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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보안법 위반과 업무 방해, 강요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이감되며 청사를 나서고 있다.
▲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구속 항공보안법 위반과 업무 방해, 강요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이감되며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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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12일 오후 6시 17분]

법무법인 광장, 화우 등 대형로펌이 나섰지만 '조현아 구하기' 1탄은 실패로 끝났다.

12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성우)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항로변경죄, 항공기운항저해폭행죄 등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판단한 데다 조 전 부사장이 피해자인 박창진 사무장과 김아무개 승무원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볼 때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결정적 한 방'은 항로변경죄 유죄 판결이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5일 미국 뉴욕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086편 항공기에서 박창진 사무장과 김아무개 승무원이 객실 서비스 매뉴얼을 어겼다며 두 사람을 내리라고 했다. 이때 비행기는 견인차에 의해 후진하며 활주로 쪽으로 이동하던 중(푸시백)이었다.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단은 항로의 개념을 지표면에서 200m 이상의 공역(관제구)으로 정한 국토교통부 고시 등을 근거로 이 일은 항로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땅콩회항은 항로변경죄'가 실형 선고에 결정적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오성우 부장판사는 항로의 사전적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는데다 관련 법률이나 규정마다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른 점을 볼 때 입법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 항공기는 출발을 위해 푸시백을 시작했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서 박창진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며 "당초 진행 방향에서 벗어난 것은 항로변경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 일이 자신이 아닌 기장의 결정이었다는 조 전 부사장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전 부사장이 박창진 사무장을 업무에서 배제한 일 역시 업무방해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그가 객실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부사장이긴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볼 때 박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하고, 김아무개 승무원을 질책한 일 등은 경영 판단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조 전 부사장은 당시 승객으로 탑승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또 기장이 당시 박 사무장에게 보낸 '너무 당황스럽다, 힘내라'는 문자를 볼 때 기장 역시 업무를 방해당했다고 판단했다.

조 전 부사장과 함께 승무원들의 허위 진술을 유도하고, 박 사무장의 상황 보고서 등 당시 자료를 숨기려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여아무개 대한항공 상무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그가 회사 경영진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이 사건의 발단을 승무원 책임으로 돌리고, 승무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암시하며 국토부 조사 때 허위진술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조 전 부사장과 그가 국토부 조사를 방해했다기보다는 국토부 조사가 부실했다며 두 사람의 공무집행방해죄 일부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여 상무가 경영진의 잘못을 은폐하는 일이 회사를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조 전 부사장보다 수위가 낮은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또 다른 피고인, 김아무개 국토부 항공안전감독관은 형 집행을 확정판결일로부터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대한항공 출신인 그가 잘 알고 지내던 여 상무에게 국토부 조사보고서와 향후 계획 등을 알려준 일은 공무상 비밀 누설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여 상무의 끈질긴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보고서 일부만 알려줬고, 승무원 조사에 동행한 여 상무에게 나가달라고 하는 등 나름대로 공정한 자세를 유지하려 한 점 등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했다.

"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 끝내 눈물 보인 조현아

1시간여 동안 판결 이유를 설명해나가던 오성우 부장판사는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말을 꺼냈다. 그는 "박창진 사무장 등 피해자들이 조현아 피고인에게서 진정한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피고인이 사건의 발단은 승무원들의 매뉴얼 위반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진정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조현아 피고인보다 박창진 사무장과 김아무개 승무원이 가진 고통의 무게가 더 무겁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 부장판사는 "다만 양형에 고려했다"며 조현아 전 부사장의 반성문을 소개했다.

"저는 그 모든 일이 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람에 대해 따스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 박창진 사무장과 김아무개 승무원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당시 마음 한 켠에 이래도 될까 하는 게 없진 않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두 사람 다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조 전 부사장은 오 부장판사가 자신의 반성문을 읽어 내려가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다시 연초록색 수의를 입은 채 구치소로 돌아가야 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실형 선고에 당황한 듯 말을 아꼈다. 몇몇 변호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하며 차에 올랐다. 취재진에게 둘러싸인 서창희 변호사(법무법인 광장)은 "조 전 부사장도 많이 반성하고 있다, 판결문을 검토해보고 항소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짧은 설명만 남긴 뒤 서둘러 법원을 빠져나갔다.


태그:#조현아, #땅콩회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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