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편하게 일한다'는 말이 나오던 시대가 있었지요. 아닙니다. 장시간 앉아 일하면 땀은 나지 않을지언정 몸은 망가집니다. 3, 4번 디스크가 터지고 목은 거북이가 됩니다.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됩니다. 장시간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 그 권리를 찾고자 합니다. 관련 기사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
손목, 손 저림, 손목터널증후군...마우스로 망가진 손에 대한 얘기지만, 재미있고 발랄하게 쓰고 싶었다. 하지만 직업병 기사에 발랄함? 그런 건 불가능했다. 웃기는 영화 대사라도 하나 집어 넣으려 했지만, 포털에 뜨는 연관 검색어도 죄다 우울한 것 투성이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로마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세계 최대 벽화인 <천지창조>를 그리면서 척추가 휘고 눈병까지 얻었단다. 조정래 작가는 오랫동안 앉아 글을 쓴 탓에 탈장과 오른팔 마비가 왔다고 한다. 그들의 '직업병'에 비하면 내 '직업병'은 조족지혈, 새 발의 피다.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 연주자는 한쪽 팔을 많이 써서 척추측만증을 앓기 쉽다는데, 내 직업병 이야기는 그들만큼 우아하지도 못하다(출처 : 연주자도 직업병을 앓을까? 월간 <객석> 2014년 7월호).
대작을 쓰는 것도, 중병을 앓는 것도 아닌 흔해빠진 손과 어깨의 통증. 그래도 남의 중병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아프다고, 어느 순간 이러다 나중에 큰 탈 나는 건 아닌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니 없어야 하지만) 망상과 걱정이 같이 밀려왔다.
천 번의 클릭질과 함께 찾아온 '이상신호'
내 '직업병'이 심해진 건, 약 2년 6개월 전 부서를 옮기면서부터였다. 기사를 검토하는 팀에서, 기사를 화면에 배치하는 팀으로 오면서 마우스 사용량이 배 이상 늘었다. 독자들이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보는 그 화면을 '만드는' 작업이 내가 맡은 일이었다.
기사를 채택하고, 포털에 전송하고, 홈페이지에 올릴 섬네일 사진을 자르고... 모든 과정엔 '클릭질'이 필요했다. 하루 업무가 끝난 뒤 폴더를 비울 때면 80장 안팎의 사진이 삭제됐다. 그날 내가 작업한 섬네일의 양이었다. 그보다 약간 적은 날도, 더 많은 날도 있었지만 대략 그 수준을 유지했다.
사진 한 장을 원하는 크기로 자르기 위해선, 포토샵에서 '파일을 부르고-자르고-선명도를 높인 뒤-저장하는' 최소한 4단계, 12번의 클릭질이 필요했다. 그것도 '단 한 번에' 실수없이 원하는 구도로 파일을 자른다는 초현실적인 가정에서다.
하루 사용한 80장의 사진 중 절반만 직접 작업한 원본이라고 가정해도 40장 x 12번 = 480번. 섬네일을 자르는 공정에만 '최소' 480번의 클릭질이 필요했다. 보통의 경우 몇 장의 사진을 약간의 구도 차이를 두고 여러 개로 잘라 비교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수치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거기에다 경우에 따라서는 적절한 사진이 없어 직접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포토샵 이외에 실질적인 업무에도 역시나 클릭질은 필수였기에 내가 하루동안 누른 마우스의 숫자는 1000번을 족히 넘을 것이다.
왼쪽 마우스 버튼을 길게 누른 채로 사진을 자르고, 붙이고, 끌어오는 작업은 손과 팔, 어깨 근육을 긴장시켰다. 결국 어느날부터인가 오른 손등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쥐가 난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업무 적응 기간이어서 그렇겠거니' 했다. 하지만 손등에서 팔로 점점 저려오는 부위가 커졌다. 손목의 결림도 있었지만, 저림이 훨씬 기분 나빴다. 주말이나 휴가 등 쉴 땐 괜찮다가 출근만 하면 말복 더위처럼 질척이며 통증이 따라왔다.
회사의 한 선배는 10년 만에 저림 증상이 왔다는데, 나는 불과 몇 개월만이었다. 마우스를 쓰는 횟수를 한 번이라도 줄이려고 키보드도 활용해보고, 마우스 사용하는 손을 왼손으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왼손으로 바꿔 쓰니 왼쪽 손등과 팔이 아파왔고, 급한 업무일 땐 다시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 동료는 마우스를 오른쪽, 왼쪽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리저리 옮겨가며 썼지만, 그것 역시 별반 효과가 없어보였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톰 크루즈처럼 손을 허공에 대고 휙휙 젓기만 해도 일이 다 처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지만, 그건 정말 '미션 임파서블'이었다(강산이 한 번 더 바뀐 뒤에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일반 마우스 vs. 펜 태플릿 vs. 버티컬 마우스' 다 써봤더니...
