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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획하여 인터뷰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 기자말

경상북도 구미시, 항상 분주한 서울역에 비해 비교적 한산한 구미역 광장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검은 조끼에 빨강 머리띠를 두르고 "비정규직 철폐", "아사히 글라스 문자 한 통 해고는 부당하다"를 외치며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사람들, 아사히 글라스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지난 6월 30일 자정 아사히 글라스는 문자 한 통으로 170명에 이르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9년간 한 번도 없었던 전기 공사를 한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회사에 나오지 못하게 한 후, 한 번에 그 많은 인원을 해고했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밖으로 나앉게 된 것일까

우리는 이를 듣기위해 지난 8월 아사히 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조합 노조위원장 차헌호씨를 만났다.

"일방적인 해고 문자 통보, 기가 막힌 상황이죠"
▲ 인터뷰 중인 차헌호 노조위원장 "일방적인 해고 문자 통보, 기가 막힌 상황이죠"
ⓒ 전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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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명 중 138명이 노조 가입, 놀라웠다"

- 노조를 결성하시기 전에 해고를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사히 글라스 하청기업을 6년을 다녔어요. 6년 동안 최저임금만 받고 다녔어요. 그게 맞는 줄 알았지. 구미공단 전체에서 그렇게 준다는데 우리 같은 비정규직이 무슨 말을 하겠어요. 어린 관리자가 막 대하는 것도, 고문관 조끼를 입는 것도, 노동자 중에 경조사가 있으면 자의없이 회사에서 돈을 걷어서 내는 것도 다 참으면서 회사를 다녔죠. 그렇게 부당대우를 받으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가 정규직에게 자리를 준다는 말로 16명을 권고사직 시켰죠. 그전에도 이런 일(권고사직)이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16명씩이나 한꺼번에 나가라고 한 건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일단 생각해 보겠다 하고 노무사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듣고 보니까 합법적인 절차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감을 얻고 처음으로 12명이 권고사직 안 받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회사의 반응이 어땠나요?
"회사 이사와 일주일동안 개별적으로 면담을 가졌어요. 근데 이 이사가 면담하면서 어떤 사람한테는 좀 세게 '나가라. 너 정리해고 당하면 큰 일 난다.' 이러고 또 어떤 사람한테는 '나가고 좀 지나면 1순위로 넣어줄게' 이런식으로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한거예요. 그런데 이런 내용들을 다 같이 공유하면서 듣고 이사가 하는 말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니 12명 모두 화가 났죠. 한마디로 놀아났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제안들도 다 거부를 했어요. 그랬더니 2, 3일 후에 회사가 기본급을 2배로 올려서 권고사직을 다시 했어요.(원래는 기본급 100%에 실업급여)"

- 거부를 하니까 오히려 대우가 좋아졌군요?
"네 그렇죠. 근데 실제로 9년 동안 권고사직을 받으면 모두 바로 나갔기 때문에 한 번도 돈을 더 주는 이런 경우가 없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역효과가 났어요. '아, 같이 목소리를 냈더니 돈을 더 주는구나!?' '오 이게 희한하다 맨날 당하고 살다가 우리가 버티니까 기본급을 200%를 준다. 좋다.' 이렇게 된거죠. 그래서 우리 12명이 한 명도 안 떨어지고 더 똘똘 뭉쳤어요.

이렇게 이사가 정리를 잘 못하고 우리가 더 뭉치니까 이번에는 사장이 면담을 요청했어요. 6년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장을 그 때 처음 봤어요. 사장이 만나서 하는 얘기가 '정리해고는 전달이 잘못되었다. 이사가 잘못 전달했다.' 이런식으로 말을 했어요. 이사도 거기서 사과는 했어요. 그러고 사장은 전환배치를 해야 한대요. 우리는 원래 낮에만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이 일은 정규직에게 줘야하고 3교대인 다른 일로 전환배치를 당한 거죠. 그런데 그 일은 사람을 상시 모집하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어요."

- 그럼 일단 전환배치를 받고 일은 계속 하실 수 있었군요?
"네 그렇죠. 그런데 그 뒤에 숨은 의도가 있었어요. 배치를 받은 곳이 3교대 근무인데 그 근무가 보통 10명중 6,7명이 일주일 안에 그만둘 만큼 힘든 일이었어요. 회사에서는 우리 스스로 그만두게 하겠다. 그런 의도로 보낸 것이죠. 처음으로 회사에게 덤빈 사람들인데 회사가 가만히 둘리가 없잖아요. 전환배치는 일방적인 정리해고같이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우리가 계속 버티면 업무 불이행으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결국에는 전환배치를 받았어요. 이때 8명이 그냥 권고사직을 받아들이고 남은 4명이 '어차피 우리는 회사에 찍혔고 그만둘 수는 없다. 전환배치 받고 노조를 만들어서 좋은 환경으로 한번 만들어보자.' 이런 분위기를 형성했어요."

