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들이 참 다양한 방법의 트릭을 사용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트릭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자. 하나는 소설 속에서 범인이 수사관을 속이기 위해서 만드는 트릭이다. 다른 하나는 작가가 독자를 속이기 위한 트릭이다. 범인이 탐정을 속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두 번째 트릭이다. 이런 속임이 어떻게 가능할까.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작가가 독특한 서술방식을 이용해서 독자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일본 작품들에서 이런 기법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영미권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도 이런 작품에 해당한다.
세 여인의 사슬 같은 인연미나토 가나에도 자신의 2011년 작품 <꽃 사슬>에서 이렇게 독자들을 속이기로 작정을 했던 모양이다. <꽃 사슬>을 읽다보면 작품의 마지막까지 트릭의 정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트릭이 사용되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꽃 사슬>에는 세 명의 서로 다른 젊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1인칭 시점에서 교대로 진행된다. 그들의 이름은 리카, 미유키, 사쓰코. 모두 20대 중후반의 여성으로 독신녀도 있고 결혼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하는 일도 제각각이고 집안 사정도 모두 다르다.
대신에 사는 곳 부근에 있는,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매향당'이라는 전통과자 전문점에 드나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손님이 집에 찾아오거나, 아니면 자신이 누군가를 방문할 때 매향당에서 전통과자를 사서 선물로 주려고 한다.
이들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인물은 리카다.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리카는 회사의 도산으로 인해서 월급도 퇴직금도 못받고 실직한 상태다. 그녀는 몇 년 전에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문제는 할머니가 중병을 앓고 있기에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것.
리카는 오래 전부터 1년에 한 번씩 할머니에게 꽃을 선물해왔던 정체불명의 인물 K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심한다. 이 K는 다른 주인공들인 미유키, 사쓰코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 세 명의 여성은 서로 어떤 비밀을 공유하고 있을까. 다른 사연을 가진 세 여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가 보여주는 독특한 트릭의 재미미스터리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사용한 트릭에 자기도 모르게 넘어갈 때가 있다.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이야기에 집중하지 '어떤 트릭을 썼을까'라고 추리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미나토 가나에도 그런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꽃 사슬>은 국내에 소개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인 <고백>, <야행관람차>, <왕복서간> 등에 비해서 본격적인 트릭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미나토 가나에가 '이 작품으로 작가인생 제2막이 시작된 듯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트릭이 돋보인다'라는 말 자체가 일종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꽃 사슬>을 읽으면서 이 트릭의 정체를 간파하는 독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작정하고 독자를 속이려고 하면, 대부분의 독자는 거기에 넘어가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런 즐거움을 위해서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꽃 사슬> 미나토 가나에 지음 / 김선영 옮김. 비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