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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88올림픽은 미지의 신세계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라 이름부터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까지… 충격 그 자체였다. 육상 트랙을 달리는 흑인 선수의 긴장된 눈빛, 평균대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활짝 펼친 백인 소녀의 가녀린 두 팔, 바깥 선을 밟지 않으려고 빨대처럼 꼿꼿하게 몸을 세운 한국 원반 선수의 버둥거리는 제자리걸음, 전파를 타고 움직이는 커다란 신세계는 쿠베르탱의 단출한 문장으로 집약될 수 있었다.

"올림픽의 목적은 참가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미국 육상선수 윌리 뱅크스(Willie Banks)가 삼단 뛰기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을 기록했을 당시 모습.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미국 육상선수 윌리 뱅크스(Willie Banks)가 삼단 뛰기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을 기록했을 당시 모습.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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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숱하게 봐왔던 이 진부한 문장이 감동의 물결로 내 심장을 덮쳐버릴 줄이야. 온몸이 비틀리고, 휘어지고, 내동댕이쳐져도 선수들은 어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건 내가 알고 있던 몸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세계였다. 온몸의 세포에서 삐질삐질 솟아나는 뜨거운 땀방울은 단 하나의 금메달로 섣불리 해석될 수 없었다. 뒹굴고 미끄러지고 솟아오른 선수들의 몸은 불가능을 향해 튀어 오르는 '도전'이었다.

한 편의 영화를 감상 하듯 나는 텔레비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카메라가 담고 있는 스팩타클한 영상을 뒤쫓아갔다. 변변한 대사 한 줄 없고 듣기 좋은 음악이 없어도, 올림픽 중계방송은 그 어떤 명화보다도 감명 깊었다.

메달의 쟁탈전에 불과하리라 여겼던 올림픽이 흐릿한 나의 정신세계에 강한 느낌표를 찍어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나의 시선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선수들의 힘없는 발길질을 더듬고 있었다. 쿠베르탱의 말은 옳았다. 시험에 나오는 단순한 명문장이 아니라 치열한 올림픽의 정신을 담아낸 문장임을 피부로 깨달았다.

내게 '우산'이란 별명을 지어준 선생님

 내 별명은 우산속에서 우산으로 바뀌었다. 국어선생님 덕분에...
 내 별명은 우산속에서 우산으로 바뀌었다. 국어선생님 덕분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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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학교에 다니면서 처음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고3의 지옥 문턱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난 의외의 순간에 진지한 결정을 내렸다. 형식적이고 딱딱했던 문장 하나가 절절하게 가슴 속을 헤집고 들어왔을 때, 어쩌면 나는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뭘 할지 막막했던 순간을 떠나보낸 후, 나는 드디어 나만의 텅 빈 여백과 마주한 셈이었다. 무엇인가 끄적여보고 싶은, 서툴게 붓질을 해서 어떤 그림이라도 완성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나의 손끝을 떨게 만들었다.

1989년 고3 새학기가 시작됐다. 쉬는 시간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향해 친구들은 외계인을 바라보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며칠 저러다 말겠지' 하는 친구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점심시간엔 책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질펀하게 수다를 떨었던 나의 입방정은 그날 이후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어느날 그런 나의 변화를 알아차린 국어 선생님은 나에게 새로운 별명을 달아줬다. 만화책을 보다 들켜버린 나는 '우산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 세 글자 중에서 한 글자를 뺀 '우산'이 나의 새 별명으로 낙점됐다.

우산 속에 숨어있기만 했던 내가 세상을 향해 활짝 우산을 펼치게 됐다는 의미였다. 세상의 그 어떤 먹구름을 향해서도 나만의 우산을 펼칠 만큼 나는 충분히 들떠 있었다. 바닥을 기어 다녔던 나의 성적표가 푸른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나의 고3 생존기는 순풍을 맞은 돛단배처럼 순항할 줄만 알았다.

'빨갱이의 꽃', 그 이름 전교조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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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올림픽의 감동이 식어가던 이듬해 봄, 꽃망울들은 요란스럽게 봉우리를 터뜨렸다. 어떤 사람들은 그 꽃을 '빨갱이의 꽃'이라고 조롱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망조가 들어 스승의 권위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고 비탄을 토로했다. 암울했던 학교의 음지에서 남몰래 숨을 틔워온 그 꽃의 이름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였다.

소문은 흉흉했다. 선생님들끼리 편이 갈라졌다느니, 교장이 사표를 쓰라고 선생님들을 협박했다느니 추측성 소문들이 봇물 터지듯 학교 담장을 넘나들었다. 선생님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한다는 둥, 학생회장이 학생회 간부들을 데리고 시위해 참여했다는 둥 들려오는 풍문은 삭막했다.

