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충청북도 옥천군에 있는 환산(고리산) 산행을 다녀왔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옥천 나들목을 나오는 순간부터, 정지용 시인의 <향수의 고장>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표지판에서도 정지용 생가와 정지용 문학관을 표시한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일본 강점기에 시인 정지용은 우리의 토속어로 한민족의 정서를 나타내는 시를 다수 발표했다. 또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과 같은 시인들을 발굴했다. 정지용은 6.25전쟁 당시 납북 당한다.
지금에서야 지방자치단체가 정지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만, 1988년 해금되기까지는 정지용의 문학작품은 우리 사회에서 금기였다. 환산 등산로를 찾아가는 길에 둘러본 옥천은 <향수(鄕愁)>에서 묘사된 공간처럼 산수가 수려했다.
옥천군 군북면에 위치한 환산(環山)을 지역민들은 예전부터 고리산으로 부른다. 환산은 고리처럼 연결된 산이다. 환산은 6개의 큰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환산은 대전과 보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환산을 비롯한 근처에 고리성, 관산성, 삼년산성과 같은 성을 둘러싸고 백제와 신라군이 치열하게 다투었다.
특히 환산은 백제 성왕의 원한이 스며든 산이다. 환산의 봉우리마다 백제의 왕자 부여창(훗날 백제 위덕왕)이 만든 산성이 현재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부여창의 아버지인 성왕은 무령왕의 아들이다. 성왕은 백제의 수도를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천도했다.
성왕은 백제의 중흥을 이끌어가면서 왜, 가야, 신라와 연대하여 당시 강국인 고구려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신라는 백제가 고구려와 싸우는 사이, 나제동맹(433년~553년)을 어기고 한강유역을 백제 몰래 차지했다. 그런데도 성왕은 자신의 딸과 신라 진흥왕과 혼인 관계를 맺는 유화책을 썼다.
하지만 결국에는 554년 백제와 신라는 현재의 옥천과 보은 일대에서 큰 전투를 치른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성왕이 백제군을 위로하고자 수십명의 호위병만 이끌고 관산성을 가다가, 신라군의 매복에 걸려 붙잡힌다.
당시 신라군은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에서 백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성왕은 현재의 옥천지역에서 신라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후 660년 백제가 패망할 때까지 백제와 신라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한다.
한편 성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신라 진흥왕은 신라의 중흥을 이끈다. 진흥왕은 백제의 영토인 한강 중류지대를 차지하고, 고구려 땅인 함주·이원 근방까지 정복한다. 이를 기념하고자 진흥왕이 순시하는 곳마다 기념비를 세우게 하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진흥왕 순수비로는 경남에 있는 창녕비, 서울에 있는 북한산비, 함경남도에 있는 황초령비, 마운령비가 있다. 옥천에서 벌어진 관산성 전투가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환산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성이 만들어져있다. 환산의 봉우리마다 성을 쌓아서 군사적 요충지로 삼았다. 환산의 제1보루에는 산불감시대가 있으며, 돌탑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환산의 제3보루는 조선시대에는 봉수대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 봉화길은 경남 남해-박달라산(영동)-월이산(옥천)-환산-계족산(대전)-충주-서울(남산)으로 이어졌다. 봉수는 국경과 해안지방에서 외적의 동향을 살펴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봉수길을 따라 중앙으로 알렸다.
환산의 제4보루에서는 부소담악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환산의 제5보루가 환산에서 가장 높은 정상이다. 해발 581m 높이다. 환산의 정상에서 대청호 쪽으로 내려오면 환산에서 바라보던 부소담악을 직접 다녀올 수 있다. 부소담악은 700m정도로 뻗은 반도형 암벽이다.
정지용 시인이 지은 <향수>에 나오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의 배경이다.
환산을 산행하다보면 봉우리마다 산성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1500년전 신라와 백제군이 서로 환산의 봉우리를 차지하고자 다투던 장면을 상상하면, 다시금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경수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hunlaw.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