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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에서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까? 많은 학자들이 지금과 같은 소비 규모로는 지구의 자원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해왔다. 그런데 때로 사람들은 알면서도 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해 파국을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한국에도 녹색당이 창당되었지만, 환경의 문제가 아직 대중들의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유명한 격언은 오늘날 환경운동가들에게 더 이상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많은 환경운동 중, 사람들에게 생활 방식(life style)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는 면에서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는 보다 많은 부와 소비를 추구하는 삶에서 거리를 두고, 나와 지역 공동체에게 적합한 만큼의 기술과 자원을 사용하는 삶을 제안한다. 이 소박한 제안에는 잔잔한 감동과 울림이 있다.

적정기술이란 말은 1960년대, 서구 선진국과 제 3세계의 빈부 양극화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경제학자 슈마허(E.F.Schumacher, 1911~1977)는 간디의 자립경제 운동과 불교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사람의 삶을 지키는 올바른 개발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중간 규모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슈마허는 이 기술을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 불렀다. 이것의 개념이 여러 나라의 사회와 문화에서 발전하였고, 근래는 '적정기술'이란 말이 정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 적정기술이 발을 들인 것은 근래의 일이다. 화석에너지의 고갈, 원자력 문제, 농촌의 위기와 귀농 열풍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적정기술에 대한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고민이 무르익은 독일이나 미국에 비해 한국은 아직 적정기술에 대해 씨앗을 뿌리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자립하는 삶을 위한 적정기술센터'는 2010년에 만들어졌는데, 현재는 3만80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며 적정기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의 대표 이재열은 <태양이 만든 난로 햇빛>이라는 저서를 썼으며, 적정기술을 대중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재열은 스스로를 '적정기술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라 칭한다. 실제 경북 봉화에 귀농하여 적정기술로 만들어진 흙집에 살고 있고, 다양한 곳에서 강의를 하며 적정기술을 알리고 있다. 9월 초, 적정기술의 정신처럼 소박한 웃음을 지닌 그를 하자센터에서 만났다.

"적정기술은 자립적인 삶의 회복하는 것"

자립하는 삶을 꿈꾸는 이재열과 그가 일하는 하자센터.
 자립하는 삶을 꿈꾸는 이재열과 그가 일하는 하자센터.
ⓒ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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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몇 년간 적정기술을 가장 선두에서 알리고 보급하는데 주력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적정기술은 낯선데요. 적정기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적정기술은 우리 삶의 반경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과 기술에 대해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도로 분업화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을 소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소비에 의존한 삶을 산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곧 자립할 수 있는 힘을 잃은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라이프 스타일은 현대에 와서야 생겨난 습성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무기력증을 많이 느낍니다. 그것은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가 쳇바퀴처럼 종속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자립하면, 경제적 자립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문자 그대로 말하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자립입니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이 같은 '자립'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무기력증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적정기술은 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해주어 무기력증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적정기술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사람들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자주 확인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의 삶을 100년 전으로 되돌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적정기술의 이 같은 태도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이로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 석유 에너지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생태 문제에 크게 기여를 할 수 있겠죠."

-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적정기술은 소비중심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자립적인 삶의 회복을 권하는 사회운동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적정기술이 적용되는 지점은 광범위 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는 주로 에너지 문제에 집중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건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입니다.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에너지에 집중되어 있잖아요. 현재 우리 사회는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사회입니다. 석유자원이 고갈될 것이란 전망은 오래전부터 나왔었죠. 그런데 아직도 사람들은 사회가 더 발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더 발전한다는 것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지구는 그 에너지를 더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죠. 에너지의 위기를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파악하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적정기술 또한 그것의 대안으로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 책 <태양이 만든 난로 햇빛온풍기>에 나오는 햇빛온풍기와 햇빛온수기, 햇빛건조기와 같이 태양 에너지를 활용한 적정기술이 많습니다. 에너지 문제를 적정기술로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중 태양 에너지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먼저 깨끗한 에너지 중에 그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에너지가 햇빛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둘째로 공평성에 있어서도 햇빛이 자신이 이용하고 싶은 만큼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현재 선생님께서 하고 계신 적정기술 활동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2010년부터 '자립하는 삶을 만드는 적정기술센터' 카페를 만들어 적정기술 관련 정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정기술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과 '핸즈'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최근에는 협동조합 활동 보다는 하나의 교육팀으로, 적정기술과 관련 된 다양한 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어요. 핸즈 교육팀에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교사 출신인 정해원 선생님과 청년 사회적기업가 출신인 정재원 선생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공짜로 얻은 해외자료, 우리 사정에 맞게 공유"

- 모든 운동이 초기에 활동가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어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하는데요. 적정기술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본적인 재정 마련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기저기 강연을 열심히 뛰고 있어요.(웃음) 재정적인 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리하게 적정기술을 상품으로 만들려고 할 때 생기는 부작용이 훨씬 큰 것 같습니다. 실제 저희도 처음에는 태양열 온풍기 등 적정기술 생산물을 제품으로 만들고자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죠.

