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꽃꽂이나 화분으로 집을 장식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게으르게 살고 싶은 것이 으뜸 된 이유입니다. 매일 물을 주고 추위와 더위를 가려 옮겨 놓아가며 자리를 보살펴 주어야 하니 여간 노동이 아닙니다.
둘째는 생명체를 채취하거나 잘라서 완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불편함 때문입니다.
모티프원(기자가 운영하는 창작 스튜디오)의 정원도 게으름이 그대로 반영되어있습니다. 각자의 세력다툼에 맡겨진 정원은 11년 전 모티프원의 완공 직후에 심었던 잔디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그 자리에 갖은 잡초들이 주인의 직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회양목을 몰래 따라왔던 은사시나무가 현재 모티프원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로 자랐고 그 2세들이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이제 정원은 숲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모티프원에서 꽃꽂이 대신하는 것은 한살이를 누리고 생명을 다한 마른 진달래가지나 갈대줄기 같은 것을 돌보는 일입니다. 화분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제게 온 것들입니다.
저와 동행이 되었으니 돌볼 수밖에 없습니다. 화분 속 화초가 생을 마쳐도 때로는 화분의 토기분을 그대로 두기도 하는데 그 빈 화분에도 물을 주곤 합니다. 모르는 사이에 날아든 씨앗이 그 화분 속 흙에서 움을 티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아해서 6년째 모티프원의 1층 거실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무궁화입니다. 작은 화분 속에서 직선으로 자라던 줄기는 더 이상 키를 키우는 것을 멈추고 푸른 잎으로 제게 소박한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 무궁화 나무가 어제 아침(8월 28일) 저를 덴겁하게 만들었습니다. 꽃을 한 송이 피운 것입니다. 꽃의 크기는 큰 나무의 그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가는 외줄기 끝에 달린 큰 꽃은 자신도 무궁화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애타는 부르짖음 같았습니다.
화분을 정원으로 옮겼습니다. 실내가 아닌 곳에서 빛과 바람을 느끼고 벌과 몸을 섞을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미 무궁화 나무를 바라보며 여린 샛바람에 몸을 맡긴 무궁화는 너울너울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바깥 잠을 잔 무궁화는 아직 해가 돋지 않은 아침이라 그런지 지난밤에 닫은 꽃잎을 열지 않았습니다. 너무 일찍 방문한 부지런한 벌이 꽃잎을 몇 바퀴 돌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