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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에 방영한 SBS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 주인공 이연재(김선아 분)는 어느 날 담낭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산다.
지난 2011년에 방영한 SBS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 주인공 이연재(김선아 분)는 어느 날 담낭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산다. ⓒ SBS

지난 8년 동안 같이 근무하면서 집안대소사도 나누고, 전시회 때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마치 친자매처럼 지내던 분이 계셨다. 갑자기 어느 날, 그 분이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쑤시고 아프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단다. 그런 상태에도 어김없이 출근해서 일을 하셨다.

회갑도 지난 나이에 혼자 사는 분이었다. 독거여성노인이라고 지칭할 수도 있지만, '노인'이라는 단어와는 영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우아한 분이었다. 다리의 붓기는 곧 빠졌지만, 일주일 간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 옆에서도 느껴졌다. 혼자서 집에 있던 주말, 갑자기 호흡은 가빠르게 변하고, 옆구리는 참기가 힘들 만큼 아파왔다고 한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입장... 누구를 부를까? 가족이 딸린 동생? 친구? 직장 동료? 119? 깊은 고민 끝에 친구를 불러 병원에 갔단다. 검사를 하니 폐에 물이 찼다고 해서 일단 입원해서 물을 빼기로 했다.

갑자기 아파서 입원한 동료... "시한부 6개월"

입원한 그 날부터 꼭 보름 동안 일련의 해프닝이 발생했다. 그 분 그리고 그 분과 마음으로 소통했던 사람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사건이었다.

처음 입원한 종합병원에서 왜 폐에 물이 차는지 늑막 조직검사를 권했다. 조직검사 수술을 받는 동안 식구들은 극심하게 긴장했다. 직장 안에서는 "조직검사까지 하는 것을 보니 엄청 심한가 보다", "폐에 물이 찬 게 좋은 건 아닐 것이다"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기다린 끝에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 분의 동생이 찾아와, 그 분과 절친한 사이인 나와 다른 동료 1명에게만 조용히 검사결과를 알려주었다

"시한부 6개월이라네요."

그녀가 시한부 판정을 받자마자, 일부 가족들은 그녀에게 "아직 정신이 맑을 때 재산을 미리 정리하라"고 종용했다 한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현실은 냉엄했다. 그 분의 가족들과 우리는, 그녀에게 절대로 시한부 6개월이란 말은 전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경미한 암 초기라는 정도로 알려주자고 약속했다. 그 분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하자고 서로 입을 맞추었다.

이왕 치료받을 바에야 소도시의 종합병원보다 좀 더 크고 좋은 병원에서 확진을 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 최고의 치료를 받아, 갈 때 가더라도 마음에 여한이 없게 하자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서울에 알려진 명의가 있는 병원에 가자고 권했고, 마침 그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55만 원이나 하는 구급차를 타고, 폐에 물을 빼는 호스를 꼽은 채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병원에 빈 병실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조직검사결과를 보여주고 담당의사만 정한 채 돌아왔다. 이전 병원에서는 자기들이 손을 쓸 수가 없다며 그냥 폐의 물만 조금씩 빼는 게 다였다.

서울의 병원에 입원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지난 8일, 그 분은 동생과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우리는 그녀의 동생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서울의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한 후, 조카에게 간호를 맡기고 내려왔단다.

"우선 장기간 조직생활을 하면서 마음 안에 그늘졌던 것들을 털게 해야 해요."
"현미를 비롯해서, 항암치료를 대비해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소화기가 상하지 않는 음식을 먹여야 해요."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곳에 집을 마련해요."
"요새 시한부 몇 개월을 받고도, 잘 치료해서 10년도 더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재산정리를 하라는 건 너무 이른 것 같아요."

다행스러운 '오진'...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지난 9일 저녁, 동생분과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지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때가 되면 누군가는 먼저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야만 하는 것이 인연이다. 알고 있었지만, 오래도록 함께 '동행'하고 싶은 사람들과 원하지 않을 때 헤어지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러다 10일, 서울에 올라간 동생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진이래요, 오진! 6개월 시한부 그런 거 없고, 입원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통원치료만 받으면 된대요. 좀 희귀한 암이지만, 치료가 가능하다네요!"
"그래요? 정말 기쁘네요! 시한부 6개월이라고 한 병원에 가서 따져야 하나 몰라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이 산뜻해졌다. 입에서 절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하는 인사와 미소가 나왔다. 침통해 있던 동료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서울 병원에 누워 있는 그 분은 현재 굉장히 좋아하고 있단다. 같은 암이라도 치료가 가능한 암과 길어야 몇 달밖에 살지 못하는 암은 천지차이인가 보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시한부 삶이다. 그러나 "시한부 몇 개월"이라는 표현 앞에서 우리 모두는 놀란다. 당사자는 불안에 떤다. 몇 달이란 시간은 그저 한 계절에 불과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정말로 짧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놀라움을 감안할 때 생명을 다루며 진단을 내리는 병원은 조금 더 신중해야하지 않을까. 다소 원망스럽다. 앞으로 몇 달의 시한부라는 표현은 조심해야하지 않을까. 잘못된 시한부선고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일까?


#의료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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