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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사건명은 '성완종 리스트', 이전 명칭은 'MB정부 자원외교 비리 수사'다.

사실 갓 취임한 이완구 국무총리가 갑작스레 '부정부패 척격'을 운운할 때에도 국민여론은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냉소적이었다. 비록 총리는 1990년대 초 6공화국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를 떠올릴 만큼 결의에 찬 얼굴로, 마치 이 세상 모든 비리를 없앨 듯 이야기했지만, 국민들에게는 한 편의 코미디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썩은 집단이 비리 척결을 이야기하는 바로 그들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기대하지 않았던 현 정부의 비리 척결

 총리의 결연한 의지
총리의 결연한 의지 ⓒ ytn

국민의 무관심은 사정정국이 'MB정권의 비리'로 좁혀 들어가기 시작할 때도 그대로였다. 현 정권이 MB정권의 비리를 제대로 파헤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현 정부는 '이명박근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 정권과 불가분의 관계인데, 그런 정부가 MB 정권의 비리를 파헤친다고? 게다가 MB는 자서전까지 출판하며, 자신을 건드리면 박근혜 정부의 치부를 폭로하겠다고 공공연히 협박 중이지 않은가.

아무리 보궐선거가 중요하고, 4·16 세월호 1주년을 덮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현 정권이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면서 전 정권을 수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국정원 사태를 겪으며 정당성에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 현 정부가 그 모든 걸 감수하며 MB 정권의 비리를 철저하게 수사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국민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을 수밖에.

'당연히 청와대가 검찰에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검찰은 그에 맞춰 수사하겠지. MB는 차마 건드리지 못하고 결국 친박계와 친이계가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아 희생양으로 만든 뒤 국민들에게는 뭔가 큰 비리를 파헤친 것처럼 선전하겠지.'

실제로 자원외교나 4대강 사업 등 MB정부의 비리는 이미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일이다. 현 정권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파헤칠 수 있는 비리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현 정권은 제대로 된 비리척결 의지가 없었고,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국민들은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바꿀 만한 사건이 터졌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사자는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

MB정권 비리를 수사하면서 성완종 전 회장 뉴스가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그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현 정권과 전 정권이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그는 정치권에 돈을 건넸던 수많은 기업인 중의 한 명이었고, 그 중에서도 희생양 삼기에 가장 만만한 인물로 추측될 뿐이었다. 최소한 그가 따로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분위기는 지난 8일 성 전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여느 기업인 같았으면 그냥 죄송하다며 인정하고 국민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망각할 시점까지 죗값을 치르다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핑계로 사면을 받고 나왔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굳이 따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눈물 흘리는 성완종 "나는 MB맨 아니라 MB 정부 피해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성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MB(이명박) 정부의 피해자가 어떻게 MB맨이 되겠냐"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말했다.
눈물 흘리는 성완종 "나는 MB맨 아니라 MB 정부 피해자"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성 회장은 이명박 정부시절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MB(이명박) 정부의 피해자가 어떻게 MB맨이 되겠냐"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말했다. ⓒ 유성호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억울함이었다. 성 전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스스로를 MB맨이 아니라, MB 정부의 피해자로 정의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한창일 때, 허태열 의원 소개로 박근혜 후보를 만나 뵙게 됐다.", "박 후보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지만, 이명박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경선 후 박 후보가 대승적 차원에서 이명박 후보 당선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씀해 열심히 노력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현 정부가 MB맨으로 몰아가며 사정정국의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니 억울하다는 성 전 회장. 기자회견에서 보인 그의 눈물은 바로 이와 같은 억울함의 결정체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보낸 뒤 성 전 회장은 자살을 선택했다. 검찰과의 법정공방을 통해서도 충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죽음으로써 이야기하고자 했다. 게다가 현 정권의 실세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메모까지 남겼다. 작심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표명한 것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 남소연

기자회견으로 술렁이기 시작한 국민 여론이 그의 죽음과 함께 본격적으로 들끓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다. 죽음을 결심한 이가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비록 메모에 등장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사자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며 발뺌을 했지만, 그것만으로 국민들의 의혹을 잠재울 수는 없다. 동서고금을 망라해 사자의 유언만큼 강력한 증언이 또 있을까?

게다가 그는 굴지의 기업인이며 전 국회의원이다. 누구보다 정경유착에 대해서 빠삭했을 터. 정치자금과 관련된 장부도 있지 않을까. 여기에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하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비리들이 적혀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수사만이 답이다

결국 공은 다시 검찰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정치에 신경 쓰지 않았던 많은 국민들이 소위 '성완종 리스트'를 통해 다시금 뉴스를 보게 되었다. MB정권을 겨눴던 화살이 현 정권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국민들이 다시금 이번 사건을 눈여겨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검찰이 할 일은 자명하다. 제대로 된 수사를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수사 결과가 앞서 언급한, 국민들이 예상했던 수준이 된다면 이는 3년차를 맞는 현 정권에게 매우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기업인 중에서도 입지적인 인물로 통했던 성 전 회장의 죽음은 특히 현 정권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정부가 그 정도의 의리도 지키지 못함을 보여주는 꼴이 됐다. 어쨌든 현 정권의 지지자들 중 많은 이들은 그 '의리'만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이들 아니던가.

SBS드라마 <펀치>의 포스터 부디 '하경'과 같은 검찰이 되기를
SBS드라마 <펀치>의 포스터부디 '하경'과 같은 검찰이 되기를 ⓒ SBS

지난 겨울, 많은 이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은 SBS 드라마 <펀치>는 검찰을 검찰보다 더 검찰답게 묘사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현직 검찰들은 그 드라마가 현실과 다르다고 억울해 했다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검찰을 그 드라마가 묘사하는 수준으로 인지하고 있다. 억울하다고? 그럼 이번에야말로 그 오명을 벗어보시길. 드라마의 정국현이 그러지 않았던가.

"검사가 들어야 할 명령은 청와대 하명이 아니고, 법의 명령입니다."


#성종완#자원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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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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