그런 이야기가 단순한 루머가 아니라는 듯 갑작스럽게 여름 방학식이 열렸다. 운동장에서 조회를 했던 평상시와는 달리 그날은 조용하게 교실에서 방학식이 거행됐다. 방학식이 끝났는데도 몇몇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빨간 글씨체가 난무한 스케치북을 들고 벌을 서듯 모두 번쩍 손을 들고 있었다.

"선생님들을 내쫓는 학교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선생님! 우리만 남겨놓고 이 학교를 떠나시면 안 됩니다."

무거운 책가방을 둘러멘 내 어깨너머로 교문 앞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이 보였다. 전경차가 학교의 담장을 둘러싼 채 외부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검은 제복을 입고 교문 앞을 막아섰던 사람들은 끝없는 말줄임표처럼 학교 담장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며칠전 국어 선생님은 칠판에 '미안합니다'라는 글귀를 적어뒀다. 커다랗게 써내려간 새하얀 글씨 앞에서 선생님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교실엔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다.

"여러분을 위해 내린 선택이 이것뿐이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문장도 힘겹게 고쳐쓰기를 해내가는 과정 없이 완성되진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혼란스럽지만, 여러분은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좋은 결과를 얻기 바랍니다. 힘든 고3의 교과지도를 다하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교실 바닥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물 자국으로 흥건하게 얼룩졌다. 어디선가 시작된 흐느낌은 슬픈 멜로디가 돼 메아리처럼 교실 밖으로 퍼져나갔다. 쫓기듯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의 바람은 단 하나였다. 행복한 교실! 그건 전교조 선생님만의 특별한 바람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그런 바람들이 법의 잣대로 가늠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마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없었다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중 한 장면.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중 한 장면.
ⓒ 이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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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조기 방학에 덩달아 마음이 술렁거렸던 내 앞으로 국어 선생님이 지나갔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졸졸 선생님을 따라갔다. 그중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전해줬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말했다.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한여름 땡볕에 달궈진 검은 그림자들이 기다란 막대기처럼 늘어져 있었다. 나의 발걸음도 그 그림자 옆을 서성거렸다.

교문 밖을 나서면 선생님은 어떻게 될까. 진심으로  지키고 싶었던 것은 학교인데, 왜 선생님은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선생님은 우리들을 향해 밝게 웃으며 두 손을 크게 흔들어줬다. 무엇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안간힘이 그 손짓 속에 녹아 있었다. 어느새 나의 두 발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나서는 그 길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도망을 치듯 교실로 뛰어갔다.

이제 무엇인가 막 시작해보려던 참이었다. 어떤 하나의 문장이 다르게 보이던 그날 이후로,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문장을 만난 것이었다. 지금 당장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될 난해한 문장 앞에서 나는 두려웠다. 내가 살아갈 세상의 진짜 모습이란 저 교문 밖의 상황이 아닐까. 이 뜨거운 여름 방학의 난기류를 뚫고 질주해야 하는 나는 대한민국의 고3이었다.

나의 고민이 길어진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일이면 학교로 나와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까먹고,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 세수를 몇 번씩 해가며 책상머리 앞에서 씨름을 벌여야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은 뻔한 고3의 여름 한 가운데에서, 지킨다는 것은 절실한 다른 무엇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음을 나는 뼛속 깊이 새겨뒀다.

쌍팔년도의 요란한 시류를 타고 불어온 '참교육'의 새 물결은 한 여름 밤의 꿈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쌍팔년도의 올림픽을 떠올린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이상한 결심을 내렸던 그 순간을 생각한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무엇인지 한 번도 헤아려본 적이 없던 나에게 '참교육'이라는 신선한 바람을 선사해준 선생님들도 떠오른다. 그때 점화됐던 나의 학구열은 지금도 나의 삶을 불태우는 원동력이다.

어느새 부모가 된 내게는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들 녀석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의 교육은 난항을 겪고 있다. 그 시절의 희망가는 여전히 희망사항으로 남아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우리의 교실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난 가끔 아들 녀석에게 자발적인 배움이 품고 있는 따뜻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녀석의 학창 시절에도 쓰나미처럼 몰려올 폭풍 감동 명장면이 등장하길 바랄 뿐이다.

그 무렵 내게 새로운 별명을 지어준 국어 선생님 덕분에 나는 세상의 어떤 장대비에도 두렵지 않을 듬직한 '우산'을 장만했다. 학생들을 격렬하게 사랑했던 선생님들의 뜨거운 가슴을 의지해 외로운 고3 시절을 잘 보냈다. 그래서 지옥의 한 철 같다던 나의 고3 생존기는 가끔 힘이 들 때마다 떠올리는 내 인생의 명장면으로 남게 됐다.


#88올림픽#전교조#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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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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