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년 간 기른 머리카락 자르는 영석 엄마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오른쪽 두번째)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삭발하고 있다.
▲ 수년 간 기른 머리카락 자르는 영석 엄마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오른쪽 두번째)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삭발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삭발한 영석 엄마 "'엄마 멋져' 했을 거예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사진 왼쪽 첫번째)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아들이 저 삭발한 거 보면 분명히 '엄마가 최고야, 엄마 멋져요' 했을 것이다"고 발언하고 있다.
▲ 삭발한 영석 엄마 "'엄마 멋져' 했을 거예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사진 왼쪽 첫번째)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아들이 저 삭발한 거 보면 분명히 '엄마가 최고야, 엄마 멋져요' 했을 것이다"고 발언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수 년간 애써 기른 머리카락은 13분 만에 잘려 나갔다. 삭발 전, "엄마니까 (괜찮다)"라며 씩씩하게 웃어보이던 세월호 유가족 권미화(고 오영석군 어머니)씨는 가위질이 시작되자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입을 꾹 다물고 울음을 참던 그녀는 결국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후드득 무릎 위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움켜쥔 주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울면서도 권씨는 목에 건 학생증 속 아들 얼굴을 정성껏 쓰다듬었다. 머리를 다 밀고나서는 학생증을 들어 아들에게 민머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늘 저는 군대 가기 전 아들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엄마 품에서 나갈 때의 부모 마음을 알았습니다. (…) 저희도 사람답게 살고 싶고,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내가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 얘들아…."(영석엄마 권미화씨가 삭발 후 한 말)

두 눈을 꼭 감은 채 쉼없이 울기만하는 영석엄마를 '영석아빠' 오병환씨는 멀찍이 서서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삭발을 마치고, 어색한 듯 머리를 매만지며 자리로 돌아온 부인을 영석아빠는 말없이 감싸안았다. "우리 아들 군대 보냈다"라며 권씨가 애써 웃자, 영석아빠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예쁘네."

2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 시행령안 철회·세월호 선체인양 등을 요구하며 집단 삭발을 단행했다. 여기에는 외아들 오영석(단원고 2-7)군을 세월호 참사로 잃은 유가족 오병환씨·권미화씨, 딸 김민정(단원고 2-10)양을 잃은 김병준씨·정정임씨 등 두 부부도 포함돼 있었다. 김씨 부부는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울며 삭발했다.

10여 명씩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삭발식에서 영석아빠는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삭발식 도중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입을 굳게 다문 채 삭발했다. 민머리에는 ''진실규명' 노란띠가 둘러졌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광화문을 지키면서 '왜 싸우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광화문을 계속 지키면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왜 싸우지 않냐, 왜 가만히 있냐'고요. 아까 애 엄마(영석엄마)가 머리 깎은 걸 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픈지….  그러나 절대로 다시는 울지 않겠습니다. 이젠 정부에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앞으로라도 국민들과 힘 합쳐서, 기필코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어보겠습니다."

"아들이 저 삭발한 거 보면 분명 '엄마 멋져' 했을 거예요"

영석 엄마 "아들 먼저 가게 해서 미안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삭발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시민이 권 씨를 위로하고 있다.
▲ 영석 엄마 "아들 먼저 가게 해서 미안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삭발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시민이 권 씨를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아내 토닥이는 영석 아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아버지 오병환 씨와 어머니 권미화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삭발한 뒤 서로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 아내 토닥이는 영석 아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아버지 오병환 씨와 어머니 권미화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삭발한 뒤 서로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농성장 지킴이' 영석아빠와 달리 영석엄마는 보통 경기도 안산 집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그녀도 이날은 농성장에서 잤다. "유족들은 정부 시행령안 철회를 요구하는데 차일피일 핑계만 대고, 돈 얘기만 꺼내는"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아침에는 인근 커피숍 화장실을 빌려 머리를 감았다. 영석아빠도 광화문역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권씨는 광화문 천막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고, 젖은 머리를 광장 바람으로 말리며 삭발을 준비했다. 씩씩한 모습이었다. 모자 쓴 자원봉사자들에게 "나중에 나도 좀 빌려달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라면서 "아들이 몇년 후에 머리 자를 걸 제가 먼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삭발, 여자는 힘들지... 근데 난 엄마잖아").

