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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포럼(공동이사장: 임동원, 백낙청)이 통일외교 분야 시니어들의 글을 이어서 싣는 <한평논단>을 발행합니다. 2주에 한 차례씩 올리는 <한평논단>의 글은 일반 칼럼보다 조금 길고 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게 될 것입니다. 필진은 평소 언론에 글을 잘 발표하지 않는 통일외교분야 전직 관료, 학자, 시민활동가들로 구성합니다. 필자 정현백은 우리시대의 대표적 진보 사학자이자 시민운동가이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바랍니다....기자말

올해 후반기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뜨거운 이슈였다. 이를 둘러싼 공방은 국제적으로 한국사회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 낯 뜨거운 일이었다. '한국 역사가의 90%가 좌파'라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나 '학생들의 99%가 좌파 역사교과서를 쓰고 있다'는 총리의 주장에 대해 나는 분노를 넘어서 이들이 안쓰럽기까지 하였다.

주변에서 만나는 국내 거주 외국 재단의 관계자나 외교관들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와 논거에 대해 거의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이들의 반응이나 뉴욕 타임스를 위시한 해외언론들의 보도내용을 접하면서, 나는 한국의 대통령이야말로 우리의 외교적 공신력을 깎아내리는 핵심인물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런 한심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분단시대 서독의 역사교육은 많은 성찰을 제공한다.  

지난 11월 20일 서울 중구 파이낸셜센터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와 노동개악 저지를 주장하며 연가투쟁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11월 20일 서울 중구 파이낸셜센터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와 노동개악 저지를 주장하며 연가투쟁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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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역사교육의 철처함

분단시대 서독의 역사교육 정책을 들여다보면, 서독 정부가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게 된다. 학생들은 6학년에서 13학년 사이에 매주 2시간씩 역사수업을 받는다. 그러나 상급반에 이르면, 학생들은 스스로 주당 6시간 혹은 2시간의 역사수업 유형을 선택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교과서가 무상으로 지급된다. '역사세계지'라는 명칭을 지닌 교과서를 예로 들면, 우선 5학년(김나지움, 즉 인문계 고교 1학년에 해당)부터 10학년까지 사이에 학생들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3권의 교과서, 3권의 사료집, 6권의 연습용 부도, 3권의 자습서로 공부를 한다. 11-13학년 사이에는 총 10권의 주제별 도서가 지급된다.

단 3년 동안 10개 주제를 모두 배울 수는 없으므로, 학생과 교사의 토론을 통해 그 주제들과 교과서들을 선택한다. 이 교과서는 대략 80~100쪽 정도의 두께이다. 프랑스혁명, 민족주의,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나치즘, 제국주의 등의 10개 주제로 학생들은 역사수업에 참여한다.

역사교육의 철저함은 교사양성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제도가 바뀌었지만, 통일 이전까지 서독에서는 석사학위를 따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생의 평균 수학연도는 6년이었다. 교사를 지망하는 학생의 경우, 거의 꼬박 1년을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해야 석사논문을 완성할 수 있다. 석사논문이 끝나면, 제1차 국가고시는 2개의 복수전공 과목과 교육학에 대한 국가고시를 필기시험으로 본다. 과목당 4시간씩 주어지는 시험에서 학생들은 평균 20장 정도의 시험답안지를 낸다.

그 다음으로 주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과 주심, 부심 교수들 앞에서 30분간 구두시험을 보게 된다. 이를 통해서 완벽하게 예비교사들의 지식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1차 국가시험이 끝나면, 교사 지망 학생들은 2년간 교생실습을 해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은 주 정부가 사법연수원과 마찬가지로 급여를 지급한다. 보통 중고 자동차를 굴리면서, 작은 아파트에 살 정도의 급여가 나온다.

