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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의 계동항 인근에 자리한 갈릴리교회.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 해군 막사였고, 해산물 가공 공장이었다가 교회가 되었다.
 여수 돌산의 계동항 인근에 자리한 갈릴리교회.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 해군 막사였고, 해산물 가공 공장이었다가 교회가 되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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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아는 지인을 만나러 여수 계동항 인근에 있는 갈릴리교회를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교회에 들어선 순간 교회가 아니라 온갖 꽃이 만발한 커다란 정원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담하고 깨끗한 예배당에 들렀다. 먼지도 묻지 않을 만큼 깨끗해 보이는 실내와 연단에 있는 생화들이 예쁘다. 채 50여 명도 안 돼 보이는 교인들 중에는 나이든 분들이 여럿 보였다. 시골에 있는 교회건 학교건 마을이건 어디나 똑같은 현상이라 이상할 건 없지만 진지한 분위기와 목사님의 설교가 내 오감을 깨운다.

신도수가 진정한 신앙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연초에 우연히 서울에 들러 신도수가 10만 명에 달한다는 모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선입견이어서 일까? 경건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예배가 끝날 무렵 목사님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도 안 된 어린아이의 생일을 축하해주며 조그만 선물을 줬다. 교인 속에는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외국인 근로자 2명이 있었다. 한국에 온 지 2년 됐다는 한 스리랑카인과 대화를 시작했다.

"너희나라에서는 대부분 불교를 믿는데 어떻게 교회에 오게 됐어?"
"우리 사장님이 같이 가자고 해서 왔어요. 스리랑카 생각도 나고 힘들 때 교회에 오면 위안이 돼요"

예배가 끝나고 모든 교인들이 함께 모여 점심을 먹었다. 인근 밭에서 교인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상추와 오이, 김치에 기름기를 제거한 돼지고기 상추쌈이 교인들을 한마음으로 뭉치게 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 커피가 나왔다. 사모님이 "커피가 너무 뜨거울 것 같다"며 얼음 한 조각을 커피에 얹어준다. 그런데 얼음이 좀 이상했다. 무슨 불순물이 들어간 것 같아 "얼음에 붙어있는 이게 뭐죠?"라며 묻자 "아! 먹을 수 있는 꽃입니다, 괜찮으니 드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과문해서일까? 물에 꽃잎을 띄워 얼린 꽃얼음을 본 적이 없었다. 사모님(조미현)과 대화를 시작했다.

목사 사모님인 조미현씨가 "커피가 뜨거울거"라며 내놓은 얼음물위에 삼색제비꽃이 들어있어 감동했다
 목사 사모님인 조미현씨가 "커피가 뜨거울거"라며 내놓은 얼음물위에 삼색제비꽃이 들어있어 감동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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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현 목사 아내인 조미현씨가 얼음물 위에 얹은 삼색제비꽃으로 식용가능하다
 김순현 목사 아내인 조미현씨가 얼음물 위에 얹은 삼색제비꽃으로 식용가능하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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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꽃이죠? 먹을 수 있는 꽃입니까?
예. 삼색제비꽃이라고 해서 식용 가능한 꽃입니다"

기왕 이곳에 온 김에 교회주변과 정원을 둘러봤다. 교회는 여수 돌산 계동항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태평양에서 밀려온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와 둥근 조약돌을 만들고 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방풍림이 마을 인근을 둘러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는 교인 K모(74세)씨는 광주와 삼천포를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가서 살다가 계동이 좋아 이곳으로 이사 왔다.

아름다운 계동항 모습이다. 집들이 보이는 바로 아래에 갈릴리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
 아름다운 계동항 모습이다. 집들이 보이는 바로 아래에 갈릴리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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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러 지역에서 살아봤지만 여수가 최고여. 캘리포니아로 이민 가서 아이들도 다 성공했고 먹고사는 데 걱정 없어요.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계동으로 낚시를 왔다가 이곳 경치에 반해 낚시는 안 하고 땅 사러 다니다 다음날 바로 샀어요. 이곳이 좋아 미국도 안 가잖아요 "

아름다운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교회는 온통 꽃동산이다. 거기에 태평양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6월의 태양이 주는 상쾌함이란 …. 점심을 먹고 정원에 설치해놓은 파라솔 밑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시작했다. 23년차 목회를 하는 김순현 목사는 여수 계동의 갈릴리교회에서 근무한 지 11년차다.

오늘(6월 9일) 인도에서 특별한 손님들이 갈릴리 교회를 방문했다. 오른쪽부터 정호진 목사, 갈릴리교회 목사 사모님인 조미현씨, 김순현 목사, 그리고 마지막에서 두번째가 정호진 목사 부인인 박미향 사모님
 오늘(6월 9일) 인도에서 특별한 손님들이 갈릴리 교회를 방문했다. 오른쪽부터 정호진 목사, 갈릴리교회 목사 사모님인 조미현씨, 김순현 목사, 그리고 마지막에서 두번째가 정호진 목사 부인인 박미향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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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한국에 처음 온 베니 장로가 머리에 미역을 얹고 파안대소하고 있다. 물이 너무나 맑아 마셔보고 싶다며 찍어먹기도 했다. 3년전 인도에서 나와 며칠 동안 동행했던 그는 "왜 길거리에 소와 새, 경찰이 안 보이냐?"고 물었다. 인도 바다는 흙탕물이고 길거리에는 소와 새, 경찰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한국에 처음 온 베니 장로가 머리에 미역을 얹고 파안대소하고 있다. 물이 너무나 맑아 마셔보고 싶다며 찍어먹기도 했다. 3년전 인도에서 나와 며칠 동안 동행했던 그는 "왜 길거리에 소와 새, 경찰이 안 보이냐?"고 물었다. 인도 바다는 흙탕물이고 길거리에는 소와 새, 경찰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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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꽃들은 도대체 몇 종류나 되며 어떻게 마련했어요? 그리고 꽃을 이렇게 가꾸는 이유는 뭡니까?"
"처음에는 어려웠죠. 꽃씨를 사고 지인한테 얻고 자체적으로 씨앗이 발아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옮겨 심고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만큼 이뤘어요. 허균이 쓴 <숨어사는 자의 즐거움>이란 책 속에 어느 선비가 '먹을 것 걱정하지 않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피력하니까 '하늘은 아끼는 자에게만 먹을 것과 좋은 경치를 허락한다'고 했어요"

