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를 풍자한 <개그콘서트>와 <무한도전>이 지난 6월 24일과 7월 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아래 방심위)로부터 행정지도라는 경징계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방심위는 지난 6월 24일 소위원회에서 6월 14일 방송된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이 메르스와 관련한 정부 대응을 개그 소재로 다루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풍자한 것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 5호를 적용해 의견 제시를 의결했다.
이어 7월 1일에는 지난 6월 13일 <무한도전>의 유재석씨가 '무한뉴스' 코너를 통해 "메르스 예방법으로는 낙타, 염소, 박쥐와 같은 동물 접촉을 피하고 낙타고기나 생 낙타유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를 위반했다면서 '의견 제시' 제재를 의결했다.
이에 PD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방심위의 <개그콘서트>와 <무한도전> 징계를 코미디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한 누리꾼은 방심위의 경징계 조치를 두고 '창조징계'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번 징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지난 6일 안주식 KBS PD협회장을 KBS 연구동에서 만났다. 다음은 안 PD협회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이런 것까지 징계? 헛웃음 나오는 수준"
- 최근 KBS <개그콘서트>와 MBC <무한도전>이 방심위로부터 징계를 받은 것을 어떻게 평가하세요?"이번 징계를 두고 PD연합회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라고 규정했어요. 왜냐면 지금까지 방심위가 굉장히 정치적으로 편향된 심의를 한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건은 예능프로그램이란 특수성이 있는 풍자였습니다. 더군다나 그 풍자가 상식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게 아니라 정치 풍자였습니다. 정치 풍자에 대해 방심위가 정색하면서 징계를 내린다는 것은 '이런 것까지도 정부가 간섭하고 징계하는구나, 이건 상식을 넘어선 수준이 아니라 헛웃음이 나오는 수준'입니다. 한국의 국격이 '막장'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징계가 PD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나요?"저도 방심위 결정이 나오고 <개그콘서트> 제작진과 통화했고 박건식 PD연합회장도 <무한도전> 팀과 대화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론이 뭐냐면…, 제작진은 이 사안에 대해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다행이죠.
왜냐면 <개그콘서트> <무한도전> 제작진이 '의견 제시'를 받았는데 이 결정의 원래 취지는 '이런 의견도 있으니 전달한다'는 거예요. <개그콘서트> 팀은 제게 '알겠습니다, 그런 의견도 있다는 것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현재까지로는 방심위의 심의 결정이 예능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영향을 끼치진 않은 것 같아요.
<개그콘서트> 제작진 반응은 방심위 결정이 말이 안 돼 단호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죠. 방심위의 심의 결정이 PD에 심리적 위축을 가져오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방송사 간부진은 위축되죠.
그래서 저희 PD연합회는 이런 결정에 '위축되지 마라' '의견 제시도 징계인데, 이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방심위의 정치적 의도가 명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의도에 영향받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프로그램을 의연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뭔가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부분에 대해 제작진이 위축된다든지, (정부가) 간섭하려는 신호가 오는 게 보편화되고 있어요. 이런 현상에 대해 PD연합회는 제작진이 위축되지 않게끔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심위에서 이런 결정을 한다는 것 자체는 상당히 중대한 사안이에요."
"<개콘> <무도>, 괘씸죄로 징계받은 듯"- 권력이 풍자를 싫어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데요. 이유는 뭘까요."이명박 정부 때부터 계속돼온 현상입니다. 천안함 사태 때도 그랬죠. 정권의 안위에 대한 부분에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입니다.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그때부터 시작된 일관된 자세였죠.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조금 달라졌어요. 양상이 어찌 됐든 정권의 안위를 두고 객관적인 사안으로 심의해왔는데, 지금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개그콘서트>나 <무한도전>의 심의 결과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개인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괘씸죄로 징계를 받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객관을 추구하는 정치적 철학과는 궤를 달리하는 거죠. 후진국형입니다.
