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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FC 헝그리 일레븐 이미지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KBS 예능프로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 이미지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KBS 예능프로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 ⓒ KBS

요즘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란 TV프로가 한창 인기다. 축구를 하고 싶어도, 함께 뛰어줄 동료나 팀조차 없어 방황하는, 그야말로 절망의 끝자락에 선 젊은이들이 꿈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한때 축구유망주로 소위 잘나가던 선수들이 좌절의 쓰라린 고배를 마신 뒤 패자부활전을 발판 삼아 새로운 희망에 도전하고 땀 흘리는 모습은 기성세대에겐 지난날의 삶을 회상케 하고,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감동과 진한 여운을 안겨준다.

하지만 TV 속 화면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나마 선택받은 운 좋은 선수들일 수도 있다. 그저 축구가 좋아, 오직 그라운드를 뛸 기회를 다시 얻고자,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재도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듯하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이 국내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캄보디아 프리미어리그 프놈펜 크라운 FC에 입단한 백용선(28) 선수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금년 상반기까지 태국 프로리그에 2년 반 정도 생활했다. 가장 최근까지 뛴 팀은 태국 2부 리그격에 해당되는 디비전 1 리그 산하 수코타이 FC였다.

그라운드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나날들

프놈펜 크라운 FC 백용선 선수 태국리그생활을 접고 최근 캄보디아 프로리그팀에 입단한 K리그 출신 백용선 선수.
프놈펜 크라운 FC 백용선 선수태국리그생활을 접고 최근 캄보디아 프로리그팀에 입단한 K리그 출신 백용선 선수. ⓒ 박정연

백 선수는 청소년시절 국가대표를 꿈 꾼 실력있는 유망주였다. 그는 15세 이하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태극 마크를 단 적도 있다. 축구 명문 풍생고를 거쳐 전주대학교에 입학, 2008년 대학 U리그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2009년 드래프트를 거쳐 K리그 강원FC에 입단했다.

이후 프로축구선수로서 자신의 꿈을 펼칠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시작부터 주전경쟁에서 밀린 그에게는 제대로 뛰어볼 기회조차 주어주지 않았다. 그라운드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K리그 선수로서의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1년만에 선수단 재정비과정에서 방출되는 좌절의 뼈아픈 순간을 맛봐야 했다. 그 후 2,3년 동안은 소속팀이 없어 축구를 포기할까 고민해야 할 만큼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2012년, 태국리그로의 진출이 성사된 것이다. 백 선수는 중앙수비수로 활약하며 당시 2부리그 팀이었던 자신의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공헌했다. 수비수임에도 시즌 3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불운은 그림자처럼 그를 계속 따라다녔다. 새 팀에 적응하기도 전에 세 번이나 팀을 옮겨야만 했다. 때론 포지션경쟁에서 밀려 어쩔 수 없이 팀 재정비과정에서 희생양이 되기도 했지만, 감독과의 갈등 때문에 스스로 팀을 떠난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올해 캄보디아 프로축구로 이적하기로 결심했다. 에이전트를 통해 캄보디아에 새 둥지를 튼 백 선수는 지난 8월 2일(현지시각) 전년도 리그 우승팀인 프놈펜 크라운 FC와 계약했다. 등번호 5번을 달게 된 백 선수는 중앙수비수로 이번 시즌 남은 경기를 뛰기로 했다. 다만, 선수등록이 다소 늦어져 데뷔 첫 경기는 계약시점 이후 보름이나 지난 15일이 되서야 치를 수 있었다.

 지난 8월 15일 열린 캄보디아 프로리그 14라운드 경기. 첫 데뷰경기를 앞두고  교체 투입 대기중인 백용선 선수의 모습.
지난 8월 15일 열린 캄보디아 프로리그 14라운드 경기. 첫 데뷰경기를 앞두고 교체 투입 대기중인 백용선 선수의 모습. ⓒ 박정연

후반 80분 교체선수로 투입된 백 선수는 경기 후반 상대팀의 막판 파상공격을 잘 막아내며 성공적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큰 키를 활용해 골대 앞 높이 날아오는 공들도 헤딩으로 무난히 잘 처리했다. 패스와 볼 드래핑도 수준급이었다. 스위스 출신 팀 감독도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결국 현재 리그 3위를 달리고 있는 타이거 FC와의 이날 경기는 0-0무승부로 끝났다. 이날 경기를 참관한 캄보디아 축구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 한국인 이태훈 감독도 백 선수를 찾아 격려했다.

