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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6일은 '송파 세 모녀'가 마지막 방값과 공과금을 봉투에 넣어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입니다. 그들의 1주기를 기리며 기초법 시행령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짚는 연속칼럼을 기고합니다. - 기자 말

 생활고를 겪다 자살한 '송파 세 모녀'가 집주인에게 남긴 메모와 70만 원이 든 봉투
생활고를 겪다 자살한 '송파 세 모녀'가 집주인에게 남긴 메모와 70만 원이 든 봉투 ⓒ 서울지방경찰청

2월 26일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송파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허술한 사회적 안전망과 저소득층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이른바 '세모녀법'이라고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올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큰 골자는 기존에 통합지원 방식으로 선정·지급되던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을 각 급여별 선정기준을 별도로 적용하여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 개정안이 복지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송파 세 모녀'들을 위한 법이라며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개정안은 '세 모녀'가 살아 돌아와 수급을 신청한다 해도 절대로 수급자가 될 수 없는 불행한 개정안이다. 세 모녀가 빠진 세모녀법인 것이다.

우선 기초법의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자 기준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추정소득의 부과(수급 대상자의 소득이 불명확한 경우 주거, 생활실태, 과거 노동이력, 노동능력 등을 토대로 일정 정도의 소득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 재산의 소득환산제(기본재산 규모를 초과하는 일반재산, 금융재산, 승용차 등 재산금액을 소득으로 환산해 수급자의 소득에 합산하는 제도) 등 비현실적이고, 오히려 수급권자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조항들이 많다.

또 기초법은 노동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최저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그 기본취지이지만, 현재는 근로능력이 있거나 근로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수급신청을 하면 '멀쩡한 사람이 왜 수급을 받아?'라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한다. 수급을 받지 못하면 당장 내일을 살 수 없는 상황임에도 장애나 질병이 없으면 '근로무능력' 판정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급이 거절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어렵게 수급을 받아 자활근로를 신청해도 일자리가 없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송파 세 모녀도 수급을 받아보려 주민센터에 찾아가 봤지만 수급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세 모녀'가 이 법이 '세 모녀 법'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면 뭐라고 할까?

송파 세 모녀 빠진 불행한 '세모녀법'

지난해 10월 국민연금공단의 잘못된 근로능력평가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찌된 일일까? 버스 운전기사이던 고 최아무개(사망 당시 60)씨는 직장검진 중 심장혈관 이상을 발견하여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 늘어난 대동맥을 인공혈관으로 바꾸는 재치환수술을 받았다. 대동맥류는 대동맥이 손상되면서 혈압을 못 이기고 부풀어 오르다 사망할 수도 있는 중증질환이다.

그러나 지난해 1월 국민연금공단에서는 최씨에게 '건강이 비교적 양호하다'는 의학적 판정을 내렸다. 최씨는 곧 조건부 수급자로 변경됐고, 2월부터 정부의 '근로빈곤층취업우선지원사업'에 참여해 집 근처 아파트 주차장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지 네 달이 지난 그 해 6월, 최씨는 일하던 중 온몸이 심하게 붓고 고열이 나 쓰러졌다. 최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인공혈관 부위의 감염이 심해져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씨의 부인인 곽아무개씨는 "남편이 입원해 있는 동안 국민연금공단 관계자가 '왜 출근하지 않느냐'고 재취업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최씨가 평소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 하는 등 일할 수 있는 건강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몸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다는 이유로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고 '강제 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외모가 더러우면 근로능력이 없다?

 지난해 10월 28일 고 최씨의 사례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지만 아직도 명확한 답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이다
지난해 10월 28일 고 최씨의 사례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지만 아직도 명확한 답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이다 ⓒ 빈곤사회연대

최씨의 사례처럼 기초법의 신청 문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독소조항이 '근로능력평가판정'이다. 애초 2000년 기초법이 만들어질 당시 수급권자는 노동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모든 국민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근로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이 가능하게 했다.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두어 자활을 개인의 노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요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2009년 '근로능력평가의 기준 등에 대한 규정'을 입법하면서 수급권자의 인권과 건강권을 침해하기 시작했다. 법이 개정된 뒤론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됐다 하더라도 근로능력판정을 통해 근로능력이 없는 자와 있는 자로 나뉘게 됐다. 보통 근로능력판정에서 근로능력이 있는 자로 판정되면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받게 된다.

근로능력판정은 연령, 장애, 질병 및 부상 기준 등으로 구성된 의학적 평가와 체력, 취업가능성, 집중력, 자기관리, 근로의욕, 자기통제, 표현능력 등으로 구성된 활동능력 평가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활동능력 평가 기준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외모가 혐오감을 주거나, 청결하지 못하면 자기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하여 근로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항목들로 구성되어 있는 활동능력 평가는 수급권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심어줘, 수급권자들은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공단의 평가 결과를 토대로 지자체 담당공무원이 근로능력 유·무를 최종 판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활동능력 평가와 그것을 근거로 한 근로능력판정이 근로능력을 실질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이러한 판정은 근로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을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고, 근로능력이 있는 가난한 이들은 게으른 복지부정수급자로 매도당하며 굴욕과 수치를 경험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들은 이미 자본주의 시장에서 일단 탈락한 상태로, 사회적 근로능력 유·무가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능력을 개인적인 의지나 상황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차별적이며 부적절한 근로능력판정 제도의 폐지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송파 세 모녀를 대거 양산하게 될 기초법 개정안

2009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야 할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절대적 빈곤층이 14.4%(약 700만 명)로 조사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2009년 약 156만 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꾸준히 줄어들어 2014년에는 134만 명을 기록했다. 즉, 약 500~600만 명, 국민의 10% 이상이 최저생계비를 못 벌지만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개정안에 우려를 표하는 것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는커녕 수급자들이 대거 탈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현재 의료급여 2종 수급자를 원칙적으로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생·한부모 등 근로능력이 있어도 사정상 당장 돈을 벌 수 없는 사람들의 경우 지금은 의료급여를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것이다.

수급권자에게 근로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의료비 부담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근로능력평가로 인한 의료급여 제도의 1, 2종 종별구분은 폐지되어야 한다. 거꾸로 가고 있는 정책은 결국 우리 사회의 '송파 세 모녀'를 대거 양산하게 될 것이다. 의료안전망으로서 의료급여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재정절감의 기준으로 수급권자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차별적인 제도를 더 확대하려고 하는 게 이번 개정안의 본질인 것이다.

기초법은 우리 사회 최후의 사회보장 제도이다. 제대로 된 의료보장 제도라면, 제대로 된 국가라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의료급여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현재 개인에게 본인부담금을 지우는 법정본인부담 정책을 폐지하고 의료급여 2종을 1종으로 통합해야 한다.

그리고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와 빈곤층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와 일자리 제공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며, 그것이 이들의 건강권과 평등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개인의 판단과 선택을 무시하는 근로능력 평가는 국가권력이 가난한 이들에게 가하는 행정적 폭력이며 억압일 뿐이다. 사회와 국가의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고 공적 책임을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가난과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건강세상네트워크 집행위원입니다.
* 빈곤사회연대에서는 송파 세 모녀 1주기 추모제를 준비하며 '세모녀법'에 대한 연속 칼럼을 3회 기고하였습니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 알려진 지 1년째 되는 2월 27일(금) 오전 10시 30분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조계종 노동위원회와 함께 송파 세 모녀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내고자 합니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함께 추모하고 싶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빈곤#기초법#노동#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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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경쟁을 강요하고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회에서 발생합니다. 빈곤사회연대는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서 한시적 원조나 시혜가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 빈곤해지지 않을 권리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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