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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민중총궐기 참가기①]에서 이어집니다

점심께 시청 앞 광장에 닿았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탓인지 아직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무대 위에서 리허설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광장은 카메라를 둘러맨 수많은 기자들 차지가 됐다. 촬영하기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단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는 등 나름 분주하게 움직이며 취재 경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광장에 '알 박은' 기자들 사이로 밀물처럼 인파가 몰려든 건 오후 3시가 넘어서다.

기자들의 움직임에 잠시 시선을 빼앗겨 함께 상경한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스마트폰이 있어 그들의 위치를 얼마든지 파악해 합류할 수 있었지만 대오를 벗어나 얼마간의 자유를 누리기로 했다. 시청에서 광화문 광장을 향해 가는 길, 인도의 손바닥만한 광장마다 소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어딜 가나 기자들의 카메라는 눈을 번뜩였고, 형광 조끼를 입은 취재방해감시단이 그들의 뒤를 늘 따라다녔다. 덩달아 나도 그들을 뒤따랐다.

그가 360도 회전하며 카메라에 담은 광장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 광장 한가운데를 선점한 한 카메라 기자 그가 360도 회전하며 카메라에 담은 광장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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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무엇을 찍는지, 또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는지 궁금했던 차다. 또, 그렇게 촬영한 장면들이 방송이나 인터넷에 어떻게 표현되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들이 속한 언론사가 어딘지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카메라에 라벨이 붙어 있어서다. 공중파 방송과 종편, 인터넷 언론과 외국계 언론사 등 그 수가 집회에 참가한 단체들의 깃발만큼이나 다양했다. 과문한 탓에, 그들 중엔 처음 보는 이름도 있었다.

언론사는 달라도 카메라 렌즈가 향한 곳은 대개 비슷했다. 기자들의 나이도 대개 비슷해 보였다. 소속과 상관없이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기껏해야 30대 중반 정도의 '청년'이 대부분이었고, 서로 웃으며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보는 언론사들의 상반된 시각차를 적어도 현장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같은 곳에서 번호표라도 뽑은 듯 순서를 정해 촬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언론사들의 '천양지차'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사실을 바탕으로 영상이나 기사로 작성해 내보내는 거라면, 그렇듯 다른 내용이 나올 순 없다. 애초 내보낼 영상과 기사를 만들어놓고 현장에서 취재한 것 중 그것에 부합하는 장면만 추려낸 것이거나, 아예 작정하고 사실을 왜곡한 거라 여길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이냐 왜곡이냐의 문제로 이해해야 옳지 않을까 싶다.

광장의 다양한 풍경

칼바람 몰아친 시청 건물 옥상에도 기자들의 취재 경쟁은 뜨겁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담으려는 것일까.
▲ 시청 꼭대기에도 장사진을 친 카메라들 칼바람 몰아친 시청 건물 옥상에도 기자들의 취재 경쟁은 뜨겁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담으려는 것일까.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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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현장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연인이 아닌 동지로서 함께 집회에 참가한 것이다. 추운 날씨에 어깨 서로 기대고 두 손 꼭 맞잡은 모습이 부러웠다. 머리띠에 앙증맞은 피켓을 매단 고등학생들과 무슨 관광지에 온 양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 얼떨결에 집회에 동참한 외국인들까지 어우러진 광장은 훈훈해 보였다.

광장의 훈훈한 모습은 카메라 기자들의 눈엔 잘 띄지 않는 모양이다. 기자들의 카메라를 따라다니며 이런 모습을 난 많이 봤는데.
▲ 집회에 참가한 연인의 뒷모습 광장의 훈훈한 모습은 카메라 기자들의 눈엔 잘 띄지 않는 모양이다. 기자들의 카메라를 따라다니며 이런 모습을 난 많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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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풍경은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벽에 맞선 집회 참가자들의 성난 외침과 물대포가 쏟아내는 거센 물보라에 뒤덮여 그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섣부르지만, 훈훈한 광장의 풍경이 저 앳되고 선한 카메라 기자들의 눈에 '불법과 폭력으로 얼룩진' 현장으로 비쳤을 리가 없다. 아무리 보수적인 종편 기자라도 말이다.

광화문 광장 앞은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 소리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로 뒤덮였다. '흥겨운' 트로트 음악이 연신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등의 보수 단체에서 연 맞불 집회다. 추운 날씨 탓인지 참가한 어르신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스피커의 힘을 빈 구호 소리만큼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때 길 건너편에서 열리고 있던 국정교과서 저지 네트워크 주최 길거리 특강이 음악 소리에 묻힐 정도였다.

뽕짝거리는 음악 사이로 태극기가 펄럭였고, 어김없이 '종북 세력 척결'이라는 외마디 구호가 들려왔다. 어르신들의 입에서 월드컵 때 온 국민을 한데 모은 다섯 박자의 대한민국 구호가 울려 퍼질 때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누구를 걱정해주나 싶지만, 부쩍 추워진 날씨에다 그분들이 자리한 곳이 오후 해가 빌딩 숲에 가려진 음지라서 적잖이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선지 그곳을 향하는 기자들의 발길도 뜸해 보였다.

