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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 '피로사회'

아마도 지금 한국사회를 가장 잘 드러내는 두 단어가 아닐까 싶다. 하기야 몸 아픈 것에서 모자라 마음을 치유하는 자판기까지 등장한 시대다. (관련 기사 : '마음 치유하는 자판기가 있다?') 작년에 경험했던 악몽 같은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올해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중후군)로 인해 몸과 마음이 여전히 피곤하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더 우울한 사실은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10년 연속'이라는 것이다. 2013년 총 자살자 수는 1만 4427명으로, 이는 10만 명당 28.5명에 이른다. OECD 평균이 10만 명당 12.1명이니까 거의 2배를 넘는 압도적인 수치다.

게다가 최근 자살 증가율이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것은 여전히 한국사회가 피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난 20년 동안의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1992년에는 10만 명당 8.3명이던 한국의 자살 증가율이 20년 사이에 280%나 증가했다. 이에 반해 OECD 자살 증가율은 7.89% 감소했다.

더 많이 상처받는 계층이 더 치유 받지 못해...

최근 몇 년 전부터 방송에서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사용됐다. '힐링캠프'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들이 출연해 저마다 치유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상처가 위로받는 대리만족을 기대하기도 한다. 이유야 어쨌든 힐링이 가장 핫한 트렌드가 된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치유'와 혼동돼서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가 '치료'다. 치유와 치료. 어미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그 속에 내포된 의미는 사뭇 다르다. 쉽게 설명해 '임상적 치료'와 '예방적 치유'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장 크게 받은 생존자와 유족의 트라우마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난 뒤에라도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중략) 트라우마를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해결하려면, 사회적인 치유 시스템도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치유에) 매달려야 한다."

서울은 대표적인 자살 고위험 도시에 속한다. 지난 2009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 수를 해외 도시와 비교해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서울이 26.1명인 반면 뉴욕은 5.5명, 런던은 9.0명, 홍콩은 15.2명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1년 '자살예방 지원조례' 제정 후 사회안전망 차원의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이처럼 자살을 본격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사업으로는 서울시의 '마음이음 1080'과 보건복지부에서 자살자의 유가족을 심층 면접해 원인을 규명하는 '중앙심리부검센터'가 대표적이다.

이런 사회적 움직임이 원인이 됐을까. 휴양리조트부터 대체의학센터, 명상센터까지 치유를 표방하고 있는 시설이 난무하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겠다. 혹자는 이윤과 목적이 다르고, 수준이 천차만별인 치유시설이 '난립한 상태'라고까지 꼬집었다. 점차 고급화된 프로그램 중심의 웰빙형 치유가 부각되면서 종교단체나 회원제로 운영되는 폐쇄적(?) 치유시설은 부자들에게만 허용되는 사치로까지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예술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치유하다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성북구 보건소를 리모델링해 지난 2010년 7월에 개관했다. 몸이 아픈 증상을 치료하는 보건소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창작센터로 변모한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예술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치유하다'라는 모토로 운영되고 있다.
▲ 예전 성북구 보건소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성북구 보건소를 리모델링해 지난 2010년 7월에 개관했다. 몸이 아픈 증상을 치료하는 보건소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창작센터로 변모한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예술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치유하다'라는 모토로 운영되고 있다.
ⓒ 성북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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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적 목소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평범한 이웃들이 치유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최근의 사건 사고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에 필자는 치유에 예술을 접목한 공간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6호선 고려대역에서 월곡동 방향으로 200m쯤 걸어갔을까.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4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초행인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치유센터가 복잡한 도로나 유흥지에 있다면 그것 또한 아이러니하지 않겠는가. 바로 이곳은 '예술을 통해 시민의 삶과 사회를 치유하자'는 것을 모토로 운영되는 '성북예술창작센터'다.

성북예술창작센터는 보건소를 리모델링해 지난 2010년 7월에 개관됐다. 병을 치료하는 보건소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센터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에 이르는 건물에는 예술가를 위한 스튜디오, 갤러리, 다목적홀, 주민 창작실, 옥상공방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예술치료사를 발굴, 지원하며 외부 기관과 연계해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콘텐츠를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것. 바로 성북예술창작센터가 하는 일이다.

