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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6일, 일본 유바리시가 파산했다. 홋가이도 지역경제 중심축에 놓여있던 한 거대 지자체가 몰락한 것이다. 그 원인과 시사점은 무엇인가, 지난해 12월 일본 출장 중 현지에서 만난 조규형 가이드의 설명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 기자말 

 유바리 멜론 가공식품 전시장.
유바리 멜론 가공식품 전시장. ⓒ 신광태

"멜론 농사를 위한 정부 보조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보조요? 그런 제도도 있나요?"

유바리시 멜론 가공식품 판매코너에서 만난 멜론 생산팀장 사이또 간지씨는 '정부 보조'란 말이 생소하다는 듯 되물었다.

멜론 가공식품이 전시된 코너엔 수십 가지의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멜론꽃을 활용한 벌꿀과 젤리가 유명하다고 했다. '백화점 등 대형매장 납품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유바리시에서만 살 수 있다"라고 답했다. 백화점 등지의 제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희소성과 농가 자부심 고취를 위해 생산지에서만 판매한다고 했다.

유바리시에서 생산된 멜론은 고가에 팔린다. 5월 중순 첫 수확하는 멜론은 2개당 25만 원에 거래된다. 눈이 많이 내리고 여름철엔 서늘한 기후로 당도가 13브릭스가 넘기 때문이란다. 130농가에서 연간 24억 엔, 한화로 240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

"최근 전국방송을 타면서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파산한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와 일본 국민들의 냉대. 농민들이 앞장서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이유란다.

검은 진주가 애물단지로 변했다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일일 수십차레 오가던 열차도 끊겼다.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일일 수십차레 오가던 열차도 끊겼다. ⓒ 신광태

일본 홋가이도 이시카리 탄전 중심도시 유바리. 1668m의 유바리 산을 돌아 흐르는 강물은 검은색이다. 크고 작은 탄광에서 채탄 후 버려진 검은흙을 훑고 내려온 물이다. 석탄 생산에 사용했던 시설물은 사업체가 도산했음을 알리듯 흉물스럽게 나뒹굴었다.

유바리란 도시가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1888년대다. 광맥이 발견되면서 일본 최대의 석탄 생산지가 됐다. 1960년대까지 많은 탄광회사가 각축을 벌이면서 시 인구는 무려 11만6900명에 달했다. 중소기업 임직원, 농민 등 다수가 고향을 버리고 대거 유바리로 몰렸다. 몇 년 광산에서 일하면 목돈을 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내엔 유흥업소들이 들어서고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그렇게 흥했던 유바리시는 1960년 중앙정부에서 에너지 공급구조를 바꾸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석탄이 저가로 수입됐다. 난방 연료가 유류로 바뀌기 바뀐 것도 이 시기다. 소규모 탄광의 안전사고도 유바리시 경제 위축에 한몫했다. 이후 폐광이 속출하면서 유바리시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나마 1981년까지 명맥을 유지해 오던 단코키센 주식회사가 가스누출 사고로 도산하면서 1990년 유바리시에서 광업은 완전히 사라졌다.

유바리시는 탄광 때문에 탄생한 도시다. 석탄 산업이 무너지자 젊은이들은 대거 도시로 떠났고, 고령층만 남게 됐다. 일본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도시로 전락했다.

부채상환 위한 기채 반복, 결과는 참혹했다

 탄광에서 버린 사택도 시의 재정악화 원인이 됐다.
탄광에서 버린 사택도 시의 재정악화 원인이 됐다. ⓒ 신광태

탄광회사에서 광부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했던 병원, 사택 등의 시설물은 애물단지가 됐다. 이 같은 시설을 시가 떠안으면서 재정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 40억 엔의 부채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단코키센 도산으로 광산세 61억 엔 마저 받을 수 없게 됐다. 광부용 사택 5000호를 시영주택으로 전환하면서 151억 엔의 예산이 소요됐다. 유바리시에서 폐광처리 대책비로 지출한 금액이 무려 583억 엔에 달했다. 

'탄광에서 관광으로'. 이즈음에 취임한 나카다 시장이 내건 슬로건이다. 그러나 수요 예측실패, 과다투자, 방만한 경영 등 누적 적자가 쌓여감에 따라 시 재정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2001년 탄광지역 임시조치법이 효력을 잃으면서 유바리시의 재정 악화는 가중됐고 결국 2006년 6월 20일 고토시장은 재정재건단체 신청을 했다. 파산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부채 상환을 위해 기채를 해야 하는 악순환. 이 같은 문제를 숨기기 위한 결산조작. 차입금 규모는 292억 엔에 달했고, 지방채 등 채무는307억 엔에 이르렀다. 당시 유바리시 연간 재정규모가 44억 엔임을 볼 때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된 셈이다.

홋가이도에서는 유바리시 재건을 위해 360억 엔을 연 0.5%의 낮은 이자로 융자하고 중앙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지방교부세 및 교부금을 투입한다 해도 채무해결만 18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시에서 총체적 난국 극복을 위해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은 공무원 급여삭감 이다. 시장 50%, 교육장 25%, 일반 직원 15% 삭감을 시작으로 2007년도엔 시장 75%, 교육장 66%를 추가로 삭감했다. 시장 급여만 놓고 볼 때 일본 내 최저 수준이었다. 시의원도 18명에서 9명으로 공무원 수 또한 절반으로 줄였다. 하수도 사용료를 10㎡당 1470엔에서 2440엔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각종 세금을 비롯한 사용료 인상도 불가피했다

시설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주민 복지와 밀접한 의료 기관을 초등학교에서 운영토록 하고 도서관 업무를 복지센터로 통합했다.

11만여 명이던 인구는 9000여 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젊은이들은 생계를 위해 도시로 떠났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은 노인층.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은 일본 최고 수준인 43%를 보였다. 

 썰렁한 유바리시 풍경
썰렁한 유바리시 풍경 ⓒ 신광태

유바리시에 남아있는 유일한 산업은 멜론 중심의 농업과 석탄 역사를 테마로 한 관광산업이 다. 파산사례 답사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찾는 공무원 및 CEO를 대상으로 일정금액을 받는 웃지 못 할 현상도 발생한단다.

유바리시의 몰락이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일일까? 우리나라 또한 방만한 행정, 인기에 영합한 과다한 행사, 무분별한 투자 등으로 위기에 처했던 지자체 사례도 있었다. 한 지자체의 파산은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의 고통과 부담으로 남는다는 것을 일본 유바리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일본#유바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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