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다"며 지난 4월 다니던 진주여자고등학교 2학년을 자퇴했던 김다운(17) 양은 10일 저녁 진주시내 차없는거리에서 "여러분의 학교엔 진정 배움이 있습니까"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다"며 지난 4월 다니던 진주여자고등학교 2학년을 자퇴했던 김다운(17) 양은 10일 저녁 진주시내 차없는거리에서 "여러분의 학교엔 진정 배움이 있습니까"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 윤성효

글을 쓰려니 심경이 조금 복잡합니다. 분명 김다운양을 응원하기 위해 자판 앞에 앉았는데, 지지와 격려를 보내자니 저 스스로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고등학교에서 다운양 또래인 고2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주범'은 아닐지언정 다운양을 학교에서 내몬, 적어도 '공범'은 될 테니까요.

정말 미안합니다.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하며 마음껏 꿈과 끼를 펼쳐야 할 학교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돼서. 매일 아침 고개 떨군 채 퀭한 눈으로 교문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제가 '교사'인지 '간수'인지 헛갈립니다. 이젠 그마저 무덤덤해졌지만, 여하튼 줄줄이 통학버스에서 내려 학교 오는 길이 흡사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등교하는 아이의 소원 "야자 빼주세요"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다"며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진주시내에서 1인시위를 해온 김다운 양은 진주시내 차없는거리를 끝으로 1인시위를 마무리했다. 사진은 김양이 1인시위하면서 들고 있었던 손팻말.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다"며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진주시내에서 1인시위를 해온 김다운 양은 진주시내 차없는거리를 끝으로 1인시위를 마무리했다. 사진은 김양이 1인시위하면서 들고 있었던 손팻말. ⓒ 김다운

엊그제 아침 출근길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등교하는 아이 두 명과 양쪽으로 어깨동무한 채 장난 걸듯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기꺼이 들어줄 테니 오늘 소망 한 가지씩 말해봐!" 그랬더니, 한 아이는 "야간자율학습 하루만 빼달라"고 하고, 다른 아이는 아침부터 무슨 실없는 소리냐는 듯 "오늘 하루가 그냥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는 겁니다. 다운양도 그랬을 테죠.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즐거운 일이 기다릴까 하는 아이들다운 설렘은 이미 찾아보기 힘들 게 된 것 같습니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입만 열면 '행복 교육'을 실현하고 '질문이 있는 교실'을 만들겠다며 호들갑 떨지만, 우리 교육이 아이들의 신뢰와 기대를 회복하기란 무망해 보입니다. 학교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아이들의 '행복'과 '질문'에 제대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운양이 손으로 눌러 쓴 대자보를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습니다. 그 글 속 다운양을 가리키는 '나'를 교사인 '나'로 바꿔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학생과 교사라는 입장만 서로 다를 뿐, 머리와 가슴을 옥죄고 있는 똑같은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배움이 없는 학교'에서, 다운양의 말대로, 학생들이 꼭두각시라면, 교사 역시 그저 영혼 없는 밥벌이일 뿐입니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남들 다 가니까 고등학교에 입학한' 다운양과는 달리, 17년 전 새내기 교사 시절 우리 교육을 바꿔보겠노라 '헛된' 꿈을 꾸었다는 점입니다. 교직 생활 17년 동안 명문대 진학률로 학교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사가 결국 무릎을 꿇었고, 밑도 끝도 없는 대학입시 경쟁은 고등학생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게 돼버렸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운양의 독백처럼 '교사로서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행복한가?'를 자문합니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이 행복하다는데, 어찌해볼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인지 많은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환한 표정 짓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다운양의 말처럼, '의미 없는 무한 입시 경쟁' 속에 죽어가는 건 10대 학생들만은 아닙니다.

