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의 도시 웨이팡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여를 달려 옛 제(齊, BC1046~BC221)나라의 수도였던 린쯔(臨淄)을 찾았다. 제나라는 춘추 오패(五覇)의 우두머리이자 전국 칠웅(七雄)의 하나로, 825년간 번영을 누렸던 춘추전국시대의 강자였다.

전국시대에 이미 10만(장안은 8만)호에 달했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 린쯔는 굵은 봄비에 젖어 간다. "서쪽에 장안이 있다면, 동쪽에는 린쯔가 있다(西有長安, 東有臨淄)"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국시대 중국 최대의 도시였다. 그러나 현대화에 늦어 지금은 산둥성에서도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속한다. 전국시대 30만 명에 달했던 인구는 2천 5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65만에 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춘추전국시대의 역사 문화유산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라는 평가 덕분인지 차량 번호판은 산둥성에서 세 번째인 '魯C'로 시작된다. 제나라는 노(魯, BC1046~BC256)나라보다 더 오래, 더 넓은 영토로, 더 강자로 군림했지만, 산둥성 약칭에서 노(魯)에 밀렸다. '魯C'로 시작되는 차량 번호판에 제나라의 번영과 몰락의 비애가 동시에 담겨 있는 셈이다.

제나라 고성의 흔적 린쯔는 장안보다도 큰 전국시대 중국 최대의 도시였다.
제나라 고성의 흔적린쯔는 장안보다도 큰 전국시대 중국 최대의 도시였다. ⓒ 김대오

제나라 고성 제고성은 치하(淄河)와 계수(系水) 사이에 둘레 21km에 달했다.
제나라 고성제고성은 치하(淄河)와 계수(系水) 사이에 둘레 21km에 달했다. ⓒ 김대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제나라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운 좋게도 택시기사가 역사에 조예가 깊어 린쯔의 역사와 유물에 대해 생생한 가이드를 해 준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차를 멈추고, 제나라 고성(故城) 터라며, 이렇게 비 오는 날 물이 잘 빠지도록 배수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치하(淄河)와 계수(系水) 사이에 둘레 21km에 달했던, 당시 가장 컸던 제나라 고성은 전쟁이 그칠 날 없었던 춘추전국시대를 의연히 버티고, 3천 년 가까운 세월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 뚜렷한 윤곽을 남기고 있다.

이미 지난 역사에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우리가 '삼국시대를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하고 생각해보는 것처럼 중국인들도 '춘추전국시대를 진나라가 아닌 제나라가 통일했다면(假如齊國統一了天下)'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제나라가 한족의 농경문화, 유교문화의 전통이 강한, 가장 중국적인 왕조였기 때문일 것이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단행하고, 자주 산둥성 일대를 순시했던 것도 서쪽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유목문화에 가까웠던 진나라의 콤플렉스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제국 역사박물관 15개의 전시관에 2천 5백년 전의 역사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제국 역사박물관15개의 전시관에 2천 5백년 전의 역사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김대오

벼이삭에서 기원한 제나라 제(齊) 벼 이삭이 풍요롭게 영근 모양으로 평야지대에 위치한 제나라의 풍요를 보여준다.
벼이삭에서 기원한 제나라 제(齊)벼 이삭이 풍요롭게 영근 모양으로 평야지대에 위치한 제나라의 풍요를 보여준다. ⓒ 김대오

막강한 제나라 고성의 성곽 형태로 지어진 제국역사박물관은 빗속에 우뚝 서 있다. 15개의 전시관에 2500년 전의 역사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춘추전국시대 지도와 함께 굵은 통나무 위에 솟대처럼 나무 조형물이 있는데, 제(齊)의 갑골문의 형태를 재현한 것이다. 벼 이삭이 풍요롭게 영근 모양으로 평야지대에 위치한 제나라의 풍요로운 번영과 경제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두운 전시장을 들어서자 센서 전등이 자동으로 켜지는데, 1층에는 주로 제나라의 역사 소개와 그와 관련한 유물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먼저 제나라의 시조인 강태공의 동상에 화려한 조명이 비춰진다.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에 의해 재상에 등용되어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제나라의 제후에 봉해진 제나라의 시조이다.

다음으로 춘추시대 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제환공과 관중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왕위쟁탈 과정에서 둘은 서로 적이었지만, 포숙아의 추천으로 제환공은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해 춘추시대 35개 소국을 병합하며 춘추시대 가장 먼저 최강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BC 679년 제환공이 강성해지던 초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주변국과 맺은 견지회맹(鄄之會盟) 장면이 이미테이션으로 재현되어 있다.

