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늘을 날려고 달린다.
 하늘을 날려고 달린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도움닫기가 잘 되었으니 신나게 펄쩍 뛰어오른다.
 도움닫기가 잘 되었으니 신나게 펄쩍 뛰어오른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하늘을 날다

우리 집 두 아이한테 으레 '놀이순이·놀이돌이' 같은 이름을 붙여서 부릅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이 아이들은 참말로 '날순이·날돌이'로구나 싶습니다.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꿈으로 신나게 바람을 가르면서 펄쩍펄쩍 뛰며 노래합니다. 이 같은 날순이 모습을 보다가, 나도 어릴 적에 날돌이가 되어 놀았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리하여, 하늘을 나는 아이를 뒤에서 바지런히 좇다가 사진을 한 장 두 장 찍는 내 손길은, 오늘 이곳에서 노는 우리 아이를 찍는 사진일 뿐 아니라, 아스라한 지난날 저곳에서 내가 아이로서 뛰논 모습을 찍는 사진입니다.

 시골버스에서 바닥에 앉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마음속에 이야기가 남습니다. 그리고 사진 한 장 슬쩍 찍어도 오래도록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골버스에서 바닥에 앉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마음속에 이야기가 남습니다. 그리고 사진 한 장 슬쩍 찍어도 오래도록 이야기가 흐릅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시골에서 타는 버스

시골에서는 버스 바닥에 흔히 앉습니다. 할배는 웬만해서는 바닥에 안 앉지만 할매는 으레 바닥에 앉습니다. 상자나 짐을 깔고 앉기도 하지만, 맨바닥에 그냥 앉곤 합니다. 시골버스에서 자리가 없는 일은 드물지만, 장날에는 빈자리가 없기 마련이라, 누구나 털썩털썩 앉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동무들하고 깔깔깔 노래하면서 바닥에 앉아서 갑니다. 그야말로 놀듯이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이야기가 흐르며, 서로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들길을 시원스레 달립니다.

 마을 이웃집 할매가 큰파를 다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오래도록 흙을 만진 주름진 손으로 큰파를 정갈하게 다듬은 뒤, 다듬고 남은 풀줄기나 비늘껍질은 흙한테 돌려주지요.
 마을 이웃집 할매가 큰파를 다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오래도록 흙을 만진 주름진 손으로 큰파를 정갈하게 다듬은 뒤, 다듬고 남은 풀줄기나 비늘껍질은 흙한테 돌려주지요.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다듬은 파랑 주름진 손

파 한 뿌리도 시골에서 태어납니다. 아주 조그마한 씨앗에서 파가 자라고, 잘 자란 파는 시골지기가 손으로 하나하나 끊고 다듬어야 비로소 저잣거리에 나옵니다. 파를 뽑는 기계가 없으며, 파를 다듬는 기계가 없습니다. 시골지기는 흙을 만지고 주무르면서 파 한 뿌리를 얻고, 이렇게 얻은 파를 찬찬히 손질하면서 도시사람이 즐겁게 먹을 수 있도록 내놓아 줍니다. 다듬은 뿌리하고 줄기는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파를 비롯한 남새가 잘 자라도록 거름이 됩니다. 흙빛으로 주름진 손끝에서 짙푸르면서 새하얀 삶이 사랑스럽게 샘솟습니다.

 즐겁게 노는 아이하고 즐겁게 하루를 누리기에, 내가 찍는 사진은 나 스스로 즐겁네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것이 아니라고 보더라도, 아이하고 내가 오늘 하루 어떤 삶을 누렸는가 하는 대목을 길어올릴 수 있으면 '즐거운 사진'이 됩니다.
 즐겁게 노는 아이하고 즐겁게 하루를 누리기에, 내가 찍는 사진은 나 스스로 즐겁네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것이 아니라고 보더라도, 아이하고 내가 오늘 하루 어떤 삶을 누렸는가 하는 대목을 길어올릴 수 있으면 '즐거운 사진'이 됩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네 눈에 예쁜 돌이 하나씩

골짜기에 나들이를 갑니다. 두 아이는 함께 놀다가도 저마다 새로운 놀이를 찾아서 따로 놉니다. 작은아이는 문득 바위를 타고 앉아서 냇바닥에 있는 돌을 하나씩 줍습니다. 그런데, 돌을 주우면서 이 돌은 뭐고 저 돌은 뭐라고 중얼거립니다. 아이 곁으로 다가가서 귀를 기울입니다. 작은아이는 골짜기 바닥에 있는 돌을 두고 자동차요 비행기요 하면서 놉니다. 한손으로는 틀림없이 돌을 쥐면서 놀지만, 마음으로는 새롭게 바라보면서 노는 셈입니다. 나는 무엇을 보면서 사진을 찍을까요? 시골아이 뒷모습을 찍는 셈일까요, 아니면 꿈나래를 펴는 마음과 몸짓을 찍는 셈일까요?