입시 공부에 진절머리내는 학생들을 밤늦도록 가둬놓고서 '어쨌든 대학에는 가야 한다' 앵무새처럼 되뇌는 제 모습이 참 비루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우리 대학은 더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고작 대졸자라는 자격을 얻기 위해 부모세대의 노후 자금일 그 비싼 등록금을 '허비'한다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 가봐야 별 수 없다'는 게 이 땅 대부분 교사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한때 대학이 '취업 학원'이라 불릴 때도 있었지만, '삼포 세대'를 넘어 '오포 세대'라는 말이 익숙한 요즘엔 그런 조롱을 받았다는 것조차 부러울 지경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오로지 대학입시만 보고 달려온 학생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남들 다 가는 대학'이니 말입니다.

부디 보란 듯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진주여자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다 지난 4월 자퇴했던 김다운(17) 양은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어 자퇴했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진주지역 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진주여자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다 지난 4월 자퇴했던 김다운(17) 양은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어 자퇴했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진주지역 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다운

수업시간에 큰 맘 먹고 대자보를 들고 있는 다운양의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에게 큰 소리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다들 놀라워하며 동갑내기 여학생이 남긴 자퇴의 변에 하나같이 공감하더군요. 그 어디든 우리나라 인문계 고등학교는 똑같다는 값싼 위안을 서로 나누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자퇴라는 선택에 대해서는 주저했습니다. 한 아이는, 모르긴 해도 성적이 뛰어나거나 유학을 생각할 정도로 집이 부유할 거라고 넘겨짚더군요. 믿는 구석이 있으니 자퇴한 것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다른 한 아이는 자퇴생이라는 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주홍 글씨' 같은 거라면서, 아무런 대책 없이 학교를 벗어나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부러움 반, 두려움 반'이라고나 할까요.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할지언정 선뜻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질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운양은 여전히 '낯선' 존재입니다. 사진을 보고 예쁘다며 키득거리는 몇몇 '개념 없는' 아이들을 나무라려니, 순간 그들도, 또 저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벼랑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레밍 쥐들처럼 가엾게 느껴졌습니다.

아무튼, 다운양의 자퇴 이슈는 1년 365일 학교, 집, 학원을 순례하는 아이들의 '평온한'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자퇴가 연쇄적으로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최근 학교의 존재 이유를 묻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인식 지평이 시나브로 넓어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무엇보다 많은 교사의 성찰을 이끌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자퇴를 결심하기 전 가장 후회되는 일이, 교사들의 '꼰대질'과 '강압'에 저항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다운양의 일침에 동료교사들은 적잖이 놀란 눈치입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를 사제지간이 아닌 '갑을 관계'로 여길 정도로 학교에 상호 불신과 폭력이 팽배해 있다는 지적에 뜨끔한 거죠. 가르침이 '꼰대질'로 여겨지고, 생활지도가 '강압'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라면, 그곳을 더는 학교라 말할 순 없습니다.

동료 교사들끼리 만약 자기가 담임교사라면 자퇴하겠다는 다운양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다들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순순히 그러라고 말하진 못했을 거라더군요. 미래를 책임질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부모님을 찾아가 설득도 하고, 때로는 자퇴생이라는 낙인과 불안감을 조장하는 등 온갖 '꼰대질'을 해가며 막았을 거라고 이구동성 말했습니다.

비록 교사로서 '몸'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게 될지언정 '마음'은 다운양의 주장에 십분 공감하고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일 겁니다. 지금 고등학교엔 아무런 정의도, 희망도, 미래도 없다는 다운양의 냉혹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무릇 교육이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미래'를 꿈꾸고,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일진대, 머리로만 가르치려 했을 뿐 가슴으로 다가서지 못한 점 거듭 사죄합니다.

끝으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외롭고 힘들겠지만, 당당한 삶을 통해 부디 보란 듯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저 역시 다운양이 자퇴한 것이 후회되도록 학교 안 아이들에게 '배움 있는 공부'를 하고 '정답 없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치겠습니다. 적어도 더는 비루한 교사는 되지 않겠습니다. 일면식도 없지만, 다운양이 제 스승입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김다운#대자보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