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희미하게 또렷하다- 이상옥의 디카시 <병신원단>요즘 산을 자주 찾는다. 새해에는 최소한 한 두 번은 꼭 산을 오르려고 한다. 나이가 드니, 건강에 자신이 없어서다. 시골집에서 자동차로 10분 못 가서 옥천사가 나온다. 옥천사를 두른 연화산에는 가볍게 등산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옥천사 주차장에서 오른 편으로 난 등산로가 내가 자주 이용하는 코스이다.
새해 첫날, 이 코스를 올랐다. 소로라 낙엽이 쌓여 멀리서 보면 길이 없는 것 같다. 가까이서 보면 희미하지만 길이 또렷하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것이 산길만이 아니다. 사람의 길도 뒤엉키고 혼돈스러워 보이지만 궁극에는 '죽음'에 이른다. 산길은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하산하고 또 오를 수 있지만, 인생길은 단 한 번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땀 흘리며 산길을 걷는 것은 생에 있어 즐거움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해에는 자주 산을 찾기로 다짐한 터, 지난 10일엔 마금산에 올랐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있는 마금산은 마금산 온천지역 뒤쪽 우측 방향으로 해발 280미터이다. 수 년 전 자주 찾은 등산코스여서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새롭게 정비돼 있어 더욱 정겹다.
마금산을 오르고 나서 온천욕을 하는 것은 금상첨화다. 산과 온천의 환상적인 궁합이 아닌가. 젊은 때는 몰랐는데, 사우나를 하는 게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산길을 오르며 사유하는 것이나 따뜻한 물에 온몸을 담그고 생각에 잠겨보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산을 오르며 사우나를 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희미하지만 또렷한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실존이다. 따지고 보면 역설적이지만 죽음만큼 생을 생답게 하는 건 없다. 죽음이 있어 생이 더 가치 있다는 건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미 제시한 테제다.
병신년 새해, 이 테제를 가슴에 품고 즐겨 산을 오르고 사우나를 하면서 생의 의미를 더욱 천착할 수 있으면 역시 금상첨화.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