대신 초등학교 이후로 계속 써왔던 일반 마우스를 '펜 태블릿'으로 바꿨다. 먼저 태플릿을 써본 동료 기자가 추천해 회사에 교체 요청을 신청했다. 컴퓨터와 연결된 네모난 판 위에 전용펜을 대고 움직이면 마우스 커서가 따라 이동하는 장비였다. 태블릿은 디자이너들이 많이 쓰는 것으로 확실히 포토샵 작업은 이전에 비해 훨씬 편해졌다.
우선 손등이 위로 보이게 엎어놓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반 마우스 방식이 아니어서 손등의 긴장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더불어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지 않고, 펜 촉의 끝을 '콕' 하고 판에 찍으면 '클릭질'로 인식돼 손에 들어가는 힘도 많이 줄었다.
그렇게 '마우스 고난'이 끝나는가 했다. 하지만 행복은 며칠뿐이었다. 이번에는 어깨가 문제였다. 위쪽 팔뚝을 고정한 채 아래 팔 부분을 많이 쓰는 일반 마우스와 달리 태블릿은 펜을 쥐고 팔 전체를 움직이는 모양으로 작업을 해야 했기에 어깨 사용량이 늘었다. 결국 어깨 통증이 찾아왔다. 일반 마우스를 쓸 때 손 저림이 생기기까지 몇 개월 걸렸다면 이번엔 단 며칠 만에 바로 반응이 왔다.
이번에도 '적응하면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사용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통증은 여전하다. 요즘엔 손가락 통증까지 생겼다. 학창시절 연필을 오래 잡고 있으면 손가락이 피곤해지는 것과 같은 증상이다. 자주 손을 쥐었다 펴주고 목 주위 어깨 근육 스트레칭도 하지만, 다시 의자에 앉아 작업을 시작하면 통증도 슬그머니 돌아온다.
일반 마우스, 펜 태블릿에 이어 사람들이 많이 쓴다는 버티컬 마우스도 써봤다. 손목 통증을 호소하는 사무직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타입이었다. '손이 너무 아프다'는 편집부 기자들의 요청을 회사가 받아들여 전체 교체해줬다.
세로로 세워 사용하는 버티컬 마우스는 듣던대로 손목 통증에 효과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몇 번이고 손목을 주물러줬어야 했을 텐데 버티컬 마우스를 쓸 때엔 그런 통증이 없었다. 어깨 통증도 오래 사용할 경우 약간 나타났지만, 펜 태블릿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펜 태블릿으로 다시 돌아왔다. 버티컬 마우스에는 묘한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을 세운 상태에서 검지, 중지에 힘을 줘 클릭을 하는 게 너무 어색했다. 버티컬 마우스의 크기가 보통 여자 손 사이즈에는 딱 맞지 않아, 의식적으로 마우스를 꽉 안아 쓰지 않으면 클릭질 자체에 꽤 많은 힘이 들어갔다. 마우스 크기가 훨씬 작고 가벼웠다면, 물리적으로 '똑딱' 클릭하는 방식이 아닌 터치였다면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손목 통증과 손 저림 등 내가 겪었던 증상은 '손목터널증후군(수근관 증후군)' 초기 증상 중 하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손목터널증후군 진단을 받은 환자가 최근 5년 사이 40% 이상 증가했다(2009년 12만4000여 명→2013년 17만5000여 명).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손목을 많이 사용하는 경우 손목터널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한다. 평생 이 질환에 걸릴 확률이 50% 이상이라니, 2명 중 1명은 손목터널증후군 환자가 되는 셈이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연평균 근로 시간은 2163시간. OECD 34개 국가 중 2위(1위는 멕시코 2237시간, OECD 평균 1770시간). 회사에서의 노동이 손목터널증후군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장시간 노동이 손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줄 리는 없다.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칭을 하는 게 중요하다지만, 직원 휴게실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고, 쉬는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회사가 태반인 한국에서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손목이 안 아픈 마우스 없을까요?''전 손가락 통증이 심한데 어떤 걸 써야 할까요?''이제 왼손을 써야 하나봐요.'한국의 직장인들은 오늘도 '안 아픈 마우스'를 찾아 방황 중이다. 나 역시 '마우스 돌려 쓰기'를 해서라도 이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쓴다는 마우스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작업의 도구' 하나가 바뀐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작업의 환경'이다.
지난 2008년 서울에서는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한국산업안전공단(KOSHA)이 공동 개최한 제18회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이 자리에서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근로자의 기본적인 인권'이라고 인정했다. 늘 그렇듯, 남은 것은 실행이다.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의 손목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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