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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형 마음에 가장 소중한 기억이 있다면 그건 이곳 고향 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 당시 삼총사라 불리던 김재철, 박원섭 형 등과 청운의 꿈을 키우던 시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故 전태일 열사(1948~1970)의 고향 대구에서의 삶의 여정을 그의 친동생인 전태삼씨(65세)의 생생한 육성으로 들어보는 「전태일의 고향과 문학」 강연회가 지난 5일 저녁 7시 대구 광개토병원 강당에서 열렸다.

전태삼씨는 전태일 열사의 두 살 밑 동생으로, 형의 스무해 남짓 인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 따라서 그가 이날 들려준 형 전태일 열사의 고향에서의 삶, 그리고 가족 이야기는 참석자들의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전태삼씨는 "우리는 고향이 대구인데도 정작 이곳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지금 중구 계산성당 옆 이상화 시인의 고택 앞마당, 당시로는 남산동 50번지가 형이 태어난 곳"이라며 "그 이후로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서울, 부산 등 무려 열다섯 번을 거처를 옮겨다녔다"고 어려웠던 시기를 회상했다.

전태삼씨에 따르면 전태일 열사는 어려서부터 학구열이 대단했는데, 그 어려운 시기에도 서울에서는 남대문초등학교에 편입해서 다녔고, 대구에서는 명덕초등학교 내에 있던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녔다. 더구나 청옥에서는 반장을 했을 정도로 리더십도 뛰어났다.

이때 김재철, 박원섭 등과 삼총사로 불리었는데, 전태일 열사가 죽음에 임박해서 이들에게 유서를 남겼을 정도로 평생을 절친하게 지낸 친구들이다.

그러나 당시 전태일 열사는 가업이던 미싱 일을 돕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고, 더구나 일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라는 아버지의 강요로 결국 가출을 감행, 두 형제가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흥태야(전태삼 씨의 아명) 우리 지금 공부하지 못하면 공부할 기회를 잃는다. 서울로 고학하러 가자!"던 형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밝힌 전태삼씨는 "구두를 닦고, 휴지와 껌을 파는 가운데서도 남의 집 처마 밑에 촛불을 켜놓고 책을 펴 구구단을 외우라던 형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전태삼씨는 의외의 심정도 밝혔는데 "살다보니 문득 형이 가족들에게는 참 나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아버지가 형의 일솜씨가 탐나서 형에게 같이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보자고 설득했으나 형이 말을 듣지 않고 가출을 하는 바람에 여섯 식구가 뿔뿔이 흩어지는 일도 있었다"는 아픈 가족사도 전했다.

한편 이날 강연회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맹문재 안양대 교수가 진행을 맡았고, 대구에서 발행되는 무크지 <문화분권>과 동성아트홀이 공동 주최하고, 대구경북작가회의외 광개토병원이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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