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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 일 사(事)는 갑골문에서 보듯 붓을 손에 든 모양을 나타내는 상형자이다.
일 사(事)는 갑골문에서 보듯 붓을 손에 든 모양을 나타내는 상형자이다. ⓒ 漢典

"제갈공명은 평생 언행이 신중하고, 여단은 큰일에는 어수룩하지 않다(諸葛一生唯謹愼, 呂端大事不糊塗)."

대만의 석학 난화이진(南懷瑾)이 쓴 <논어별재(論語别裁)>에 실린 말이다. 그는 1976년 마오쩌둥이 병상을 찾아온 중국 10대 원수 중 한 명인 예젠잉(葉劍英)을 평가하면서도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선택과 집중, 여단의 지혜

제갈공명은 지혜로움의 대명사로 유명하지만, 여단(呂端)은 좀 생소하다. 문인 천하였던 송나라 시절, 태종이 여단(呂端)을 재상으로 삼으려 하자, 신하들이 과거 시험에도 통과하지도 못한 여단은 흐리멍덩하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태종은 여단이 좋고 나쁨을 얼굴에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어수룩해 보이는데, 이는 큰 지혜를 가진 자(大智若愚)이기 때문이며, 작은 일에 멍청하지만, 큰일에는 멍청하지 않다(小事糊涂,大事不糊涂)며 그를 재상으로 임명한다.

재상이 돼서도 여단은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不拘小節), 권력이나 직책에 연연하지 않으며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처리해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현대인은 거의 대부분 산더미 같은 일 속에 파묻혀 산다. 테트리스 게임의 조각처럼 일을 해도 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일이 쏟아져 내려온다. 여단과 같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인다. 자잘한 일은 흘려보내고, 정작 결정적인 순간, 중요한 일에 힘을 모아 멋지게 처리하는 것 말이다.

일 '사'(事, shì)는 갑골문에서 보듯 붓을 손에 든 모양을 나타내는 상형자이다. 첫 획이 붓에 달린 장신구고, 그 아래는 손으로 붓을 잡은 모양이다. 원래 붓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는 사관(史官)을 뜻하다가 '일'이란 의미로 확대해 쓰게 됐다. 역사 사(史), 벼슬아치 리(吏)도 붓을 손에 잡고 있는 같은 형태에서 기원한 글자들이다. 하는 일이 없다는 의미의 '무소사사(無所事事)'에서 보듯, 일 사(事)에는 '일'과 '일하다'는 뜻이 모두 있다.

"일에는 반드시 이르는 끝이 있고, 이치에는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事有必至, 理有固然)"고 한다. 처음에 의욕적으로 시작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바뀌고(事過境遷), 마음이 멀어지기도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도 하게 되고, 열심히 했지만 때를 잘못 만나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갈공명처럼 언행을 좀 더 신중하게 하고, 여단처럼 작은 일은 흘려보내고 큰일에 좀 더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가끔 일 사(事)의 갑골문처럼 손에 붓을 들고 일의 경과를 적어보는 것도 일의 이치를 깨닫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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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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