광복절 연휴가 끝난 지난 17일, 지하철 5호선 마장역에서는 지하철 기관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예술치유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것은 성북예술창작센터가 특수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준비한 맞춤형 치유확산사업의 첫 시작이다. 지하철 기관사. 평생 햇빛을 구경하기 힘들고, 앞에서 언급했던 자살하는 사람을 마주하는 불행을 경험할 수도 있는 스트레스 직군 중 하나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첫날에 25명의 기관사가 참여했다. 교육 전에 이들로부터 생생한 그들의 스트레스를 들을 수 있었다.

기계가 된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어...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지하철 기관사의 업무 스트레스를 치유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지난 17일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 350여 명이 참여한다
▲ 지하철 기관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치유 프로그램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지하철 기관사의 업무 스트레스를 치유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지난 17일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서울도시철도공사 기관사 350여 명이 참여한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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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스크린도어 같은 안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그렇지 5~6년 전만 해도 크고 작은 사고가 간혹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1년에 4~5건은 발생한 듯해요. 이런 경험을 했던 기관사들의 정신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고 이후 평상시처럼 업무에 복귀할 때까지 안정이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지하에서 혼자 일하는 공간이다 보니 가장 두려운 건 시간입니다. 분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상당합니다"

"전동차 고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제일 두렵습니다. 지하철을 운행하는 것이 혼자 하는 일이잖아요. 만약 조그만 문제가 생겨도 수많은 승객이 민원을 제기합니다. 저는 혼자인데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경우는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공황상태입니다. 매번 훈련하는데도 그 상황이 닥치면 적응을 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온종일 깜깜한 어둠의 지하에서 일하다 보니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계속 같은 철로를 보면서 일하다 보면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된 거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혼자 일하는 것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렇지가 않네요"

이 밖에도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인 콜센터 상담원이 대상인 '콜미콜미 마음극장',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자기 탐색을 통해 교사로서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미술치료 '보육교사를 위한 아트 멘토(Art Mentor)', 독거 어르신들이 직접 만드는 구연동화 '어르신 동화 구연 옛날, 옛날에 오늘, 오늘이', 연극놀이와 천연염색을 통해 이혼과 자녀양육으로 지친 부모를 위로하는 '몸짓 속에 담긴 색 이야기' 등도 준비됐다.

이처럼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특수 계층에 대한 스트레스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매년 수많은 자살사고를 경험하면서 지하에서 살아가야 하는 지하철 기관사부터 온갖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상담원까지 특수직 종사자를 위한 맞춤형 치유프로그램이 만들었다. 이들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치유'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몸을 치료하는 곳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곳으로

성북예술창작센터 나희영 매니저는 "치료 또는 치유가 주는 어감에서 오는 두려움으로 엄두를 내지 못한다면, 약국에서 파스를 구매하는 심정으로 자신에게 예술적 힐링 프로그램을 선물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 성북예술창작센터 나희영 매니저 성북예술창작센터 나희영 매니저는 "치료 또는 치유가 주는 어감에서 오는 두려움으로 엄두를 내지 못한다면, 약국에서 파스를 구매하는 심정으로 자신에게 예술적 힐링 프로그램을 선물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 이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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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성북예술창작센터 나희영 매니저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몸을 치료하는 보건소'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센터'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기존에 단순히 작업실을 지원하는 창작공간과는 차별화되는 전략이 있다. 무엇보다 장소가 주는 역사성에 주목했다. 보건소가 질병을 다루는 공간 중 가장 문턱이 낮은 보급형 병원이라는 이미지에서 출발해 엘리트 예술이 주는 부담감보다는 누구나 쉽게 스며들 수 있는 소통창구로서 기능을 생각했다. 다시 말해 시민중심의 '치유, 소통, 나눔'을 통한 치유공간인 것이다."

