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개봉해 큰 성공을 거둔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는 평범한 팬더곰 포가 쿵푸의 고수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용문서의 전수자로 쿵푸의 절대고수가 된 포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건 좀처럼 늘지 않는 실력과 주변의 무시였다. 그런 포를 거듭나게 만든 건 대사부 우그웨이.
그는 자신감을 잃은 포에게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알 수 없으며, 오늘은 선물과 같다"는 조언을 건넸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알 수 없기에 현재에 충실하라는 이 말은 <쿵푸팬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기억하는 명대사다. 스승의 조언에 크게 깨달은 포는 끝없는 수련 끝에 스스로를 넘어서 진정한 쿵푸팬더로 거듭난다. 여기까지가 쿵푸팬더의 전설이다.
전설이 전설인 이유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포는 스승의 조언에 따라 과거에 얽매이지도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현실에 충실했지만 모두가 포와 같았다면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과거에 괴로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선물과도 같은 현실을 흘려보내기 일쑤다. 이것이 영화보다 현실적인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이성의 시대에 전성기 맞이한 비이성의 영역현대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앎의 영역이 확장된 시대다. 1977년 발사된 무인탐사선 보이저1호는 발사된 지 36년 만에 태양계 밖으로 벗어났다.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그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뻗어나가고 있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는 2013년 3월 14일 '신의 입자'라고 불렸던 힉스입자의 존재를 입증했고, 같은 해 10월 4일 이를 재확인하며 우주 기원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섰다. 이로써 신이 없는 우주의 탄생은 있을 수 있어도 힉스입자 없는 탄생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다. 물리학의 성과에 발맞춰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과학의 여러 분야에서도 크고 작은 성취가 이어지고 있다. 인간이 사물을 이해하는 폭은 지난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이성을 무기로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온 인류사회의 한 가운데선 비합리의 영역 역시 전성기를 맞이한 듯 보인다. 도심 곳곳에 널려있는 다종다양한 미래예측업소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신내림을 비롯해 천체운동이나 대기현상부터 카드, 주사위, 수정구, 제비, 흙, 불, 뼈, 쌀 등 소품을 이용한 각종 점술이 횡행하고 음양오행론에 바탕을 둔 명리론과 관상, 골상, 손금 등을 통한 온갖 운명예측 행위가 성행한다. 개중에서 소위 '점발'이 선다는 곳은 주머니 가득 현금을 싸들고 가도 한 번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니 운명론의 시장규모가 한 해 수 조 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다.
나의 인생코드는 무엇일까?굿플러스북에서 내놓은 신간 <내 안에 인생코드>는 명리론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운명과 체질, 성향까지를 알아보는 책이다. 명리학이라고도 하는 명리론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통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일종의 미래예측이론이다.
천간·지지(天干·地支)의 육십갑자에 음양오행을 덧입혀 이를 바탕으로 사물의 성향과 미래까지를 예측한다. 명리론자들은 음양오행의 배합과 상호관계를 바탕으로 인간의 운명까지를 내다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절대적 운명론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참고한다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종로구 가회동 북촌학당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저자 남경우씨의 주장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이 책을 비전문가들도 쉽게 명리론을 접할 수 있게 돕는 교양서 정도로 기획했다는데 이를 위해 불필요한 개념을 최대한 생략하고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법한 내용을 중심으로 꾸몄다. 특히 사주팔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주(日柱) 첫 글자를 인생코드라 명명하고 이로부터 독자가 스스로의 기본적인 성향을 알아볼 수 있게끔 한 부분이 흥미롭다.
책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열 가지 코드 중 하나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각각의 코드에 따라 저마다의 성향을 내보이게 된다. 책이 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어 독자는 마치 혈액형이나 별자리, 각종 온라인 심리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성향을 알아볼 때와 같은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굳이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사주를 볼 필요 없이 책을 보고 자신과 주변인의 성향을 진단해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일 듯하다.
책은 스티브 잡스, 정약용, 빌 클린턴, 김연아, 성철스님, 덩 샤오핑, 마릴린 먼로, 스티븐 호킹, 정주영, 안토니오 가우디, 리오넬 메시, 도널드 트럼프, 빈센트 반 고흐 등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각계각층의 유명인을 예로 들어 각각의 인생코드가 가진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저자는 이들이 삶을 통해 자신의 인생코드를 어떻게 발현시켰는지에 주목하고 책을 읽는 독자 스스로 인생코드를 확인하고 자신의 성향이 가진 단점을 보완해 더욱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꽤나 온건하고 안전한 결론인 셈이다.
명리론은 학문인가, 미신인가?책은 명리론의 단순 활용서의 수준을 넘어 개략적인 이론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음양론과 오행론, 십간십이지론, 육신론과 체질론, 섭생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을 설명하며, 운명론을 옹호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는데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저자는 오랫동안 운명론이 미신으로 치부되는 모욕을 받아왔지만 그 생명력이 지속되는 것엔 이유가 있다며 현대 과학에 대한 맹신의 위험도 경고한다.
더불어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학과 미래의 수익을 예상하는 경제분석이 유용한 것처럼 명리학 역시 인생을 이해하는 유용한 틀이라고 주장한다. 운명론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운명론의 토대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전무하다는 비판 역시 잊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엔 명백한 허점이 있다. 명리론의 추종자들이 스스로 명리론을 명리학이라 부를 만큼 체계와 분석을 강조함에도 현대 과학과 명리론이 융화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건 그들이 육십갑자와 음양오행에 기초한 분석의 틀을 합리적 이유없이 맹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리론은 이에 기초해 인간과 사물을 이해하는데 그 과정에서는 합리적 분석이 도구로 쓰임에도 해석의 전제에 대해서는 합리성을 배제하는 모순을 보인다. 마치 경전을 불변의 기초로 두고 그로부터 이성적 해석을 시도하는 일부 종교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학문은 의심을 통해 진보한다. 어떤 이론의 절대화는 곧 학문의 죽음이다. 명리론이 미신이 아닌 학문으로 진입하고자 한다면 비판하는 사람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의심하고 그 불합리성을 혁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명리론은 혈액형별 성격분류와 다를 바 없는 미신으로 남을 뿐이다. 그러니 저자는 데일 카네기 류의 자기계발서를 비판하고 여러 이름난 학자들의 말을 덕지덕지 인용하기에 앞서 명리론의 전제부터 의심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누구도 혈액형별 성격분류를 혈액형학이라 부르지 않는다. 혈액형별 성격분류가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얻고 있는 것과 그것이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미래학과 경제분석은 그것이 비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때 맹렬한 비난을 감수한다. 그런데 명리론은 어떠한가? 우주창조의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고 인간의 이해가 태양계 밖으로 뻗어나가는 이 시대에 명리론의 존재의의는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덧붙이는 글 | <내 안에 인생코드>(남경우 지음 / 굿플러스북 펴냄 / 2015.02. / 1만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