 알면 아는 만큼 볼 수 있을 테지만, 몰라도 스스럼없이 보면서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씩 새롭게 알고, 하나씩 새롭게 바라보며, 하나씩 새롭게 사진으로도 옮깁니다.
 알면 아는 만큼 볼 수 있을 테지만, 몰라도 스스럼없이 보면서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씩 새롭게 알고, 하나씩 새롭게 바라보며, 하나씩 새롭게 사진으로도 옮깁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아는 버섯, 모르는 버섯

여덟 살 어린이는 일곱 살 적에 '달걀버섯'을 보았습니다. 다만, 갓을 활짝 벌린 모습이 아니고, 달걀처럼 오므린 모습도 아닌, 둘 사이일 적 모습을 보았어요. 여덟 살 어린이는 버섯 이름이 무엇인지 떠올리지 못하지만 "아버지, 우리 예전에 본 버섯이에요!" 하고 외칠 줄 압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래, 지난해에 봤어. 이름을 알겠니?" "아니." "이름을 모르겠으면 스스로 새롭게 붙이면 돼." "음, 분홍버섯?" 버섯이나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벌레한테 '학술 이름'을 붙여도 되지만, 우리가 저마다 바라보고 마주하는 대로 '반가운 이름'을 붙여도 됩니다. 아무튼, 이제부터 '우리 식구 모두 아는 버섯'이 한 가지 늡니다.

 도시에서는 모시풀 한 포기를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웬만한 시골에서는 아주 흔하게 봅니다. 시골에서 모시밥 지어 먹는 사람이 드뭅니다. 도시에서도 흔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모시풀을 썰어서 넣는 밥맛을 한 번 본 뒤에는, 시골집 둘레에서 신나게 모시풀을 뜯어서 '흔한 모시밥'을 먹습니다.
 도시에서는 모시풀 한 포기를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웬만한 시골에서는 아주 흔하게 봅니다. 시골에서 모시밥 지어 먹는 사람이 드뭅니다. 도시에서도 흔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모시풀을 썰어서 넣는 밥맛을 한 번 본 뒤에는, 시골집 둘레에서 신나게 모시풀을 뜯어서 '흔한 모시밥'을 먹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흔하지 않으면서 흔한 모시 밥

모시밥을 짓습니다. 모시 잎을 말려서 가루로 빻은 뒤에 모시가루를 섞어서 밥을 지을 수 있으나, 그때그때 모시 잎을 뜯어서 잘게 썬 뒤에 모시밥을 지을 수 있어요. 봄부터 가을 끝자락까지 스스로 잘 돋는 모시풀이니, 세 철 동안 즐겁게 모시밥을 먹고 겨울에는 무밥이나 유채밥을 먹자고 여깁니다. 예전 사람들처럼 모시풀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짓지는 못하지만, '제철밥'을 누립니다. 모시풀이 없는 곳에서는 모시밥을 못 먹을 테지만, 모시풀이 흔한 곳에서는 날마다 먹습니다. 둘레를 살펴보며 삶을 짓습니다. 그리 대단한 밥은 아닐 테지만, 내 보금자리에서 얻거나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스스로 찾습니다.

 함께 그림놀이를 합니다.
 함께 그림놀이를 합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둘이서 아주 천천히 하나씩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오려서 그림판을 빚습니다.
 둘이서 아주 천천히 하나씩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오려서 그림판을 빚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너랑 나랑 함께 짓지

어버이가 이것을 하면 아이도 이것을 하고 싶습니다. 어버이가 저것을 하면 아이도 저것을 하고 싶습니다. 잘 하거나 못 하는 몸짓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할 뿐이고, 그냥 할 뿐이에요.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이것저것 오리면서 가위질을 익혔습니다. 작은아이도 작은아이대로 이 종이 저 종이 가리지 않으면서 오리면서 차근차근 가위질을 익힙니다. 그림을 그려서 오린 별을 붙이는 놀이도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천천히 함께 하면서 시나브로 익힙니다. 언제나 함께 짓습니다. 말도 삶도 넋도 노래도 꿈도 사랑도 오늘 하루도 참말 너랑 나랑 함께 지어요.