이렇게 2년간의 교생실습이 끝나고, 2차 국가고시를 합격해야 교사가 될 수 있다. 독일의 교사양성제도와 교과서 정책을 보면, 국가가 역사교육에 얼마나 높은 비중을 두고 있는가를 체감할 수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독일역사학대회나 철학자대회에는 대통령이나 수상이 꼭 참여하여 축사를 해주는 것도 독일의 정치전통이다. 인문학에 대한 이런 사회적 존중이 부러울 뿐만 아니라 '국정화'를 주장하는 우리 정부가 이 만큼 인문학을 대우해 줬는지도 돌아볼 일이다.

서독의 '역사적 평화교육' 탄생

위에서 언급한 독일 역사교육이 지닌 강점 외에도, 역사교육학계에서 진행된 치열한 논쟁과 성찰도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에 족하다. 나치 학살과 독일 국민의 역사적 책임 문제나 '독일사의 특수성'을 둘러싼 논쟁은 이미 우리 사회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지면을 통해서는 서독 역사교육학계에서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역사적 평화교육(Historische Friedensforschung)'을 소개하고자 한다.

평화운동이 정점에 도달하였던 80년대 초에 평화연구를 역사교육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역사교육학자들은 평화교육의 요구에 잘 부응할 수 있는 과목이 역사라고 생각하였고, 어떻게 역사교육과 평화교육이 만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다.

요한 갈퉁의 평화연구, 특히 그가 제시한 '적극적인 평화' 개념에 공감하였던 아네테 쿤(Anette Kuhn)과 같은 역사가들은 그간의 역사수업에서 남·북간, 다시 말해 선진국과 제3세계간의 갈등문제, 제3세계와 식민지의 역사 및 유럽 제국주의가 거의 취급되지 않았음을 비판하였다. 마찬가지로 군산복합체나 평화운동에 대해서도 거의 역사수업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수업에서 평화실현을 위한 개인적, 집단적 노력을 총체적으로 가르칠 것을 제안하였다.

'혁명의 역사'도 가르쳤던 서독

서독에서 진행된 역사적 평화교육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물론 다양한 입장이 있었다. 조금 온건한 학자들은 역사수업에서 전쟁과 평화의 변천, 국제정치의 구조변화, 평화체결과 평화질서에 대한 분석 혹은 평화 유지를 위한 여러 노력들을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그들은 전쟁의 원인과 목표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의 소개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네테 쿤과 같은 보다 비판적인 역사가들은 더 나아가 '평화운동의 역사', 동·서 냉전의 뿌리', '혁명의 역사'도 학습내용으로 넣을 것을 제안했다. 또한 평화를 실천하는 행위의 일환으로 평화와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을 구명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점을 그녀는 강조한다. 또한 이런 입장에서 그녀는 현실과 직결된 문제로 독일연방군과 안보정책 혹은 서독의 병역거부운동과 대체봉사문제도 역사수업에서 다루려 하였다.

이와 같은 비판적 역사적 평화교육은 다양한 역사수업의 학습내용이나 수업모델로 나타났다. 역사교육 학술지에 실린 이런 모형을 중심으로 교사들은 수업에서 역사적 평화교육을 실행에 옮겼다. 이런 시도들은 통일 이후 독일 사회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라크전쟁이 발발하기 하루 전인 2003년 3월 19일, 인터넷에 올린 한 작은 단체의 반전데모 제안에 호응하여, 베를린에 1백 만 명의 시민이 결집하였던 시위는 독일의 수준 높은 역사교육, 혹은 역사적 평화교육의 성과가 아닐까?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현백은 우리시대의 대표적 진보 사학자이자 시민운동가이다. 성균관대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고, <참여연대> 공동대표, <민화협>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진보 평화 시민운동 리더로 활약하고 있으며, <한반도평화포럼> 에서는 이사를 맡고 있다. 독일에서 공부했고, 국내에서는 평화교육과 민주시민교육에 가장 정통한 학자이다.



태그:#국정화, #역사교육, #통일, #독일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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