 답답하고 막막하다"고 말했다.
특히 115번 철탑은 마을 과수원에 세워지고 있다. 김영자씨는 "올해는 과수원에서 과일을 딸 수야 있겠지만 내년부터는 정말로 걱정이다"며 "과수원도 송전탑 영향을 받는데, 그런 데서 난 과일을 자식들한테 먹이겠느냐. 그렇다고 양심을 속이며 내다 팔 수도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송전탑 찬성․반대로 주민들이 나뉘어져 있는 현실을 걱정했다. 김씨는 "무엇보다 마을 공동체가 파괴된 게 제일 가슴 아프다"며 "아직도 송전탑 찬성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서로 말도 안 한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한전과 정부, 경찰 때문이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고준길(72·용회마을)씨는 "밀양 송전탑 반대하던 노인들이 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살아 있다"며 "오늘 연대자들과 함께 하니까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고 말했다.
고씨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정의가 결국에는 이긴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며 "우리의 싸움은 끝난 게 아니고 끝까지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라할매'로 불리는 이금자(82·위양마을)씨는 "내 공든탑이 무너졌다. 공든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말이다"며 "내 정성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또 해야 한다. 어떻게 하든 또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경찰을 '깡패'라 부르며 "불순한 깡패들"이라 말했다.
어린이책시민연대, 수예 팔아 모은 기금 200만 원 전달연대자들도 달려왔다. 부산, 울산, 경남은 물론 대구와 서울에서도 환경단체 회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참여했다. 어린이책시민연대는 '수예'를 만들어 팔아서 만든 기금 200만 원을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에 전달했다.
어린이책시민연대는 "회원들이 농성장을 지키며 시간 날 때 수예를 놓았다"며 "주민들한테 부과된 벌금도 많다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주민들이 잘 하고 계신다. 밀양주민들은 패배한 것이 아니다"며 "송전탑 싸움과 탈핵은 위대한 싸움이고, 밀양주민들이 앞장서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밀양 싸움은 끝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며 "밀양주민과 연대자들이 다시 기운을 내서 시작하는 행사이고, 그래서 상당히 고무적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부산역사교사모임이 지난 8월 4~10일 사이 일본에서 벌인 '한-일 청소년 교류행사'에 참석했던 청소년들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청소년들은 일본 청소년들한테 밀양송전탑 문제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일본 청소년들이 펼침막에 써준 격려의 메시지를 받아와 소개하기도 했다.
김준한 신부(대책위 대표)는 "연대자들이 내 집에 온 것이고, 고향에 온 것"이라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함께 모여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지금 세월호 특별법으로 온 나라에서 절절한 투쟁이 이어지는 시기에 이런 행사가 혹여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며 "지난 몇 년간 어렵고 힘든 시간을 지내온 밀양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손을 잡고 일어서는 자리가 되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