실패의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적정기술을 상품화 했을 때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가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데 있었습니다. 이는 적정기술이 극복하고자 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인데, 처음으로 되돌아가버린 것이죠. 적정기술의 원래 모습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의 문제도 있었고 여러 한계가 있었지만, 적정기술이 본래의 모습을 잃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카페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무언가를 팔아볼 생각을 하는 유혹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이 카페에서 순수 아마추어로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이용해 적정기술 물건을 만들 수 있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수집한 대부분의 적정기술 자료들은 우리나라보다 적정기술이 많이 발달한 독일이나 미국에서 공개된 자료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의 공짜로 받은 셈이죠. 그런 측면에서 당연히 이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의무감, 아니 의무감이라기보다는 이 사람이 공유한 그 의도를 사람들에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카페를 수익모델로 생각하고 판을 벌였다면 지금쯤 망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 정부 지원금을 받는 것은 어떤가요? 취지가 좋기 때문에 재정 지원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요.
"공공영역의 지원은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원하는 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다보면 적정기술의 처음 의도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사회에서 적정기술이 가진 가능성과 의미 그리고 역할 등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이 무르익은 이후에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행정과 소통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기준을 잃지 않는 것인듯 한데 이건 원론적인 고민이 깊게 선행되어야 가능한 것 같아요."

이재열이 직접 만든 흙집과 햇빛온풍기(좌), 집안의 차가운 공기가 하단부를 통해 햇빛온풍기 안에 들어가 햇빛에 의해 뜨거워진 뒤 상단부를 통해 집안에 들어오는 구조(우)
 이재열이 직접 만든 흙집과 햇빛온풍기(좌), 집안의 차가운 공기가 하단부를 통해 햇빛온풍기 안에 들어가 햇빛에 의해 뜨거워진 뒤 상단부를 통해 집안에 들어오는 구조(우)
ⓒ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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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행정학을 전공하고 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하셨던 게 아닌 만큼 햇빛온풍기와 온수기 등을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셨을 것 같습니다.
"일단 자료들을 보면 완벽해보여요. 되게 그럴싸해 보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만들어 놓고 보면 문제점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우선 대부분 적정기술 관련 자료는 독일이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나라들의 기후나 자연환경이 우리나라와 다르죠. 구할 수 있는 자재도 달라요. 게다가 우리는 이런 제작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설계도 그대로 만들어보는 것도 생소한 일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원들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갔죠.

온풍기를 만들 때, 일조량이 달라서 실패한 경우도 있구요. 디테일한 정보 파악에 힘들어 예측하지 못한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초창기에 강화유리를 사용해 온풍기를 만들었는데, 레일건을 잘못 쏴서 유리가 쩍~ 하고 갈라진 적이 있어요. 정보에 나와있는 도면대로 만들었지만, 유리가 보이지 않는 위치에 들어가 있었어요. 그 위에 레일건을 쏜 거죠. 강화유리가 비싸거든요. 등골이 서늘했죠.(웃음) 그래서 강화유리를 다른 저렴한 소재로 대체했는데, 모양새가 이상한 거에요. 하지만 잘 돌아갑니다.(웃음)

이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하나씩 정리해서 커뮤니티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외국 자료에서 접하기 힘든 디테일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이런 정보의 공유가 활발해질 때, 다른 나라에서 발견하고 개량한 기술이 우리에게 적절한 기술로 재탄생된다고 봅니다. 현지화 과정이라 볼 수 있는 거죠."

- 한국은 적정기술이 발전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보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적정기술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아주 초기 단계입니다. 적정기술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다른 맥락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제3세계 국가에서 적정기술은 라이프 스트로(물의 세균을 걸러주는 빨대)와 같이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물건이었죠. 그 나라에 맞는 적정기술이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까지 대체로 적정기술을 친환경 에너지 상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적정기술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아이템이 있어요?', '이 제품이 저것보다 싸요? 아니면 성능이 더 좋나요?'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적정기술은 그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정기술이 아닌 친환경 제품들은 이미 좋은 것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적정기술이 우리 사회에서 왜 필요한지, 그 답변을 찾아가는 시작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적정기술은 주택이 많은 농촌에 활용하기 쉬울 것 같은데 도시에서도 적용이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도시형 적정기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해외의 경우, 햇빛온풍기가 도시에 많이 적용되어 있어요. 일본에는 오엠솔라라고 하는 태양에너지 주택을 만드는 회사가 있지요. 가장 발전된 것은 미국과 독일인데, 독일은 개인 주택부터 시작해서 방공호까지 햇빛온풍기를 두루 사용합니다. 거기도 도시잖아요. 우리나라의 경우 시골에서는 의지만 있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긴 합니다.

반면 도시에서 사용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는, 설계 단계에서 햇빛 온풍기 사용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물의 빈 면적만 활용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햇빛 온풍기가 도시형이 아니라서라기 보다는,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걸 꼭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는 거죠.