이런 게 왜 심의 안건이 됐는지가 문제죠. 제 생각에는 풍자라는 게 '느낌의 영역'에 있거든요. 심의 결과도 거의 대부분 객관적인 근거가 없어요. 그냥 느낌이죠. '일부 시청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표현이 있어요. 심기가 불편했다는 걸 가지고 징계를 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징후라고 봅니다. 무슨 징후냐면, 정부가 자의적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이 정부의 성격에 있다고 봅니다. 박근혜 정부는 예측하기 어렵죠. 뭔가 굉장히 감정적이에요. 그런 정치 스타일이 방심위의 심의 형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고 봐요. 제가 볼 때는 방심위 위원들도 박 대통령의 눈치를 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개그에서 풍자는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 아닌가요?"개그에서 풍자는 핵심적인 겁니다. 정치권 비판에서 유머를 통한 풍자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정치권이 열심히 싸우고 정색할 때도 풍자는 허용됩니다. 풍자마저도 허용 안 되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어요. 그런데 이런 것까지도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행한 사태라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방송 대하는 이명박-박근혜의 차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참여정부 때 <개그콘서트>에 노무현 대통령이란 캐릭터가 있어서 노 대통령하고 똑같이 분장하고 나와서 말투를 흉내 냈어요. 지금 <개그콘서트>에서 문제가 되는 '민상토론'의 콘셉트는 개그맨에게 어떤 사안을 물어보는데 묻지 말라면서 도망가는 겁니다. 사회가 어떤 안건에 대해서 이야기 자체를 못하게 하는 현상을 풍자한 것이죠. 어찌 보면 <개그콘서트>의 풍자 내용만 두고도 현재 정권이 얼마나 정색을 하고 비판을 막고 있는지 드러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백한 후퇴죠."
- 노태우 전 대통령만 해도 '나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말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고 코미디의 영역이 넓어진 때가 노태우 정부 때입니다. 그때도 유사 군사독재 시대였지만, 노태우 대통령은 자기 스탠스를 '서민 대통령'으로 잡았어요. '물태우'라는 풍자도 있었고, 이는 방송에서도 허용됐어요. 민주화 이후에 그런 기조가 깨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는 그 기조를 깼어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 풍자 영역은 1987년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한가요?"정치 풍자란 영역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보다 더 심해졌죠. 이명박 정부 때 가장 큰 문제는 4대강을 소재로 한 시사프로그램을 내보내지 않은 것이었죠. 주로 시사나 뉴스에 집중했어요. 예능 풍자 영역까지는 오지 않았어요."
-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 <무한도전>이 몇 차례 징계를 받았잖아요."받았죠. 그래도 이명박 정부는 정치 풍자를 두고 징계하진 않았어요. 보수적인 정권이다 보니까 '막말'이라거나 다른 명분이 있었어요. 그러나 이번 징계는 명확하게 정치 비판이에요. 막말 같은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보다 후퇴한 거죠."
"방심위 여 7 - 야 4 지배구조 깨야"- <개그콘서트>와 <무한도전>은 징계를 받았지만, 막말과 왜곡보도를 하는 종편 채널은 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됩니다. "방심위의 징계는 형평성이 없어요. 제가 볼 때 막말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PD 입장에서 막말은 조금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타이트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팩트가 어긋난 잘못된 보도는 문제죠. 종편 정치 토크쇼 등에서 벌어지는 왜곡보도는 무척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방심위는 여기에 대해 솜방망이식 처벌을 내리고 있어요. 이건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방심위가 제역할을 안 하고 있는 거죠. 단지 정치적으로 '친여'라는 이유로 일을 안 하는 겁니다. 이런 점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돼야 합니다."
- 하지만 방통위나 방심위가 이런 이슈를 간과하는 상황에서 방법이 없지 않나요?"KBS 이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지배구조를 깨야 합니다. 여 7 - 야 4가 법 규정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관례입니다. 여야 정치권이 나눠먹기식으로 하면 안 되죠. 야당도 비판받을 대목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면 7을 먹는 거잖아요. 이런 구조 자체를 용인해주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특별 다수제를 도입한다든지 방통위·KBS이사회·방문진 같은 곳에는 방송 관련 전문직 경력이 없으면 선임하지 않는다는지 등의 제도적 개선이 있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시민단체와 야권 그리고 방송 전문가, 시청자 단체가 모여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