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하는 정부와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공범 관계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공범자인 셈이다. 불의와 관행화된 비리를 몸에 붙인 우리 모두가 공모해 세월호를 맹골수로로 내몬 것이다. 침묵함으로써 불의해 복종해 온 것이 다름 아닌 우리이기에, 고백을 통해 진실로 나아가는 첫걸음 역시 우리의 몫일 수밖에 없다."- '망각에 저항하기' 전시회 서문 중에서 '망각'(忘却). 국어대사전에서는 '어떤 사실을 잊어버림'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망각'은 그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용서하자', '덮어버리자', '그만하자', '끝내자' 등. 이 말들에는 얼핏 상처를 덮고 하나가 되자는 화해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새 출발을 위한 품 넓은 너그러움과 어떤 단호함도 느껴집니다.
상처를 덮으라는 망각의 목소리는 달콤합니다. 기억의 고통으로 몸서리칠 때, 기억을 잘라내고 싶은 충동은 정비례하니까요. 그럴 때 망각의 목소리는 얇은 귓속을 파고듭니다.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 이제 그만 잊자'고. 망각의 목소리가 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억을 소멸시켜 그 흔적을 완벽히 지우고 끝내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망각의 목소리에 대거리하는 전시회가 안산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10일부터 경기민족예술인총연합과 민족미술인협회 주최로 안산문화예술의전당 1, 2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4·16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전시 '망각에 저항하기'가 그곳입니다. 전시회는 오는 24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열립니다.
애초 전시회는 참사 희생자 수와 같은 304명의 예술가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품을 전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들의 전폭적인 참여로 370명이 넘는 작가들이 400여점을 출품할 정도로 관심과 참여가 폭발적이었습니다. 전시 작품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작가들 스스로 세월호 1년을 되짚어 성찰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던 것입니다.
진실의 반대편에는 거짓이 아니라 침묵과 망각이 있다
흐린 하늘을 비집고 비가 내리던 14일 오후 안산예당을 찾았습니다. 전시실로 들어서기 전 건물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이 적힌 노란 리본으로 만든 배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뒤에는 바닷물에 담근 철판에서 세월호 모양을 도려내 만들어 심하게 녹이 슨 'Made in Korea'(최병수 작)가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1, 제2전시실은 서로를 마주보고 쉼 없이 '세월호 1년'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제2전시실 벽에는 '진실의 이름으로 침묵을 깨고 망각과 맞서 싸우기'라는 제목의 서문이 붙어 있습니다. 심상용 동덕여대 교수가 쓴 글로 망각과 침묵에 저항하기 위한 격문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작가들이 작게는 유가족과 함께 크게는 국민과 함께 세월호 참사의 고통과 아픔을 나눈 기억을 공유하고 더불어 대한민국의 부조리에 맞서 감성의 정치학으로 비판하고 행동하며 저항하는 두 갈래의 길 즉, '망각에 저항하기'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음을 심 교수의 서문은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시회의 작품들은 304명의 꽃다운 목숨이 물에 잠기는 장면을 목도한 예술가들이 그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끌어안고 분노와 깨달음으로 승화해 회화, 설치, 영상, 사진, 판화, 만화, 일러스트 등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며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통점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저항의 대상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채 당장 눈앞의 문제만 해결되면 안심하는 망각이 이번 전시회의 주제입니다.
어쩌면 세월호 시대의 예술은 망각에 저항하기를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릅니다. 망각한다는 것은 또 다른 제2, 제3의 세월호를 야기하는 것이며, 불의에 굴복하는 것이며, 자본의 비인간성에 순종하는 것이며, 권력의 폭력에 무릎 꿇는 것에 다름 아니니까요.
작품을 둘러보는 내내 망각에 저항하는 것 즉, 망각의 정치, 망각의 사회, 망각의 예술 그리고 망각의 민심에 저항하는 것이 세월호 예술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전시 작품들 또한 줄곧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진실의 반대편에는 거짓이 아니라 침묵과 망각이 있다'고. '망각의 유혹을 이겨낸 후에야 기억은 비로소 저항이 될 수 있다'고.
망각에 대한 저항은 '역사를 현재와 미래의 대화' 이끈다
그렇습니다. 세월호는 명백한 사회적 죽음이며, 사회적 타살에 대한 저항은 또한 침묵이 아니며, 망각에 대항하는 기억의 책임은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잊지 않고 기억할 때, 진실은 밝혀질 수 있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작가들은 붓으로, 손으로, 눈으로 형상화시킨 작품들을 통해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호의 예술이 그러하듯 우리 역시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행동자들이 돼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삶에서 행동하며 잊지 않는 것, 기억은 이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의 행동자가 된 만큼 세월호의 역사는 기록되고, 기억한 만큼만 역사는 움직일 테니까요. 망각에 대한 우리의 저항은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대화'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역사를 진일보해 낼 것입니다.
나와 가족의 생명을 담보로 삼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회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하다면, 침묵은 불안한 내일을 만들고 망각은 비참한 미래를 만든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전시회 '망각에 저항하기'를 추천합니다. 안산행이 멀다고요? 좋은 영화가 그렇듯, 좋은 전시회도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전시회 한켠에는 관람객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을 적어 보라는 다소 도발적(?)인 게시판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어느 건축학도가 메모지에 남긴 글로 관람 후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건축으로 세월호를 위한 '무언가'를 해 보려고 세월호와 관련된 전국을 다녔습니다. 아직도 가봐야 할 곳이, 이야기를 들어야 할 곳이 많습니다. 모두가 한 마디씩 들어준다면 슬픔은 등분되어 함께 짊어질지도 모릅니다. 작은 희망으로 움직이는 모두여 힘냅시다. 한없이 통탄하고 미안해합시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편집ㅣ최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