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정신분석학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이름 옆에 나란히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칼 융이다. 그때만 해도 융에게 프로이트는 하늘같은 스승이었다. 둘은 같은 듯하며 다르다. 처음 융은 스승에게서 정신분석학을 배우려 했다. 그러나 너무 다른 두 사람은 대립각을 이루고, 결국 융은 분석심리학을 통해 꿈을 분석한다.
쉽게 말해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으로 꿈을 해석하고, 융은 분석심리학으로 꿈을 해석한다. 일반인이 들으면 그게 뭐가 다르냐고 하겠지만, 둘의 해석 방법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의 내용이자 분석의 기본 단위인 '표상'을 중요시한다. 무의식의 표상을 '사물표상', 의식의 표상을 '의식표상'으로 나눈다. 무의식은 '단어표상'으로 꿈을 표현하는데 있어 '언어유희'(다른 의미를 암시하기 위해 말이나 동음이의어를 해학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방법)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융의 분석심리학은 꿈을 무의식이 발현되는 장소로 보고 이것을 해석함으로 의식의 발전을 이루려 한다. 그러므로 꿈 분석의 중심에 '대극(對極)의 합일'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익숙하지 않은 대극적 특성들을 동화하는 과정으로, 미분화된 내면을 분화시키는 작업이다. 융은 이런 변화를 '윤리적 선택'으로 보았다.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 프로이트와 융의 갈등
프로이트든 융이든 '치유'라는 지향점을 꿈을 매개로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치유'하는데 꿈을 이용하는 방법은 상이하다. 융이 스승 프로이트를 배우며 정신분석 치료법 중 하나인 '토킹큐어'(대화치료)를 통해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대받고 정신적인 상처를 안은 여자 사비나 슈필라인을 치료한다.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데이비드 크로넨버그, 2011)가 바로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정신분석학계의 뿌리이자 거두인 프로이트와 그를 배우고자 했던 융 그리고 그의 치료를 전적으로 신뢰했던 여자 사바나에 얽힌 애증과 사랑의 드라마다. 영화는 프로이트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고자 시작한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이라는 난제와 함께 그들의 사생활 또한 그리 맛깔스럽게 그려내지 못한다.
프로이트와 융은 만날 때와는 달리 학문적 대립으로 말미암아 좋지 않게 헤어진다. 융과 사바나는 거듭되는 상담치료를 통하여 이성관계로 발전한다. 프로이트의 이들에 반대한다. 영화는 은밀한 관계와 두 남자의 비밀스런 무언가에 매스를 가해 보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드러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을 잘 설명하고 있지도 못하다.
영화는 그리하여 멜로물도 아니고 심리물도 아닌 어정쩡 자체가 되고 만다.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 접근을 주문하는 프로이트, 스승의 의견에 순종할 수 없었던 융, 새로운 욕망에 불타는 사바나, 골격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사바나의 욕망이다. 사바나는 치료과정에서 융에게 집착하고 그 집착은 새로운 욕망으로 번진다. 그녀는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다.
결국, 그녀는 아동정신 분석의로 거듭난다. '죽음충동'이란 멋진 개념을 주창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프로이트와 융의 중간(회해)지점에서 그녀를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는 사랑, 질투, 위선 등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며 복선을 깔지만 그리 깔끔하게 끝맺지 못한다. 의사와 환자의 몰입이라는 면에서는 성공한다. 결국 프로이트와 융의 대립으로 영화는 끝난다.
책 <내 무의식의 방>, 프로이트와 융의 화해영화에서 사바나 슈필라인이 아동을 상대로 한 정신분석학자로 거듭날 때 사뭇 기대했다. 프로이트와 융의 화해를. 사바나가 시도하긴 하지만, 영화에서 둘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둘의 화해를 시도한 사람이 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내 무의식의 방>을 쓴 김서영 교수다. 그 또한 영화의 사바나처럼 여자다. 영화의 여성은 실패하나 책의 여성은 성공한다.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 이 둘의 만남을 시도한 것으로만 본다면 분명히 김서영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꿈을 분석하는 방법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방법과 융의 분석심리학의 방법을 모두 사용한다. 두 학문이 상이하지만 연결되는 부분을 찾아낸다. 둘 다 인간의 욕망과 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꿈을 심리 분석의 주요한 재료로 삼는 점에 착안한다.
서로 다른 듯 보이는 두 가지 꿈 분석 방법은 사실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정신분석이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면, 분석심리학은 그 문제를 해결하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출구를 제시합니다.(37쪽)어느 하나를 배제할 것이 아니라 다 사용하자는 것이다. 둘 다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저자는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프로이드가 미처 공개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드러낸다. 저자는 10년 동안의 꿈 일기를 공개하며 정신분석적 방법과 분석심리학 부분을 터치한다. 그러기에 저자는 '내 무의식의 방'이라는 책 제목을 붙일 수 있었다.
저자의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공개함으로 자신이 치유되는 과정을 그대로 묘사한다. 스스로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음을 공개하며 어둡고 깊은 상처를 입은 독자에게 다가간다. 1부에서 잠깐 이론을 말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꿈 일기와 분석을 쓰고 있다. 후반부의 프로이트 가상 꿈 일기도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꿈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어둡고 죄책감으로 얼룩진 기능형 인간이었음을 꿈 일기를 통해 고백하고, 꿈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삶을 즐길 수 있는 욕망형 인간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다하지 못한 프라이버시 부분도 공개하여 진정한 꿈 분석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책은 꿈 분석의 6단계를 가르쳐준다. ▲ 녹음기를 미리 준비하여 일어나자마자 꿈 내용 녹음하고 ▲ 꿈 내용을 적고 질문을 적은 후 ▲ 최근 떠오르는 생각 등 꿈의 배경을 적는다. ▲ 정신분석학으로 분석하고 ▲ 다시 분석심리학으로 분석하여 ▲ 두 가지 꿈 분석을 종합하여 변화로 이끄는 순서이다. 이렇게 함으로 무의식의 꿈은 곧 의식의 적용으로 가게 된다.
'학자는 쉬운 걸 어렵게 말하는 사람'이라는 통설을 뒤집은 김서영의 <내 무의식의 방>, 꿈의 분석을 통해 지난한 과거를 청산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젓게 되는 정신분석학이나 분석심리학이 어렵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역작이라 평가된다.
덧붙이는 글 | <내 무의식의 방>(김서영 지음 / 책세상 펴냄 / 2014. 12 /420쪽 /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