"아들이 저 삭발한 거 보면 분명히 '엄마 최고야, 엄마 멋져요' 했을 거예요. 우리 아들 애교도 많고 착하고, 살아있을 때 저만 보면 늘 '힘내요 엄마' 했거든요. 그래서 애 아빠가 질투도 많이 했지(웃음). 이게 맞는 거라면, 저는 이거 두 번 세 번도 할 수 있어요."

그렁그렁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두 눈을 꼭 감으며 각자 울음을 참는 유가족 아빠들과 달리 엄마들은 삭발 후에도 서로를 껴안은 채 울고 웃었다. 눈물 많고 웃음도 많은 권씨 주변으로 지인 여럿이 모여들었다. 점심 때도 아들 또래 대학생들과 식사하며 반찬을 살뜰히 챙겨주던 그였다. 지인들은 "예쁘다" "10년은 젊어보인다"라면서 권씨를 위로했다.

평소 말이 없는 영석아빠는 이날 삭발을 하고서도 조용했다. 우는 아내를 토닥이며 멋쩍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영석아빠는 지난달 30일 청와대 서한전달행진을 하다 경찰에게 막혔고,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서 목이 쉬었다고 전했다. "다정하게 사진 좀 찍어보라"는 지인들의 성화에 '세월호 인양' '진상규명' 노란띠를 이마에 두른 두 사람이 포즈를 취했다. 

"정부, 아직도 상중인 유족들을 돈으로... 삭발이든 뭐든 할 것"

삭발하고 거리 나선 영석 엄마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며 거리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 삭발하고 거리 나선 영석 엄마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오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며 거리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아들이 제일 그리울 때는요, 잠을 자다가 새벽에 깼는데 옆에 아무도 없을 때. 종종 같이 잤거든요. 그리고 텅텅 빈 냉장고를 볼 때. 예전엔 아들 먹으라고 과일, 고기 다 사다놓곤 했는데 이젠 (냉장고 안에) 생수 뿐이야. 사실 아이 그렇게 되고 나서 애 아빠 따뜻한 밥 한끼 해준 적이 없어요. '우리는 밥 먹을 자격도 없다'고, 내가 그랬어."

삭발식 후 유가족들은 광화문 인근을 돌아다니며 세월호 인양 촉구 등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배포했다. 영석아빠가 광장을 지키는 동안, 권씨는 청계천과 서울시청을 돌며 "세월호에 아직 실종자 9명이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길을 걸으면서 그녀는 기자에게 아들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았다. 아직도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아들이 수학여행 떠나서 20일날 (시신으로) 돌아왔어요. 안산까지 구급차 타고 이동했는데, 우리는 (상자) 다 열어놓고 아들 만지고 뽀뽀하고 그랬어요. 심하게 부패하진 않았는데, 손톱이 새까맣게 돼가지고…. 아들 냄새가 그래도 아직 기억나. 내가 나중에 우리 아들 손주도 공짜로 키워준다고 했었는데…"

"나 머리가 너무 시원해, 샴푸값도 안 들고 좋네 뭐"라고 너스레를 떨며 유가족 엄마들을 웃게 만들던 그녀는, 아들 얘기를 꺼내자 "아직도 함께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금세 울먹였다. 아들 고 오영석군이 숨진 후에도 아들 휴대전화 카카오톡으로 고해성사하듯 매일 속마음을 털어놓던 그녀다(관련기사: "꿈에서 보자, 대답 없는 나쁜 내 새끼").

거리 선전전을 마치고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오던 길, 지나가던 한 50대 여성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나"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권씨는 "정부는 아직도 상중(喪中)인 가족들을 돈으로 매수하려고 하는데,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밖에 없다"라면서 "부모의 맹목적 사랑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삭발식에 참여한 유가족 대다수는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을 한 뒤, 오는 3일에도 거리 선전전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권씨가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남기는 말이다.

"아들, 먼저 가게 해서 미안하고,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착한 아들의 엄마로 내가 살 수 있어서 또 고마웠어."


#유가족 삭발#세월호 유가족 삭발#세월호 인양 촉구#정부 시행령 철회#영석아빠
댓글7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