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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르포르타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이상엽이 카메라를 메고 누빈 현장. 백령도에서 제주 강정까지, DMZ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용산에서 밀양 송전탑까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르포르타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이상엽이 카메라를 메고 누빈 현장. 백령도에서 제주 강정까지, DMZ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용산에서 밀양 송전탑까지… ⓒ (주)현암사

누군가가 한 불길한 예언이 딱 적중한다면? 참 당혹스러울 겁니다.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원래 2013년 초 박근혜 정부 출범 쯤에 출간할 계획이었답니다. 하지만 조국 교수가 한 불길한 예언, "이명박 정부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이 현실이 되면서 작업이 연장돼 지금에서야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길한 예언은 3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으로 적중돼 기록되고, 팽목항을 떠도는 원혼은 흑백입자로 프린팅 된 사진으로 담겨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르포르타주 작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2008년부터 오늘까지 많은 거리를 헤맸다고 합니다.

그가 카메라를 메고 서성인 곳은 변경입니다. 단순히 지리적으로만 변두리인 변경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넘어 심리면에서조차 칼바람 씽씽 부는 변두리에 해당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가 두 발로 찾아다닌 곳은 이런 눈물과 저런 설움이 질펀하고, 가슴을 두드리게 하는 아픔과 흐느낌 같은 슬픔이 넘실대는 곳이었습니다. 외로운 투쟁과 고독한 외침이 몸부림처럼 나부끼는 현장입니다.

백령도에서 제주 강정까지, DMZ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용산에서 밀양 송전탑까지… 그가 사진으로 담아낸 현장들은 갈등과 무시당하는 설움, 소외받는 아픔 등이 덕지덕지 쌓이며 한탄의 더께를 층층이 더해가는 방방곡곡 변경들입니다.

DMZ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순간포착으로 그린 <변경지도>

 <변경지도> (지은이 이상엽 / 펴낸곳 (주)현암사 / 2014년 12월 3일 / 값 2만 5000원)
<변경지도> (지은이 이상엽 / 펴낸곳 (주)현암사 / 2014년 12월 3일 / 값 2만 5000원) ⓒ (주)현암사
<변경지도>(지은이 이상엽, 펴낸곳 (주)현암사)는 344,064 바이트의 문자정보와 886,570,214바이트의 사진 정보를 담고 있는 '사진책'입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흑백입니다. 그래서 더 깊습니다. 어떤 사진은 을씨년스러울 만큼 비밀스럽고, 어떤 사진은 까만 띠를 두르고 있는 영정 속 주인공처럼 서럽도록 슬퍼 보입니다. 

백 수십 분에 1초,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기록된 사진들 속에는 변경에서 벌어지는 온갖 풍상, 우여곡절 많은 사연, 섬광처럼 등장했다 자취를 감추는 사회 갈등과 현상들이 한컷 한컷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가는 길이 빙판이다. 설마 비정규직은 황천길도 차별받을까마는, 산 자도 죽은 자도 모두 하늘로 올라가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아 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장례가 마석 모란공원에서 치러졌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다섯이었다. 내가 들르지 못했던 그날 오전의 풍경은 이렇게 묘사됐다. -<변경지도> 118쪽-

보기엔 폼나보일지 모르지만 노가다(막일) 중 상노가다가 사진 찍기입니다. 사진 장비를 메고 다니는 자체도 힘겹지만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겪는 우여곡절이야말로 노가다 중의 상노가다입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급박함,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위한 자리싸움, 지루한 기다림, 놓칠 수 없는 찰나의 순간들에 대한 긴장감…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는 게 한 장의 사진이 얻어지기까지의 과정입니다.   

한 장의 사진이 몇 십 줄의 글, 아니 한 권의 책보다 훨씬 더 웅변적이고 사실적일 때가 있습니다. 글로는 담아내지 못하는 현장을 실감나게 담아내는 게 사진입니다. 그래서 사진이 갖는 호소력은 입체적이고 사진이 보여주는 찰나는 영속적입니다.   

흑백 사진에 다색(多色) 설명, 글 있어 더욱 실감 나

이 책을 '사진집'이라 하지 않고 '사진책'이라고 하지 않는 건 사진만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을 그림자 정보, 사진에는 드리워져 있지만 잘 읽히지 않는 여러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해설의 글을 덧댔기 때문입니다.

조국(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책에 실린 글(문자)을 다색(多色)이라고 했고, 홍세화 전 한겨레 기획위원은 "이상엽은 글은 미래를 열어젖힐 새 가능성을 찾아 '지금 여기'를 엄중하게 증언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국가를 개조하겠다니 작년에 회자되던 '귀태'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현대 정치가 언어의 싸움이라는 것은 오랜 일이다. 귀태는 어설프거나 매우 정교한 언어다. 나는 그 단어를 처음 들었지만 일본식 한자라고 한다. 귀신이 태어나다. 또는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태어났다는 뜻. 일본의 우익 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언급했고, 재일동포 정치학자 강상중이 재인용했다고 했다. 이 단어가 한국 정치에서 사용된다면 딱 박근혜 정권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신 정권, 그래서 다시 아버지 박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유신과 국가 개조는 비슷하게 들린다. -<변경지도> 275쪽 '변경의 미래적 풍경 앞에서'중에서 -

어떤 사진은 보는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글은 읽는 마음을 분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을 보며 느끼는 아픔, 글을 읽을 때 치솟는 분노는 변경을 외면하지 않는 정의이며 아픔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사진은 고통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책에 실린 어느 사진 한 장 고통과 갈등, 아픔과 간절함에서 벗어난 현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보고, 그래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서 있을 수도 있는 이 변경을 기억하고 저 변경을 헤아릴 때 이토록 서러운 변경에서도 사람 사는 맛과 희망이 알음알음 피어오를 거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변경지도> (지은이 이상엽 / 펴낸곳 (주)현암사 / 2014년 12월 3일 / 값 2만 5000원)



변경 지도 - 2008~2014 변경을 사는 이 땅과 사람의 기록

이상엽 글.사진, 현암사(2014)


#변경지도#이상엽#(주)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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