- '치료'와 '치유'에 대한 차이점은 무엇인가.
"치료와 구분되는 예술치유는 비치료 예술(Non-Therapy Art)로서 치료를 위한 진단과 상담이 아닌 예술 참여에서 발현되는 효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즉 치유(healing)는 제공된 환경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자연 치유력으로 스스로 회복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치료(therapy)는 병을 앓거나 치유력이 작동하는 데 있어서의 장애요소에 제삼자가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치료와 치유의 용어는 구분돼야 하나 예술치료, 예술치유, 예술교육, 예술창작 등 모든 행위가 예술을 키워드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시범사업이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직군이나 계층을 대상으로 맞춤형 치유를 시도한다.
"맞춤형 치유라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오는 공동기제를 이슈로 다독여줄 때 마음이 열리는 정도와 시너지는 차이가 있다. 본인이 겪는 트라우마나 심리적 상처가 비단 혼자만의 커다란 장벽이 아니라 상호치유의 극복 과정에서 획득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기대하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경찰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의 성공사례가 있다. 이것은 경찰공무원 13개 팀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음악치료 프로그램으로 경찰관들의 정서 지능과 스트레스 대처 기능 향상을 도와줬다."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옥상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여기에는 텃밭 운영을 통해 가족 단위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호응을 얻고 있다.
▲ 옥상공방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옥상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여기에는 텃밭 운영을 통해 가족 단위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호응을 얻고 있다.
ⓒ 성북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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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예술창작센터는 동선의 효율화를 위해 지하층과 지상1~2층은 시민 위주로, 지상 3~$층은 입주치료사의 스튜디오로 운영된다.
▲ 성북예술창작센터 성북예술창작센터는 동선의 효율화를 위해 지하층과 지상1~2층은 시민 위주로, 지상 3~$층은 입주치료사의 스튜디오로 운영된다.
ⓒ 성북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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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예술창작센터가 예술가뿐만 아니라 주민 모두에게 오픈됐다. 공간을 소개해 달라.
"성북예술창작센터는 모두에게 개방돼 상시 접근이 가능한 시민 전용 공간과 프로젝트의 연구, 개발을 위한 입주치료사 전용공간으로 구분됐다. 동선의 효율화를 위해 지하층과 지상1~2층은 시민 위주로, 지상 3~4층은 입주치료사의 스튜디오로, 옥상은 공유공간이다. 특히 1층에 위치한 '성북예술다방'은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차와 책을 매개로 '쉼'을 제공하며 2층의 '갤러리 맺음'은 시각작품 전시공간이다."

- 성북예술창작센터의 향후 운영 방향성에 대해 말해달라.
"예술을 통한 치유에 방점을 두고 예술치료사와 예술가의 프로젝트를 시민이 향유하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지난 2010년 개관 이후 현재까지 총 5기의 입주 예술가/치료사를 배출했다. 특히 성북예술창작센터는 프로그램만 보급하는 문화센터의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힐링작업이 가능하도록 조성된 아트 레지던시(residency)인 만큼 예술치료사와 예술가 간의 상호 시너지가 촉발될 수 있는 협업의 장이다. 또한, 오는 17일부터 시작하는 예술치유확산 시범사업뿐만 아니라 연구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제는 예술치유를 전담하는 단일 치료사, 예술가가 아니라 그들을 매개하고 협업을 유도하는 장으로 전문화된 통합예술치유 콘텐츠의 보급 기지로 만들 것이다."

-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술치유라는 것이 어렵고 고차원적이라 경험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라고 할 때 조언을 준다면?
"치료 또는 치유가 주는 어감에서 오는 두려움으로 엄두를 내지 못한다면 약국에서 파스를 구매하는 심정으로 자신에게 예술적 힐링 프로그램을 선물해보기 바란다. 새로운 악기를 배울 때 반복 연습을 해야만 연주가 가능하듯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돌보는 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을 보듬고 회복하는 데 예술의 힘을 빌려보자. 무엇보다 예술적 경험에서 오는 치유는 갇혀있는 자신에게 자유를 주고 타인을 이해하는 내면의 힘을 길러준다. 나를 위해,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술치료 프로그램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성북예술창작센터 1층에 위치한 성북예술다방은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차와 책을 매개로 '쉼'을 제공한다.
▲ 성북예술다방 성북예술창작센터 1층에 위치한 성북예술다방은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차와 책을 매개로 '쉼'을 제공한다.
ⓒ 성북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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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지하 1층, 지상 4층, 옥상공방 (전체면적 1,997.8㎡)
▶서울시 성북구 회기로3길 17
▶운영시간 : 월~일 9:00~18:00 / 공휴일 및 명절 연휴, 기타 재단 지정일 휴관
▶지하철 : 6호선 고대역 3번 출구 도보 200m
▶버스 : '숭례초등학교'정류장 하차 후 도보 약 360m(약6분) 성북20,성북21,1001,101,110B,130,141,144,148,163
www.facebook.com/sbart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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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유휴공간을 활용해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재탄생한 사례를 소개하는 연재 기사 [이런 공간 어때요]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태그:#서울시창작공간, #성북예술창작센터, #예술치유, #보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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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지 '문화+서울' 편집장과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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