얘기하는 도중에 사모님이 과일을 쟁반에 들고 나온다. 그런데 여느 과일쟁반과 다르다. 포도, 수박, 토마토를 먹을 수 있게 썰어 놓은 위에는 허브(애플민트), 금어초, 한련화, 제라늄이 얹혀있었다.

김순현 목사 아내인 조미현씨가 내놓은 과일 쟁반 모습이다. 과일 위에 식용 가능한 예쁜 꽃들을 얹어 놓았다. 사모님의 정성스런 모습에 과일이 훨씬 더 맛있었다.
 김순현 목사 아내인 조미현씨가 내놓은 과일 쟁반 모습이다. 과일 위에 식용 가능한 예쁜 꽃들을 얹어 놓았다. 사모님의 정성스런 모습에 과일이 훨씬 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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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인 조미현씨가 떡 만들기 위해 모았다는 식용꽃잎들. 이렇게 예쁜 꽃들을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사모님인 조미현씨가 떡 만들기 위해 모았다는 식용꽃잎들. 이렇게 예쁜 꽃들을 과연 먹을 수 있을까?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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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쟁반이 너무 예뻐 "이 꽃들도 식용 가능한 것들입니까?" 라고 묻자 "그렇다"며 핸드폰을 보여준다. 그동안 식용 가능한 꽃들을 따로 모아 떡을 만들 예정이라는 사진 속에는 예쁜 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남편이나 아내나 부창부수다. 저 예쁜 꽃들을 먹을 수 있을까? 

감리교 신학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김순현 목사는 이곳 계동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어촌 주민들을 벗 삼아 창조 영성에 힘쓰며 영성 고전 번역 일을 하고 있다.

김목사가 번역한 책으로는 에버하르트 베트게의 <디트리히 본회퍼>, 아브라함 헤셀의 <안식>, 스탠리 존스의 <순례자의 노래>, 미로슬라브 볼프의 <베풂과 용서>, 매튜 폭스의 <영성, 자비의 힘>,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마더 테레사의 <즐거운 마음> 등이 있다.

교회 앞뜰에 가득히 핀 꽃들 모습. 3백여 종류의 꽃들이 화려함을 뽐내 카메라에 모두 담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교회 앞뜰에 가득히 핀 꽃들 모습. 3백여 종류의 꽃들이 화려함을 뽐내 카메라에 모두 담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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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목사가 구로얀의 저서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다>를 번역한 책 한 권을 내게 선물했다. 메릴랜드 주 로욜라 대학교에서 신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는 비겐 구로얀의 저서 내용 중 한 대목이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직선적이지 않다. 정원 한가운데 있으면 기억이 되살아나고, 희망과 기대가 솟구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계단식 화단들 사이로 난 평평한 길을 걸으면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여행한다. 몇몇 식물은 자기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나는 그들에게 눈길을 보내거나 그들의 향기를 맡으면서 그 역사를 떠올린다"

번역서 뒤편에 나오는 옮긴이의 글을 보면 김 목사의 꽃 사랑에 대한 심경이 잘 나와 있다.

"창을 열고 내다보는 요즘의 내 마음은 마치 창세기의 첫 장을 읽는 듯 두근거림의 연속이다. 가슴 뛰는 하루의 시작인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정원이 푸른 옷을 지어 입고 있다. 정원의 초목 사이로 새들이 찾아와 아침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김순현 목사가 아침 일찍 정원을 손보러 나설라치면 아내가 웃으며 말을 건다.

예쁜 꽃들로 가득한 정원 한 가운데 우아한 모습의 카라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카라는 '천년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간직하고 있다
 예쁜 꽃들로 가득한 정원 한 가운데 우아한 모습의 카라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카라는 '천년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간직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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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애하러 가는 거예요?"
"그래요. 샘나요?"
"샘은요, 그런 연애라면 등 떠밀며 권하지요."

여수시내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다. 가까운 교회를 마다하고 30분이나 되는 이곳 계동까지 예배 보러 오는 한 교인에게 이유를 묻자 그녀가 답했다. "목사님이 너무 깨끗하고 순수하셔서요. 번역본을 보고 아! 돌산에 이런 책을 번역한 분이 있구나! 하고 왔죠"

김 목사에게 계동의  갈릴리교회가 좋은 이유를 묻자, "교우들이 좋고, 순수하며 인정이 많아요, 다른 목사들은 3~4년 있다 가는데 11년차인 것은 이곳 환경이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가 이곳을 떠난다고 하면 아마 꽃들이 "못 간다!"고 데모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김순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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