제환공과 관중 춘추시대 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제환공과 관중의 모습이다.
제환공과 관중춘추시대 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제환공과 관중의 모습이다. ⓒ 김대오

국보희존(國寶犧尊) 전국시대 제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금은으로 장식된 조각상이다.
국보희존(國寶犧尊)전국시대 제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금은으로 장식된 조각상이다. ⓒ 김대오

이어서 영공, 장공, 경공 3명의 군주를 모시며 제나라의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명재상 안영의 동상에도 빛이 들어온다.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 안영열전에서 모실 수만 있다면 안영의 마부가 되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안영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안영은 150cm가 안 돼는 작은 키였지만 유연하고 뛰어난 논리의 언변으로 남귤북지(南橘北枳), 천려일득, 천려일실(千慮一得, 千慮一失),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등의 고사를 남기기도 하였다. 늘 소신 있게 군주를 모시며,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은 청빈한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안영의 무덤이 린쯔 북쪽에 있는데 가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한참을 그 앞에 서성인다.

전시실에는 린쯔에서 출토된 제나라의 도자기, 청동기 측량도구, 철제 장식품 등이 300여점 있는데 국보급 유물을 포함해, 춘추 전국시대의 사회상을 연구하는 소중한 사료가 많다. 최근에도 계속 유물이 발굴되고 있어 새로운 전시관을 건설 중이며 순차적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린쯔는 역사도시로서 그 가치와 잠재력이 충분한데, 그것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 세계문화유산 하나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제나라의 예악에 사용된 편경 제나라는 노나라와 함께 주나라의 예악을 가장 잘 보존 계승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나라의 예악에 사용된 편경제나라는 노나라와 함께 주나라의 예악을 가장 잘 보존 계승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김대오

2층으로 올라가자 제나라의 예악 악기 편종, 편경 등이 전시되어 있고, 고성 안의 생활상도 재현되어 있다. 고성의 서남쪽에 직문(稷門)이 있었다. 왕은 그 근처에 세계최초의 '싱크탱크'라 할 만한 부국강병을 위한 전문가 집단을 양성했는데, 바로 직하학궁(稷下學宮)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춘추전국시대를 주름잡았던 맹자, 한비자, 순자, 공손룡 등의 사상가들이 직하학파에 속한다. 초나라의 굴원도 제나라를 국빈으로 찾았다가 직하학파와 자유로운 학문적 교감을 나눴다고 하니, 어떤 새든지 제나라라는 나무에 날아와 앉아 마음껏 울고 노래하도록 허용했던 셈이다. 어지러운 춘추전국시대가 철학과 인문학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배경일 것이다.

천하를 주유하다 제나라를 거쳐 간 사상가들의 면모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제나라 역사박물관에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회장 사진이 붙어 있다.

2005년 5월 20일, 린쯔는 <전국책>, <사기> 등에 실린 축국(蹴鞠)에 관한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고대 축구의 발원지라는 인증서를 피파로부터 공식 수여받은 바 있다. 축구공의 기원이 된 국(鞠)은 짐승의 가죽 껍데기에 털을 넣어 만든 것으로 '성스러운 공의 기원(聖球之源)'이란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다.

린쯔는 고대 축구의 발원지 역사적 문헌을 바탕으로 린쯔는 2005년 피파로부터 축구발원지 공식인증을 받았다.
린쯔는 고대 축구의 발원지역사적 문헌을 바탕으로 린쯔는 2005년 피파로부터 축구발원지 공식인증을 받았다. ⓒ 김대오

부국강병에 사활을 걸다보니 병사들의 체력 증진이 필요했는데, 축국이 인기가 있어 널리 유행한 모양이다. 송나라 때 태종이 축국을 하는 그림도 있고, 당시 골대의 규격도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대 축구의 발원지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영 맥을 못 추는 중국이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나서서 축구 발전 중장기 프로젝트를 세우고, 대대적인 투자를 기울이고 있어 앞으로 과연 달라진 고대 축구종주국의 모습을 보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박물관에 관람객이 별로 없어 우리 일행이 관람을 마친 전시장은 이내 불이 자동으로 꺼지며 어둠에 잠긴다. 우리 일행이 빠져나오면서 제국 박물관엔 아마 더 깊은 암흑과 침묵만이 감돌 것이다.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를 호령했던 제나라가 진의 통일로 슬그머니 역사에서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봄비는 박물관 앞 벚꽃 꽃잎을 거의 떨어뜨리고도 그칠 기색이 없다. 그래도 박물관 입구 돌사자 한 쌍이 빗속에 아랑곳없이 사라진 제국의 빛나는 유물들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다.

박물관 앞의 돌사자 돌사자 한 쌍이 빗속에 아랑곳없이 사라진 제국의 빛나는 유물들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다.
박물관 앞의 돌사자돌사자 한 쌍이 빗속에 아랑곳없이 사라진 제국의 빛나는 유물들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다. ⓒ 김대오



#린쯔#제국역사박물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