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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청춘은 안녕한가?

각종 시험, 스펙, 취업, 진급 등에서 1등이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경쟁사회에 놓여 경쟁에 익숙해진 대한민국의 청춘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조차 본인도 모른 채 경쟁이라는 단어에 얽매여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주위를 둘러볼 때면 경쟁 속에 치여 사는 것은 한국 사람의 '숙명'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종종 하곤 한다. 경쟁이 우리들의 숙명이라니, 뭔가 너무 답답하지 않은가?

이렇게 '숙명'처럼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또래친구들과 뛰노는 것을 포기하며 죽어라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 성공의 외길일까?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쳐주는 공부 말고도 분명 성공할 길은 많을 텐데 말이다. 그저 자식들이 남들과 다른 길로 가려고 하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대한민국 어른들의 악 세습이 아닐까?

이런 악 세습을 떨쳐내지 못하고 어른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보니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경쟁이라는 틀에 갇혀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그대들을 위한 '청춘 내비게이션'이 돼 드릴까 한다.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인데 후회하고 미련을 가지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시간 낭비다. 청춘이란 시간은 지난 일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아등바등 댈 만큼 길지 않다.

그렇다고 지난 일을 되돌아보지 말란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성찰의 자세는 꼭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실 이 글은 어느덧 훌쩍 커버린 내가 청춘시절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기록한 것이며, 그대들의 청춘은 나보다 조금은 더 편한 길로 가길 바라며 쓴 글이다.

나의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의 장래희망은 '야구선수'였다. 그때 나의 인생은 오로지 야구였다. 그게 전부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 뛰어나지 못한 소위 말해 '그저 그런 선수'였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다른 애들보다 실력이 늘지 않는 거지?"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래서 나의 학창시절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대들에게 피하라고 한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 찬 인생. 나는 그런 삶을 살아왔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지난날을 떠올려보면 그때의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떳떳함이 없었다.

그대들은 현재의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져도 감추려고 하지마라. 오히려 떳떳해져라. 당신이라는 존재는 아직 꽃을 피우는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다. 사계절의 가장 마지막인 겨울에 꽃 피우는 매화처럼. 그리고 지난 일에 미련을 가지고 뒷걸음 치지마라. 그럴 시간은 청춘이란 시간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도 없다. 그저 그대는 그대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묵묵히 앞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모죽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모죽은 대나무의 종류 중 하나다. 모죽은 씨를 뿌리고 5년 동안 작은 순이 나오는 것 말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다섯 번째 해가 끝나갈 즈음에 갑자기 하루에 60센티미터가 넘게 자라 30미터에 달하는 높이의 대나무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 모죽은 5년이라는 시간동안 성장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곧 다가올 성장을 위해 그 자리에서 열심히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당장 눈앞에 성과나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려 하지 말고, 인내의 시간을 견딜 줄 알아야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면 그대의 인생도 어느 샌가 모죽처럼 아니, 모죽보다 더 큰 성장을 하지 않을까?

내가 학창시절에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인내의 시간을 버티다가 중간에 다른 길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진학할 즈음에 야구를 그만뒀다. 그리고 야구를 그만두기까지 수많은 고민들을 했었다. 나는 정녕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야구를 그만두는 것인가? 아니면 야구를 피하기 위해 다른 길을 택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 따위의 고민들 말이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던 고민속의 결론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말에 조금 모순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야구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껴 야구를 그만뒀다. 잘못 해석하면 건방진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야구에서 '흥미를 잃어 더 이상 발전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야구를 그만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조금의 고민도 없이 "야구를 시작한 것과 그만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동안 야구를 해온 시간이 아깝지 않냐?"라는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 전혀 아깝지 않다. 이 시작과 포기가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다. 첫째, 모죽처럼 인내의 시간을 버틸 줄 알아라. 둘째, 미련하게 버티지만 말고 포기할 줄도 알아라. 인내와 포기. 이 두 가지를 적재적소에 발휘할 수 있을 때면 우리는 당당히 어른이 되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당장 눈앞에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 하지마라. 그대가 언제 성장 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포기해야겠다고 생각이 들거든 과감히 포기하라. 그리고 만약, 가야할 길을 찾았다면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끝없이 사랑하라, 그리고 느껴라

이 말은 마냥 이 사람, 저 사람을 마구잡이(?)로 만나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을 무조건 진득이 만나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그냥 아무생각 없이 아무 조건 없이 푹 빠져있어 보라는 이야기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은 다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 더 많은 것을 배운다. 헤어짐을 맞이할 즈음에는 "내가 뭘 잘 못해서 이렇게 돼버린 거지?"라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사랑의 끝자락에 서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질 때야말로 사랑에서 무언가를 배운다.

'연애를 많이 해봐야 결혼을 잘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만남과 헤어짐을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무언가'를 배우기 때문에 그렇게 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 이 '무언가'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만남과 헤어짐으로 배우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에게는 인생을 배웠고, 2학년 때 만난 친구에게는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며, 3학년 때 만난 친구는 인내심(?)을 배웠다.

나는 아직도 내게 사랑으로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진심이다. 만약 내가 그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었다면 정말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물론, 지금도 그리 뛰어나지는 못하지만). 앞에서 3학년 때 만난 친구에게 인내심을 배웠다고 말했다.

여기서 인내심은 그저 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랑 그 친구는 성격부터 성향, 연애관 등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서로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내 가치관을 조금 내려놓고 그 친구의 가치관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인내심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사랑으로 배우는 인생, 사랑, 인내심. 또 다른 무언가들. 이렇게 사랑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그대들이여, 틀에 갇힌 스펙 쌓기에만 너무 몰두하지 말고 '끝없이 사랑하라. 그리고 느껴라'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에서 자꾸 과속을 하려 한다. 성공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해 주위는 둘러보지도 않고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나 속도는 중요치 않다.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내비게이션은 운전자가 바른 길로 올곧게 가는 것을 도와준다. 그래, 내비게이션이다. 이 글도 내비게이션처럼 그대들의 청춘에서 올곧은 길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15년의 끝자락에 서있는 어느덧 훌쩍 커버린 내가 청춘의 '나' 그리고 청춘인 '그대들'에게.

덧붙이는 글 | 청춘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기억에 남는 청춘을 만들길 바란다.



#청춘#인생#가야 할 길#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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