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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 "한 언론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를 한 후에 여러 곳에서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일방적인 주장에 흔들리지 마시고,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중략) 그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12월 7일(일)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결위원 오찬 중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러서 위와 같은 발언을 했다. 위 발언은 박 대통령의 정무판단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앞에서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보자'며 예단하지 말 것을 당부해 놓고, 이어서 정씨 관련 내용을 '찌라시'에나 나오는 내용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발언은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의도성 여부를 떠나 검찰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임명권자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찌라시'로 규정한 문건에 대해 '정상적으로 작성된 청와대 동향보고서'라고 수사 결과를 발표할 조직이 과연 얼마나 될까.

박 대통령도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모양새다.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입장을 상세히 밝힌 데 이어, 6일 만인 7일 이번에는 새누리당 수뇌부들을 불러 모아놓고 대통령의 생각을 다시금 내놓았기 때문이다.

"찌라시에 나오는 얘기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새누리당 수뇌부와의 오찬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건 내용을 두고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 "찌라시에 나오는 얘기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새누리당 수뇌부와의 오찬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건 내용을 두고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 SBS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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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동안 두 차례 발언... 동일한 내용, 수위만 강력해져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놓은 대통령의 메시지를 보면 내용은 동일하나 사용한 단어가 더욱 자극적이고 강력해졌다. 지난 1일 박 대통령은 '문건 유출행위는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한 뒤 '검찰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을 주문했다. 당시에도 박 대통령은 문건 속 내용에 확신이 있었던 듯이 그것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관심 없는 모습을 보였다.

7일 발언 내용을 보면 "'안녕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드리기가 좀 어색할 정도로 고생이 많으셨다", "(찌라시 내용으로)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 등 자극적인 내용으로 이뤄졌다. 이번에도 발언 내용은 명확했다. 유출된 문건은 찌라시 내용이고, 그렇지만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이니까 지켜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박 대통령은 문건 속 내용의 사실 여부에는 나름의 확신이 있는 듯싶다.

그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대한민국호 선장임에도, 청와대발 문건 유출 및 전직 비서관, 전직 장관의 증언에 의해 촉발된 현 상황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 대신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화법을 사용한 것에 주목한다. 이는 또 다른 유체이탈 화법이 아닌가.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과는 별개로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바라보는 현 정국은 심각 그 자체다.

<중앙일보> 6일자 사설 <문고리 3인방부터 물러나야 한다>를 보면 "그야말로 난장판이고 아수라장이다. 청와대 문건 파문이 자고 일어나면 사방팔방으로 번지고 있다"며 권력 암투, 진실 게임, 막장 드라마 등의 표현을 써가며 현 상황을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문건 유출과 동향보고서의 진실성 여부에 따라 현 시국이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원인을 박 대통령 자신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설은 "우리 사회는 이 파문의 근본 원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불투명한 통치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간주하고 있다.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함께 정치적 해법 모색을 병행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근본원인은 박 대통령" 이 파문의 근본 원인을 박 대통령의 불투명한 통치 스타일 때문이라고 주장한 <중앙일보> 6일자 사설 '문고리 3인방부터 물러나야 한다'
▲ "근본원인은 박 대통령" 이 파문의 근본 원인을 박 대통령의 불투명한 통치 스타일 때문이라고 주장한 <중앙일보> 6일자 사설 '문고리 3인방부터 물러나야 한다'
ⓒ 중앙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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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년차에 터져나온 내부 고발... 경악한 보수언론

<조선일보> 역시 6일자 사설 <대통령-전직장관의 충돌, '국정 亂脈(난맥)' 어디까지 갈 건가>를 통해서 "이번 정권 들어서는 인사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보았다는 고관(高官)들이 유독 두드러지고 있다. 전직 기무사령관도 억울하다 하고 있고, '문고리 권력'에 밀려났다는 사람도 많다"며 현 상황을 정리했다. 

이어서 "(중략) 정부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이 공통으로 제기하는 문제가 인사(人事) 불만과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 개입인 것을 보면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병폐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측근들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7일 나온 박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은 여러 가지로 주목된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임에도 최소한의 '유감' 표현을 하지 않았다. 이는 보수언론에서 입을 모아 제기한 문제는 '박 대통령 통치 스타일과 문고리 3인방'이라는 지적을 외면한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보수언론을 포함한 언론과의 긴장과 대결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반면 현재 위기를 새누리당을 내세워 돌파할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새누리당 수뇌부를 상대로 '부탁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소모적인 의혹 제기와 논란으로 국정이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여당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셨으면 합니다"고 협조를 구한 뒤 "(경제 관련해) 당과 국회에서 앞장서서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경제활성화와 민생을 살리기 위한 법안들 최대한 통과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거듭해서 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검찰의 투 트랙 수사, '찌라시' 여부가 핵심

검찰은 퍼즐조각 하나씩 맞추는 중이라는데...  박 대통령이 '지라시 수준 내용'이라고 문건 신빙성을 규정하는 시점, 검찰에서는 관련 내용의 '퍼즐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중'이라고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 관련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6일자 3면
▲ 검찰은 퍼즐조각 하나씩 맞추는 중이라는데... 박 대통령이 '지라시 수준 내용'이라고 문건 신빙성을 규정하는 시점, 검찰에서는 관련 내용의 '퍼즐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중'이라고 수사 상황을 설명했다. 관련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6일자 3면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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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날의 '찌라시' 발언은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한 가이드라인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문건 속 등장 인물들이 해당 보도를 최초로 한 <세계일보>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어 공직기강비서실에서 근무하며 해당 문건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박관천 경정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이에 검찰은 박 경정에 대한 '명예훼손' 부분과 그가 문건을 유출했는지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즉, '투(two) 트랙' 수사를 진행 중인 것이다.

검찰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새다. 검찰 수사 결과, J 중국집에서 정윤회씨와 문건 속 '십상시'들 모임이 없었다면 명예훼손으로 피고소된 언론과 박 경정 등에 대한 비판이 고조될 것이다. 명예훼손 수사는 빠르면 금주 중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는 검찰의 수사결과가 곧 나온다는 의미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수사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찌라시 내용'으로 규정하는 발언을 했다. 반면 문건 유출과 관련해서 검찰 수사는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의 이날 '찌라시' 발언에서는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승부사적인 대응이 느껴진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의 단호한 대응은 위기에 처한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당장에는 구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정상적인 인사관리인지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으며, 검찰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정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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