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답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중대 사안은 여야 논의과정에서 진영논리에 오염되며 정치쟁점으로 변질돼 국민들은 둘로 갈렸고, 최종 책임자는 그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의 "순수한 유가족" 발언이 이를 극명하게 압축합니다. - 프롤로그 (12p)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어느덧 일 년 하고도 두 달이 흘렀다. 무력하고 참담한 시간이었다. 침몰한 건 세월호만이 아니었다. 사건의 진상도 사회의 정의도 선체와 함께 가라앉았다. 내 자식이, 부모와 형제가 어째서 죽음을 맞이했는지 진상을 규명하라는 유가족의 요구는 아무렇지 않게 묵살되었다.
너무도 억울했던 나머지 유족들이 슬픔을 딛고 일어나 하염없이 길을 떠났을 때, 46일간 음식을 끊고 매일 밤 차디찬 길바닥에 쪼그려 잠을 청했을 때, 이 나라 정부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가. 그리고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세월호 침몰 참사는 언론의 참사이기도 했다. 참사 첫날부터 탑승자 전원구조라는 오보로 시작해 한동안 선정적인 보도가 도마 위에 오르더니 크고 작은 왜곡과 조작보도가 줄을 이었다. 진실과 풍문이 뒤엉켜 전해졌고 급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도 수시로 뒤바뀌었다. 기성언론은 위안받아야 할 이를 위로하지도 분노해야 할 곳에 분노하지도 않았다.
만약 참사 첫날 언론이 정부 발표를 받아적기만 하지 않고 사실확인을 했다면 어땠을까? 참사 이후 일 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치밀한 보도를 했다면 어땠을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한 나라의 구조적인 부실과 무능이 단적으로 드러난 이번 참사에서 우리는 모두가 유가족이었다. 죽은 이는 그들의 가족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부모이자 형제이며 자식이기도 했다. 죽은 이들이 그들 자신의 잘못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었기에, 그들을 죽인 것이 그저 침몰한 세월호만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과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이었기에 이 사건은 그저 그 어느 날 세월호에 올라탔던 그들 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문제였다.
우리 가족들에게 위안이 되어준 언론은 인터넷언론, 대안언론들이었습니다. 주요 언론들이 객관성, 중립성, 사실보도라는 미명 하에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을 때 몇몇 대안언론들은 함께 분노하고 함께 울며 취재와 보도를 해주셨습니다.작년 5월부터 대변인 역할을 했던 저는 대안언론과 인터뷰할 떄면 마치 우리 세월호 가족들과 대화하듯 별걱정 없이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 언론 중 한 곳이 바로 국민TV, 국민라디오였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왜곡 보도할 염려가 거의 없었고, 특히 저희 유가족들을 대해주시는 태도가 제 마음을 움직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유경근 세월호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하지만 이 사건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여긴 건 오직 소수의 언론뿐이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대안언론이었다. 국민TV <이강윤의 오늘>도 그런 매체 가운데 하나다. 2014년 4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강윤의 오늘>은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대한민국의 민낯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전달해왔다. 방송의 진행을 맡은 이강윤 앵커는 세월호 1주기에 맞춰 지난 1년간의 오프닝·클로징멘트, 자신이 쓴 칼럼과 인터뷰를 묶어 책을 펴냈다.
덕분에 오래된 생각이 펴낸 이 책엔 대한민국의 지난 1년이 그대로 담겼다. 매일 방송을 여닫았던 짧은 멘트들 속에 한국사회를 뒤흔든 사건과 그를 지켜봐 온 한 언론인의 고민이 그대로 녹아있다.
책은 세월호뿐 아니라 국정원 대선개입, 총리 지명 등 인사 실패, 밀양 할머니들의 송전탑 반대 운동, 윤일병 사망 사건, 카톡 검열, 故 신해철씨 사망, 아파트 경비원 집단 해고, 정윤회 문건 파동,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땅콩 회항 파문, 송파 세 모녀 자살, 홍준표 도지사의 무상급식 폐지시도 등도 다루고 있다. 물론 세월호 참사와 진상규명 문제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한국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빼놓지 않고 다루려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때로는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며 또 때로는 매섭게 질타하고 대책을 촉구한다. 경향신문 만평 '장도리'와 한겨레 만평 '장봉군'도 중간중간 게재되어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을 더한다.
어느새 달력 한 장이 또 넘어갔다. 진실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고 진상규명은 특별법과 정부 시행령의 충돌로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데 피 같은 시간만 흘러간다.
그러나 희망을 포기하긴 이르다. 참담하고 황망한 가운데서도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해온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한 우리가 먼저 포기할 수는 없다. 유가족 곁에는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시민들이 있다. 제 자리에서 전력을 다해온 언론들도 있다.
할 일도 많다. 최장 1년 6개월이 예정된 세월호 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지켜봐야 하고 여의치 않으면 그 이후까지 내다보아야 한다. 세월호뿐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개별 현안도 그저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유가족 가슴에 멈춰버린 시간이 다시 흐를 때까지 우리가 잊어도 될 건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유야무야 흐지부지되다가, 갈수록 고립되어 가다가 어정쩡한 '조사보고서' 하나 내놓은 채 세월호 2주기, 3주기, 4주기를 맞이할 겁니까? 때가 되면 그저 형식적 추모식 한 번 치르고, 달력 속의 별 의미 없는 날짜로 희미해져 가도 되는 걸까요. 4.16 1주기를 앞두고 부끄럽게 옷깃 여밉니다. 산 자는 그들이 살아있는 이유를 스스로 보여주어야 진짜 살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슬픈 봄, 참담한 봄, 다시 4월입니다. - 2015년 4월 1일 (264p) 덧붙이는 글 | <멈춰버린 시간 2014 0416>(이강윤 지음 / 오래된생각 / 2015.04. / 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