 혼자 두 아이를 이끌고 나들이를 다니자면 숨돌릴 겨를이 없다고 할 만하지만, 바로 이렇게 숨돌릴 겨를이 없는 삶이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혼자 두 아이를 이끌고 나들이를 다니자면 숨돌릴 겨를이 없다고 할 만하지만, 바로 이렇게 숨돌릴 겨를이 없는 삶이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부채질하는 아버지

내가 여름에 할 일 가운데 하나는 부채질입니다. 올해에는 선풍기를 틀지만, 지난해까지는 선풍기조차 안 쓰고 살았습니다. 두 아이하고 사니, 한손에 부채를 하나씩 쥐고 '두 손 부채질'을 합니다. 마실길에서도 잠자리에서도 으레 몇 시간씩 부채질을 합니다. 큰아이만 우리 곁에 있을 적에는 한손으로 안고 한손으로 부채질을 했고, 두 아이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는 따로 누인 뒤 두 손으로 부채질입니다. 다른 일을 못 하고 오로지 부채질만 하며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이들 가슴속에 깃든 고운 넋을 물씬 느끼면서 내 넋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발에 꿰면 고무신, 작대기에 꽂으면 놀잇감. 시골순이는 언제나 스스로 놀이를 새롭게 지으면서 놀고, 시골 아버지는 아이들하고 함께 놀고 어울리면서 새로운 사진을 얻습니다.
 발에 꿰면 고무신, 작대기에 꽂으면 놀잇감. 시골순이는 언제나 스스로 놀이를 새롭게 지으면서 놀고, 시골 아버지는 아이들하고 함께 놀고 어울리면서 새로운 사진을 얻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노랗게 노는 고무신

언제나 쉽게 벗고 가볍게 빨아서 말릴 수 있는 고무신이지만, 시골마을 놀이순이한테는 이런 고무신조차 번거롭습니다. 게다가 이 고무신을 대나무 작대기에 꿰면 멋진 놀잇감이 됩니다. 길다란 작대기는 손이 닿지 않는 후박나무 가지까지 이어지고, 작대기에 걸린 고무신은 땅바닥이 아닌 하늘을 성큼성큼 밟으면서 마실을 다닙니다. 노란 고무신은 노랗게 놀고, 노란 고무신을 휘휘 젓는 시골순이는 새로운 놀이를 스스로 지은 기쁨을 마음껏 누리면서 동생을 이끕니다. 여름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나무그늘 밑에서 노는 아이들이 흘리는 땀을 말려 줍니다.

 그저 달리기만 해도 재미나다는 아이들을 따라서 달리다가, 이렇게 달리는 놀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찍어도 스스로 재미난 사진이 되겠네 하고 느낍니다. '모델'더러 이렇게 움직이거나 저렇게 몸짓을 하라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기쁘게 바라보며 함께 사는 이웃으로서 사진 한 장 나누면 됩니다.
 그저 달리기만 해도 재미나다는 아이들을 따라서 달리다가, 이렇게 달리는 놀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찍어도 스스로 재미난 사진이 되겠네 하고 느낍니다. '모델'더러 이렇게 움직이거나 저렇게 몸짓을 하라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기쁘게 바라보며 함께 사는 이웃으로서 사진 한 장 나누면 됩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신나는 사진

사진은 신나게 찍으면 됩니다. 오늘 하루 신나게 놀자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스스로 신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신나게 노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신나게 놀자'는 생각뿐이기 때문에 신나게 놀 수 있습니다. 맛나게 밥을 먹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맛나게 먹자'는 마음뿐이기 때문에 맛나게 밥을 먹을 줄 압니다. 사진을 찍거나 읽는 어른이라면, 신나게 찍고 신나게 읽으면 됩니다. 즐겁게 찍고 즐겁게 읽으면 됩니다. 아름답게 찍고 아름답게 읽으면 되며, 사랑스레 찍고 사랑스레 읽으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최종규 시민기자의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진노래#사진읽기#사진찍기#사진넋#사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