캄보디아 프로축구 수준이 태국과 비교해 어떤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해 백 선수는 "예상했던 것보다 잘하는 것 같지만, 한 번 해볼 만한 것 같다"며 특유의 미소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동남아 문화도 익숙한 만큼 팀에 잘 적응하리란 기대감이 들었다.

"너희들의 실력은 백지장 한 장 차이다"
현재 캄보디아 1부 리그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은 모두 4명이다. 백 선수를 포함해 김정호, 김도훈, 박정 선수 등이 있다. 그중 프놈펜 크라운 FC에서 ARMY FC로 이적한 김정호 선수만 2년차며,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금년 시즌중 입단했다.

용병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선수나 일본 출신 용병들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숫자가 적다. 하지만 이들 선수 모두 성실하고 실력이 좋아 구단들은 한국선수들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 소속팀 프놈펜 크라운 FC에서 ARMY FC로 최근 이적한 공격수 김정호 선수는 출전 2경기 만에 3골을 몰아넣으며 팀 주전으로 확실히 입지를 굳힌 상태며, 또 다른 K리거 출신 김도훈 선수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고 있다. 박정 선수 역시 빠른 돌파력에 감각적인 플레이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모두 축구인생에서 큰 좌절을 맛 본 선수들로 새로운 희망을 품고 도전하고 있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다.

 캄보디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한국인 이태훈 감독(오른쪽)이 최근 캄보디아 프로리그 경기장을 찾아 최근 입단한 백용선 선수(프놈펜 크라운 FC)를 격려했다.
캄보디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한국인 이태훈 감독(오른쪽)이 최근 캄보디아 프로리그 경기장을 찾아 최근 입단한 백용선 선수(프놈펜 크라운 FC)를 격려했다. ⓒ 박정연

불현듯, 2002 월드컵 4강 주역이자 현 청춘 FC 안정환 감독이 훈련중인 선수들을 향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너희들의 실력은 백지장 한 장 차이다." 자신감을 잃은 선수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는 조언이자 메시지로 들린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수로서의 재능과 기량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경기 외적인 변수와 운이 따르지 않아 선수로서 재능과 꿈을 펼치지 못하고 날개를 꺾어야 하는 선수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축구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축구선수들 중에는 실력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변수로 인해 선수로서의 생명이 끊긴 경우도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광운대 축구선수였던 유니온 축구교실 김재희 감독(27)도 선수시절, 직간접적으로 그런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함께 운동한 동료선수들 중에도 단 한 번 찾아온 기회를 잡지 못하거나, 결정적인 순간 찾아온 부상 때문에 선수생활을 포기한 경우도 많았지만, 소속팀 감독과의 갈등, 학연, 금품이 오가는 비리부정, 에이전트를 잘못 만나거나, 팀내 파벌싸움의 희생양이 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로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대학입학이나 프로구단 입단시 금품이 오가는 등 비리가 많이 근절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축구선수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아주 특출한 천부적 재능이 없다면, 집안에 어느 정도 돈도 있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한국 축구계의 현실이에요."

꿈을 접기에는 너무나 젊은 청춘,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에 결국 그 꿈의 날개를 접어야 했던 그들이지만, 지금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은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홀홀 단신 맨몸으로 먼 타국땅까지 와서 또 한번 패자부활전에 나서는 용기있는 선수들이기에 그들의 열정과 도전이 더욱 값지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그들이 새로운 도전에 당당히 맞서 부디 승리해주길 바란다.


#캄보디아#백용선 선수#김정호 선수#캄보디아 프로축구#청춘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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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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