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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하다가 다시금 "앗!"하는 게 바로 세월의 흐름, 특히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이 아닐까 싶다. 송년회에 얼굴 좀 몇 번 비추고 나면 달력은 곧장 새해로 돌진한다.

그럼 또 신년의 계획을 세우네, 아님 나이만 한 살 헛먹었네 등등 다양한 백가쟁명들이 신년 벽두부터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 매달리리라. 12월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낸 추위는 대설이었던 지난 7일부터 이튿날인 지난 8일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뽐냈다.

'대설'이란 이름에 걸맞게 눈 폭탄을 전국 곳곳에 투하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꼭두새벽부터 눈을 치우느라 고생하고 있는 주간 근무 경비 동료들을 돕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그만 눈을 치우다 빙판길에 미끄러졌다.

덜컥 아찔함이 들었다. 하마터면 2년 전처럼 다리가 삐어 고생을 엄청 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일종의 트라우마까지 떠올랐다. 그때도 눈을 치우다가 낙상했는데 보름 이상이나 통원 치료를 받느라 고생이 막심했다.

"저런, 안 다친겨?"

동료가 다가와 위로해 줬다. 다행히 발목만 잠시 시큰거렸을 뿐 딱히 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럼에도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지하 상가에서 신발 매장을 찾았다. 방한화를 구입하기 위함에서였다.

"(지금 신고 있는) 이 구두는 양말을 두 개 껴 신지 않으면 발이 시리고 또한 눈길에 미끄러지기 일쑤라서 무용지물이에요. 방한화 좀 보여주세요."

그러자 신발집 주인은 방한화와 함께 평상시엔 앞으로 접어 두었다가 미끄러운 길에서는 뒤편으로 끌어당겨 아이젠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기능성 신발을 추천했다. 셈을 치른 뒤 아예 그 방한화를 신고 가게를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도 따듯하고 좋았다.

'진즉 살 걸~! 이깟 3만 9천 원이 뭐라고 여태 미루다가 이제야 겨우 난생 처음으로 샀단 말인가?'

그랬다. 2015년 새해가 되면 오십하고도 거기에 일곱 살이 추가되는 내 나이에 처음으로 산 방한화였다. 이쯤 되면 짠돌이 자린고비라 할 수 있겠다. 짠돌이는 구두쇠처럼 매우 인색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자린고비는 짠돌이보다 더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 둘을 붙인 주인공이 그동안의 나였다.

이틀 간의 주간 근무에 이어 오늘과 내일은 또 야근이 이어진다. 주간 근무의 경우 평일일 때는 회사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사먹으니 편하다. 그러나 야근의 경우엔 스스로 도시락 따위를 지참해야 한다. 한 달에 보통 열흘 이상 하는 야근만 따지더라도 나는 자주 야식 대비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데... 헌데 내 야식 준비는 간단하면서도 '측은하기' 이를 데 없다. 우선 밥은 집의 전기 밥통에서 하루쯤 지난 밥을 퍼두었다가 식으면 비닐봉지에 싸서 냉동실에 얼려둔 걸 꺼내 가방에 담는다.

 사발면과 김치
사발면과 김치 ⓒ 홍경석

그걸 가져다 회사 경비실에 있는 전자레인지에 3분만 해동하면 끝이다. 김치는 기본 옵션 반찬인 까닭에 역시 경비실 냉장고에 넣어두고 꺼내먹는다. 그 김치가 담긴 통은 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적 사용했던 도시락 밥통이다. 그 김치통의 역사(?) 또한 얼추 20년에 육박할 정도니 그야말로 명실상부 도시락계의 고참인 것이다. 또한 국물이 없으면 밥을 먹기 어려우므로 컵라면은 반드시 비축해두고 있다. 이처럼 찬밥을 데워 컵라면에 물을 부어 먹기 시작한 지도 3년이 지나간다. 올해가 가면 4년 차에 접어든다. 그러나 나는 평소 이런 나의 짠돌이 자린고비 행각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아들에 이어 딸까지 대학원까지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간에도 그렇지만 특히나 야근을 하는 경우엔 라디오가 더욱 가까운, 그리고 유일한 친구가 된다. 경비원이라는 직업은 둘이 짝을 이뤄 일하지만, 실은 각자 맡은 구역에서 외로운 늑대처럼 혼자서 일한다. 어제도 혼자서 라디오를 듣자니 애청자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소개해주는 모 프로그램의 사연을 들게 됐다.

그 중의 하나가 곧바로 내 귀에 와 꽂혔다. 그 내용은 자신의 자제가 지원한 대학에 수시 모집으로 합격했다는 기쁨의 자랑이었다. 그걸 듣자니 동병상련의 흐뭇함이 떠오르면서 지난 날의 기억까지를 반추하게 했다. 금지옥엽인 딸이 수능을 치른 건 지난 10년 전이다.아이는 노력 끝에 서울대 합격증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공부벌레 딸은 대학원까지 다니는 6년 동안 역시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장학금을 받아냈다.

당시에 박봉으로 애면글면 어려웠던 나였지만, 어찌어찌 딸의 석사 학위까지 받아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도 나의 짠돌이 자린고비 행각이 실천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딸의 7년(1년은 휴학했으므로) 동안의 서울 유학 생활이 가능했을까? 나는 그때 역시도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의 가파른 비탈길에 몰려 있었다. 고로 무조건 아끼며 안 먹고 안 입는 습관에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제 산 방한화는 이 풍진 세상을 56년 동안이나 살아오면서 난생 처음 구입한 다소 사치스런 신발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평소 무지막지하게 인색한 좀팽이는 결코 아니다. 나도 돈을 쓸 때는 화끈하게 쓰고, 또한 술도 곧잘 내는 터인 까닭이다. 다만 두 아이를 대학원까지 가르칠 적에는 도통 하는 수 없었기에 평소보단 유난히, 또한 특출하게 짠돌이에 덧붙인 자린고비까지병행했다는 것이다.

자녀 한 명을 키워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3억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가 있었다. 아무튼 나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짠돌이에 더하여 자린고비까지를 병행한 덕분에 무려 6억 원 즈음 되는 거액을 번 셈이다. 그래서 말인데, 따라서 짠돌이는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란 주장을 끝으로 펴보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짠돌이라 부르지 마’ 응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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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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