-그 때가 노조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겠군요.
"네. 4명이서 앞에 있었던 과정과 내용을 글로도 쓰고 교대 시간에 사람들을 계속 만나 이야기하면서 3교대 사람들한테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많이 알렸죠. 그랬더니 함께 움직일 중심적인 사람들도 생기고 조금씩 형태를 갖춰나갔죠. 회사도 노조를 만들 것 같다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저랑 다른 한명을 외부 다른 회사로 전환배치를 또 시켜버리면서 막으려고 했지만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서 거부를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노조가 결국 설립이 됐어요. 그리고는 2주 만에 노조가입 대상자 168명 중에 138명이 가입을 했어요. 나머지 30명중에서도 신입사원(수습기간이니까 노조를 하면 채용될 확률이 굉장히 떨어짐) 10명 정도를 제외하면 정말 많은 수가 가입을 한 거죠. 거의 뭐 직책을 가진 사람, 관리자들하고 끈끈한 관계가 형성된 사람 빼고는 거의 다 가입 한 거죠."

-이렇게 단 시간에 많은 인원이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인데요. 위원장님도 노조 가입률에 좀 놀라지 않으셨나요?
"네. 모두가 정말 깜짝 놀랐죠. 한 번에 이정도로 많은 인원이 가입할 줄 몰랐거든요. 덕분에 간부도 꾸리고 대의원도 구성하고 해서 미팅시간에 구호도 외치고 전달사항도 주고 하면서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GTS(하청업체)랑 교섭도 했어요. 작업복이 원래는 땀도 흡수 안 되는 안 좋은 거였는데 교섭을 통해서 좋은 작업복 샘플도 받아 놓고 임금도 5580원 최저시급을 받다가 8000원을 요구했어요. 이런식으로 교섭을 3차례 진행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갑자기 전기공사를 한다고 168명이 일하는 우리 부서 전체에 쉬어라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구미시에 아사히글라스 대량해고 사태 해결를 촉구하고 있다.
▲ 발언하는 차헌호 노조위원장 구미시에 아사히글라스 대량해고 사태 해결를 촉구하고 있다.
ⓒ 전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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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공사 이용, 문자 한통으로 다 잘라버렸다"

-그러면 노조로 인해 휴식까지 받은 건가요?
"저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하루를 쉬었죠. 그런데 7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 12시에 계약해지 문자가 왔어요. 진짜 올게 온 거죠. 전기 공사 하루를 이용해가지고 6년 동안 일한 노동자들을 문자 한 통으로 정말 다 잘라버린 거예요. 문자 한 통으로 계약 해지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이런 계약 해지는 엄연히 불법인데도 회사는 7월 1일부터 바로 출입을 통제했어요.

저희도 회의 끝에 정문에 농성장을 차리면서 바로 대응했죠. 그런데 원청이 계약해지를 한 것에 맞춰서 하청업체는 희망퇴직을 받았어요. 희망퇴직 금액은 많게는 700만원까지 받았어요. 권고사직 할 때 주던 기본금에 실업급여를 훨씬 웃도는 금액이죠. 그렇게 희망퇴직 조건이 혹할 만하다보니 많은 조합원이 나가고 50명만 남아요."

-처음보다 좋은 조건의 희망퇴직이 있었는데 거부하고 남으신 이유가 있나요?
"실제로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데 옆 공장을 가도 최저시급이에요. 어딜 가든 다 똑같아서 사실 이 공장에서 죽어라 싸울 이유가 없기도 하죠.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공장을 가도 똑같으니까 여기서 어떻게든 바꿔봐야겠다 이런 심정인거죠. 이렇게 남은 사람들은 그래도 오랫동안 일했는데 문자 한통으로 해고당하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구미시와 아사히 글라스가 체결한 투자양해각서 였는데, 이 각서 내용이 고용창출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대가로 50년간 12만평의 공장부지 무상임대, 5년간 국세 전액감면 그리고 15년간 지방세 감면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이런 혜택들을 등에 업고 연매출 1조까지 올리는 회사가 아사히글라스였어요. 그런데도 회사 노동자들에게는 9년간 최저임금만 주고, 문자 한통으로 해고를 하고. 이런 상황들을 정리해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이 상황을 꼭 바꿔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죠."

- 구미시에서 10년 만에 하청업체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구미시나 노동부에서의 반응은 어땠나요?
"노동부는 하청업체 사장을 불러서 폐업을 빨리하라고 했고, 구미시는 농성장을 찾아와 철거하라는 말만 합니다. 모두가 노조를 정리하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이가 없는 상황이죠."

- 힘든 환경에서 투쟁하시는데 앞으로의 계획이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나요?
"어쨌든 구미시가 공단지역으로 되어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엄청 많아요. 소수 몇 개의 정규직들을 빼고는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이 되었고요. 그래서 더욱더 이곳 구미가 노동조합이 절실히 필요한 지역입니다. 실제로 서명운동을 진행하면서 구미시민들이 우리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희가 승리하고 자리 잡아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발판과 희망이 되고 싶어요.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죠.

저희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부터는 퇴근할 때 얼굴빛부터가 달라졌어요. 우리에게 자신감이 생겼고 노동조합을 통해 제가 몰랐던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자부심도 생겨서 그런 거예요. 우리가 느낀 자부심과 자신감을 다른 노동자들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꼭 이겨서 좋은 선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람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재됩니다.



태그:#사람들, #아사히글라스, #차헌호, #구미, #하청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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