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고리 1호기 원전 발전 정지" 지난 10일 발생한 원전 사고의 뉴스 제목이다. 원전 사고가 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항상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은 "원전 자체의 이상은 없다"며,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해왔다. 이번에도 한수원은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만 한다.

국내 최고령 원전인 고리 1호기(발전용량 58만 7000kW)는 수명이 10년이 연장된 채로 가동 중이다. 고장률이 무려 원전 전체의 19%, 130건이나 된다. 이렇게 기존 원전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데도, 지난 2012년 11월 설계수명(30년) 만료로 가동을 중단한 월성 1호기(발전용량 67만 9000kW) 역시 수명 연장 여부를 심사 중이다.

정부는 연초에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은 2035년까지 전력설비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26%에서 29%로 높이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원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

2012년 9월 신규 원전 예정구역으로 지정된 강원도 삼척시는 지난 9일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84.97%라는 압도적인 표로 반대를 표명했다. (관련 기사 : "삼척 85% '원전 반대'... 반핵 역사 새로 썼다") 그러나 정부는 법적 효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법적 효력'이란 말에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 있다. 주민투표의 법적 효력을 논하는 책은 아니지만, 방사능 관련 법규제가 담보한 안전성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다뤘다.

정확한 데이터조차 없는데... 안전하다?

 <확대되는 방사능 오염과 법규제>(히오키 마사하루 지음 / 김효진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펴냄 / 2013.03 / 7000 원)
<확대되는 방사능 오염과 법규제>(히오키 마사하루 지음 / 김효진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펴냄 / 2013.03 / 7000 원) ⓒ 고려대학교 출판부
환경오염에 대한 전문 법학자인 히오키 마사하루의 <확대되는 방사능 오염과 법규제>가 그 책이다. 저자는 원전이나 방사능에 관한 법은 그리 쓸모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방사능 유출은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변호사협회는 방사능 누출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법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원자력프로젝트팀(PT)의 멤버인 저자는 이 책에서 구멍투성이인 관련 법제도의 현황을 지적하고, 그 문제점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일본에는 '4대 공해 사고'이라는 말이 있다. 전후 고도성장 과정에서 공해병을 유발한 일본의 대표적 사고이다. 구마모토 미나마타 공해, 니가타 미나마타 공해, 이타이이타이 공해, 욧카이치 공해를 일컫는다. 저자는 일본이 이 4대 공해 사건 이후에도 그리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후쿠시마 방사능 공해도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서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는 당국의 문제를 지적한다.

후구시마 원전사고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보다 더 많은 방사능을 유출했다. 책은 2011년 8월 26일자 <마이니치 신문> 보도를 인용하고 있다.

"세슘137의 방출량은 후쿠시마원전 1~3호기가 1만 5000 테라베크렐(테라는 1조)로, 89 테라베크렐이었던 히로시마 원폭의 약 168배였다. 스트론튬90(반감기 약 29년)은 후쿠시마 원전이 140 테라베크렐로, 58 테라베크렐이었던 히로시마 원폭의 약 2.4배, 요소131(반감기 약 8일)은 후쿠시마 원전이 15만 테라베크렐, 히로시마 원폭은 6만 3000 테라베크렐로 히로시마 원폭의 약 2.5배에 상당한다." (본문 10쪽 중에서)

그러나 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방사능의 강도와 피폭량, 반감기 등은 수치로 환산할 수 있다. 그러나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실증 데이터-급성증상과 장기적 영향, 피폭의 상황, 연령에 따른 영향의 차이, 역치(인체에 안전한 수준)의 존재와 극저선량의 영향, 외부피폭과 내부피폭 등-은 없는 상황이다.

고무줄 법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방사능에 피폭되어도 암이라든가 질병, 혹은 사망 등과 방사능과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으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피폭량이 같아도 피폭방식, 방사선의 차이, 핵종의 차이, 내부피폭인지 외부피폭인지 등에 따라 그 피해 정도가 상이하다.

일개 개인인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질병이 피폭에 의한 증상임을 스스로 증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갑상선암의 경우에는 인과관계가 밝혀졌다.

"체르노빌의 경우 방사성 요소에 의한 갑상선암이 특히 어린이에게 많이 발생했던 사실에 근거하여 갑상선암만은 방사선 피폭과의 인과관계가 통계적으로도 명확하게 보고되어 있다. 한편 보통 상태에서 방사선암은 그다지 발생하지 않는다." (본문 28쪽 중에서)

그 외의 암과 심장병 등은 방사선을 쐬지 않은 이들에게도 발견되기 때문에, 피폭으로 인한 발병이라고 해도 법의 보호와 보상을 받기가 힘들다. 법의 어두운 이면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삼척의 원전 건설 반대투표를 '법적 효력이 없다'고 말하는 데서 법의 무모함을 엿볼 수 있다.

법은 사후약방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서둘러 법체계를 정비한다. 방사능 피폭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늦다. 심지어 기존의 법규제를 느슨하게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사고 전 일본의 방사선 피폭에 관한 안전기준으로는 직업피폭의 경우, 전신에 100mSv(5년) 및 50mSv(1년), 일반인의 피폭 허용한도는 1mSv(1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이 사고 후에는 사고수습에 임한 작업원의 한도가 급거 250mSv까지 올라가고 후쿠시마 등 오염이 현저한 지역에서는 학교 어린이들의 피폭기준으로써 20mSv(1년)을 기준으로 한다는 잠정기준이 제시되어 문제가 되었다." (본문 61쪽 중에서)

저선량의 방사선 영향에 대해서는 역치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저선량의 방사선은 몸에 좋다는 호르메시스 효과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랠프 그로이브 같은 학자들은 저선량 방사선에 노출될 때 고선량보다 그 영향이 크다는 페르카우 효과를 주장한다. 그러니까 방사선에 관해서는 안전하다는 역치조차도 쉽사리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방사선 오염은 대기나 토양, 동식물에게도 치명적이다. 일본산 어류를 섭취하지 않는 것만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방사성물질은 방제하는 작업 중에도 방사성 폐기물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도 법 운운하며 원전을 강행하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원전은 기준이나 법 문제가 아니라 아예 없애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확대되는 방사능 오염과 법규제>(히오키 마사하루 지음 / 김효진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펴냄 / 2013.03 / 7000 원)



확대되는 방사능 오염과 법규제 - 피해조사와 감재전략

히오키 마사하루 지음, 김효진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2013)


#확대되는 방사능 오염과 법규제#히오키 마사하루#방사능#원자력#원전반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