무용지물이 된 플라스틱 차단벽

집회 참가자가 얼마 안 될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느새 시청 앞 광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더욱이 광장 가운데에 아이스 스케이트장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앉기는커녕 서 있을 공간조차 마땅치 않았다. 기자들의 카메라를 따라 여기저기 해찰하다(딴 길로 새다가) 늦은 터라 광장 안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하고 아스팔트 위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지각한 내 뒤로도 광장을 향하는 행렬은 이어졌다.

경찰이 사전에 차벽 대신 광장 주변으로 둘러친 플라스틱 차단벽은 무용지물이 됐다. 차단벽을 따라 수많은 경찰들이 '인간 띠'가 되어 폴리스라인을 그은 셈인데, 자못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광장은 이미 포화 상태가 되어 인접한 도로를 불가피하게 점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경찰은 상부의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는 '인간 띠'를 풀 수 없다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사실 차단벽을 치워달라고 요구한 건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면 넘어져 다칠 부상의 우려가 있어서다. 또, 경찰과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여하튼 차단벽을 부여잡고 있는 경찰이 되레 포위된 형국이 됐고, 집회 참가자들 가운데 경찰들이 데면데면하게 줄지어 서 있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들도 황당했는지 결국 얼마 안 있어 차단벽을 풀고 도로 바깥으로 물러섰다. 경찰이라는 조직이 아무리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집단이라지만,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자 날씨는 어둠과 함께 더욱 차가워졌고, 시청 앞 광장에서의 집회는 서둘러 끝났다. 어떻게든 추위를 견디려면 몸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집회 참가자들로 인해 광장은 이미 포화상태가 됐는데, 경찰들은 플라스틱 차단벽을 옮길 수 없다며 버텼다. 결국 줄지어선 경찰들이 집회 참가들에 의해 포위되어 고립된 형국이 연출됐다.
▲ 집회 참가자들에 의해 포위된 경찰들 밀려드는 집회 참가자들로 인해 광장은 이미 포화상태가 됐는데, 경찰들은 플라스틱 차단벽을 옮길 수 없다며 버텼다. 결국 줄지어선 경찰들이 집회 참가들에 의해 포위되어 고립된 형국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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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반, 시청 앞 광장에서 당일 밤 촛불 문화제가 열릴 대학로까지 행진이 시작되었다. 경찰이 원활한 집회와 행진을 도와줄 거란 기대는 애초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방해하려 작정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참가자가 수만 명인데, 행진이 허용된 도로는 2차선으로 제한됐다. 청계천을 따라서 걷는 길은 너무나 비좁아 고작 300m 남짓을 걷는 데 30분이나 걸렸다.

청계천을 벗어나 종로에 접어드는 광교 사거리부터 보신각에 이르는 길에서는 아예 경찰에 의해 '벌 받는' 심정이었다. 어차피 행진하는 동안에는 왕복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여전히 바깥쪽 두 개 차선만 허용하고 이따금 차량마저 통행시켜 정체 상황을 부추겼다. 그렇다고 그 추운 날 차단벽이 되어 늘어선, 아들 같은 경찰들에게 항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종로에 접어들자 행진은 한결 수월해졌지만, 이따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동차에 몸을 맡긴 몇몇 장애인들이 차량들이 오가는 도로로 내달리는 모습은 아찔했다. 그들을 제어하느라 하마터면 경찰이 차량에 부딪힐 뻔했던 일도 있었다. 사실 경찰이 오가는 차량과 행진하는 참가자들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2차선을 달리던 시내버스가 급정거하는 일도 속출했다.

차벽과 물대포가 사라진 광장, 평화로웠다

카메라 기자들의 취재 경쟁에 성직자들의 행렬에 길을 터달라는 방송이 한참 이어졌다.
▲ 기자들의 카메라가 차벽? 카메라 기자들의 취재 경쟁에 성직자들의 행렬에 길을 터달라는 방송이 한참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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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광장을 출발한 지 3시간 반 만에 대학로에 도착했다. 자동차로는 15분 남짓이면 충분한 거리다. 물론, 참가자가 워낙 많아서일 테지만, 시위 진압에만 능숙할 뿐 집회의 원활한 진행과 권리의 보장에는 서툴기만 한 경찰의 무관심 탓도 크다. 경찰이 시민들의 공감과 동의를 얻기보다 권력의 지시에만 굴종하는 행태를 버리지 못하는 한, 집회와 시위 자유의 보장이라는 헌법 정신의 구현은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차벽도, 물대포도 없이 탁 트인 밤의 대학로는 낮 시청 앞 광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이렇듯 평화로운 집회의 마무리 모습은 어색할 정도로 낯설게 느껴졌다.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즐겁게 집회가 끝나도 되는 것일까. 지금껏 집회 신고를 하면 일단 차벽부터 세우고, 강행하다 끝내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게 불변의 '집회 공식'이었다.

참가자 수가 적었던 것도 아니고, 과격한 구호가 부드러워진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단 하나, 차벽과 물대포가 사라졌다는 것뿐이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다들 무척 '낯선' 경험이었다며 한마디씩 했다. 특히 지난 1차 민중총궐기 집회 때 물대포를 '짜릿하게' 맞아봤다는 한 분은 이렇게 말했고, 다들 박수 치며 공감했다.

"평화롭고 즐거웠던 오늘 집회는 바로 병상에 누워계신 백남기 어르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야. 우리가 그분의 쾌유를 빌기 위해 이 추운 날씨에도 모인다니까 그렇게 응답해주신 거라 생각해."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2차 민중총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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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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