또 하나는 적정기술이, 단순히 도시의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기술적인 대안으로 해석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도시적 삶의 방향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금의 도시 체제가 언제나 그대로 유지될 거라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전제 되어 있기 때문에 석유자원이 부족해지면, 태양 에너지가 석유를 대신하여 지금의 도시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요. 하지만 이건 현실성이 없죠.

서울시 전체에 태양전지판을 깔아도, 서울시 운영이 안 될 겁니다. 미국 시카고의 초고층건물인 씨어스빌딩은 과거 미국 소도시에 들어가는 전체 에너지 양과 맞먹는 에너지를 사용했어요. 우리나라에도 고층 빌딩이 많죠. 이 같은 소비 양태에 대해서, 적정기술은 이런 생활 방식이 옳냐는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이런 화두를 던지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너지, 지금처럼 쓰다간 지구가 견디지 못할 것"

사람들이 워크숍에서 햇빛온풍기를 직접 만들어보고 있는 모습
▲ 햇빛온풍기 제작 워크숍 사람들이 워크숍에서 햇빛온풍기를 직접 만들어보고 있는 모습
ⓒ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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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서울에서 박원순 시장이 추진한 원전하나 줄이기를 통해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적정기술의 관점에서 원전하나 줄이기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좋은 점은 에너지 절약으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주 좋은 방법이죠. 하지만 적정기술은 에너지 절약보다는 대체 에너지의 활용을 제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 태양광 발전장치와 같은 것이 널리 보급된다면, 원전이나 화석연료에 의지하지 않고도 적정한 수준의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지금 서울에서 태양광 장치들이 실험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이 건물 완공이 끝난 다음에 남는 면적에 태양광 장치를 설치하는 수준입니다. 적정기술이나 태양열 에너지가 제대로 적용되려면, 설계 단계부터 고민이 되어야 합니다.

아파트 사례를 봅시다. 사기업에서 짓는 아파트들이야, 어떻게 손댈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LH 공사와 같은 공기업에서 짓는 아파트는 적정기술이나 에너지 실험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가 제안하는 게 가능하죠. 이 아파트를 정남향만 바라보게 하고, 칸과 칸 사이에 태양열 온풍기 같은 것을 집어넣는 식의 실험을 하면 에너지 사용량을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방법은 많아요. 이런 실험에 많은 비용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례가 나와 사람들이 '아, 저런 아파트가 좋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적용사례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이런 실험은 민간의 사회운동단체 힘만으로는 해내기 어렵습니다. 적정기술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건축가, 에너지 전문가, 도시 설계자 등 각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연구와 협업을 해야 가능합니다. 이런 노력이 있을 때, 적정기술이나 친환경 에너지가 전시용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활동은 서울시와 같은 공적 공간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시도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적정기술의 시작이 제3세계의 빈곤문제나 에너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활동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물론 적정기술이 제3세계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단체들이 저개발 국가에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인구가 많은 나라들이 점점 미국처럼 에너지 소비를 높이고 있죠. 이러면 지구가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적정기술이 던지는 화두는 저개발 국가의 개발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적정기술의 시작이 제 3세계의 개발 문제를 고민하다가 나온 것은 맞지만, 각 나라에서 각자의 삶에 적합한 형태의 적정기술을 찾는 게 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제 주된 관심도 여기에 있습니다."

- 제3세계 국가의 적정기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폴 폴락이 적정기술을 인도지향적 기술이 아닌 시장지향적 관점으로 봐야한다고 한 주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일단 폴 폴락이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전부 다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희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에 현실적인 측면에서 그 사람 말이 전혀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한 번 그 쪽으로 시도를 했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시도를 한 순간부터 그건 더 이상 적정기술이 아닌 게 되요.

적정기술이 가진 정신적, 철학적인 부분들이 다 날아가 버리고 아이템만 남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적정기술을 시장지향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적정기술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어요. 그저 환경에 좋은 기술, 지역에 필요한 기술 정도로만 하면 되지 않나 싶어요. 그런 측면에서 폴 폴락이 이야기한 바에 대해 지지하기는 어렵습니다."

- 현재 정보를 공유하고 조직을 형성하고 사례를 만들어가는 시작 단계인데 다음 단계에 대해 준비하고 계십니까?
"지금 과제는 여전히 씨를 뿌리는 거라. 아직도 씨를 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진국인 우리나라에 왜 적정기술이 필요한 건지에 대한 문제를 충분한 공유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저 적정기술의 개념과 아이템들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다가 적정기술이 가진 철학이 곡해되는 일을 원치 않아요.

그래서 사실 다음 단계에 대한 생각이 아직 제 머리에 없어요. 저는 그저 사람들이 적정기술이 우리 사회에서 나눌 만한 이야기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제가 가진 능력치에 비해 큰 일을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있어요. 그 다음 단계는 제 능력으로 해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있어서요. 누군가 필요하면 하겠죠.(웃음)"


태그:#적정기술, #이재열, #햇빛온풍기, #태양열 온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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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화를 통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글로써 많은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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