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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아침 조깅을 시작으로 저녁은 태권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덕이는 점점 신체적, 정서적 안정을 찾은 듯 표정이 밝아지고 혈색도 좋아졌다. 그러나 나는 태권도 마지막 부를 하면서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태권도 기본 동작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기본 동작만 약 20분 정도 하면 온몸에 땀이 비오듯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반팔을 입어도 더운 여름에 투박하고 긴 도복을 입고, 에어컨은 틀어 놔도 땀 냄새 빠지라고 창문을 열어놓고 운동을 하다 보니...

그럼에도 일주일에 5일씩 꾸준히 하다 보니 내 몸은 서서히 회복됐다. 이제 또 하나의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덕이에게 숫자를 지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봤음에도 아직은 덕이가 이해하기 어려운가 보다. 몇날며칠 지도해도 덕이가 모른다는 이유로 심하게 답답함을 느껴 어느 날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더 답답했을 덕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야단을 치다가 덕이의 눈을 보는 순간 가슴이 멍해졌다.

'아이구∼ 이 불쌍한 애한테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하는 건가.'

숫자 어려워하는 덕이, 어떻게 가르칠까

 어려운 숫자공부, 하지만...
어려운 숫자공부, 하지만... ⓒ 픽사베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지도를 안 할 수 없었다. 덕이를 지도하는 날에는 큰소리칠 기운이라도 없으면 덕이에게 덜 야단칠 것 같아서 며칠 굶어 보면서 지도 해보기도 했으나 쉽지 않았다.

'어떻게 지도를 해야 덕이가 이해를 쉽게 하고 깨우칠까', '어떤 방법이 좋을까', '덕이가 가장 관심있는 것이 무엇일까' 등을 여러모로 모색하던 중 아무래도 덕이가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접근하면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해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고심 끝에 매주 천 원씩 주던 용돈과 관련지어 보기로 했다. 아직은 이천 원으로 올려줄 때는 아닌 것 같고... 덕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원피스)이 한 권에 7백 원, 나머지 3백 원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살 수 있으니 그 점을 활용하기로 했다. 덕이는 나와 함께 종종 서점을 함께 다녔으므로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화 내용도 이미 1~5권까지는 사다 놨고, TV에서 이미 본 내용이므로 그 내용도 잘 알고 있었다. 덕이와 함께 가까운 서점에 갔다.

고모 : 덕아, 고모가 용돈과 관계없이 오늘 천 원을 줄 테니 덕이가 원하는 책 사볼래?

씩씩하게 가더니 만화책 한 권을 집는다. 바로 <원피스>였다. 'OK'

고모 : 덕아 지금 들고 온 이 만화책이 뭐니?
덕 : 원피스
고모 : 그렇지, 원피스 맞아. 덕아, 혹시 원피스 몇 번일까?"
덕 : 몰라.
고모 : 덕아 여기 원피스라고 써 있고 옆에 숫자 (6자를 가리키며) 뭐라고 써 있지?

반응없는 덕이...

고모 : 이건 숫자 6이라는 거야, 그러면 원피스 6, 여섯 번째네?

덕 : 응.

나는 다시 만화책 표지에 써 있는 원피스라는 글씨와 숫자 '6'을 덕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서점에서 계산대에 계신 사장님은 익숙하다는 듯 우리의 대화를 기다려 주셨다.

고모 : 덕아, 여기 천 원줄게. 네가 계산해 보렴.

덕이가 사장님께 드렸고 거스름돈 3백 원을 받았다. 덕이가 무척이나 좋아한다.

고모 : 덕아, 이제 이것은 백 원짜리고 백 원, 이백 원, 삼백 원 세 개니까 삼백 원을 네게 줄게. 가지고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 사렴.

이해를 하는지, 못하는지 대충 알았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하면서 만화책과 3백 원을 들고 슈퍼마켓으로 뛰어간다. 나는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간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수 있겠지만, 특히 덕이는 즐겁게 지도해줄 때 잘 기억하고 그나마 따라오는 아이다. 다행스럽게도 덕이는 관심있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사진을 찍어두듯 기억력이 좋다. 물건을 들고 다니다 내가 깜빡 잊을라치면 덕이가 챙긴다. 이 점을 덕이가 생활하는 데 유익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매주 토요일은 덕이 용돈 받는 날이다. 천 원짜리를 꺼내면서 물었다.

좋아하는 만화책으로 숫자 가르치기

고모 : 덕아, 이것은 얼마짜리?
덕 : 천 원.
고모 : 그렇지, 잘했어 덕아. 이 천 원가지고 서점에 가서 저번에 고모랑 했던 것처럼 덕이가 좋아하는 만화책 살래?
덕 : 응.
고모 : 나는 여기에서 기다릴 거니까, 덕이 혼자서 이 천 원을 가지고 서점에서 너가 좋아하는 책 한권 사고 남은 돈을 잘 받아와야해.
덕 : 응.
고모 : 지난 번에 산 것이 원피스6이니까, 오늘은 원피스7이라고 써 있는 것을 사면 되겠다 그치?

7자를 볼펜으로 잘 써서 보여주었다.

덕 : (알았으니 빨리 서점에 가서 사고 싶다는 듯, 나는 말하고 있지만 덕이의 눈은 이미 서점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고모 : 다녀오렴.

행동이 빠르다. 쓩~하고 달려가듯 좋다고 달려간다. 잠시 후에 원피스7과 잔돈 3백 원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잔돈을 준다.

고모 : 잔돈으로 받아온 게 얼마니?
덕 : (대답하지 못하고 생각한다.)
고모 : 백원짜리 3개니까 백 원, 이백 원, 삼백 원이야. 이것이 있어야 덕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어. 이것이 없으면 아이스크림 못 먹어.

다시 한 번 덕이의 입으로 삼백 원이라고 말하게 한 후 혼자 슈퍼마켓으로 보내고 나는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원피스7과 아이스크림을 들고 잔돈 삼십 원을 나에게 준다.

고모 : 와~ 아까 삼백 원이랑 똑같이 세 개구나, 아~ 아까 백 원짜리는 은색이고 백 원이라고 써 있고 지금 이것은 금색이면서 이렇게 십 원이라고 써 있구나, 덕아 여기 얼마라고 써 있다고?
덕 : 백 원

내가 십 원짜리를 보여주면서 십 원이라고 써 있다고 설명했으나 덕이의 대답은 백 원이었다. 하긴 "봄, 봄, 봄 봄에 피는 개나리, 덕아 개나리 언제 핀다고?"라고 물었을 때도 "여름"이라고 대답했으나 지금은 봄이라고 잘 대답하듯 틀림없이 십 원, 백 원, 천 원... 도 알게 될 것이다. 덕이가 관심있는 것을 가지고 즐겁게 지도한다면.


#돈과 용돈#책과 만화책#즐거움#TV#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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