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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무슨 겨울이 이렇게 안 추워?'라는 말을 하늘이 들은 모양입니다. '오냐, 어디 동장군 맛 좀 봐라' 하는 식으로 영하 18도까지 내려가는 한파가 일어났습니다. 역시 겨울은 추운 계절입니다. 따뜻함이 간절해지는 계절이죠.

오늘은 추운 날씨에 잘 맞는 따뜻한 음식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특히 서울 신촌을 드나드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먹어봤을, '아, 그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음식입니다. 수십 년간 대학생들과 직장인들, 주머니 가벼운 이들이 속을 달랬던 음식. 바로 '최루탄 해장라면'입니다.

신촌 현대백화점 골목으로 들어서면 음식과 술, 담배를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얼핏 보면 동네 담배가게 같지만 사실 그곳이 거의 40년을 신촌에서 버텼던, '해장라면'을 파는 바로 그 집입니다.

술과 안주가 메뉴판에 적혀있지만 이 곳에 자리를 잡는 이들은 꼭 해장라면을 찾습니다. 이 해장라면의 특징은 '맵다'는 겁니다. '최루탄 해장라면. 괜히 겁도 납니다. 근데 그 매운 음식으로 해장을 한다고요? 의아해 할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칼칼한 청양고추가 라면과 잘 어울리네요

 수십년째 신촌을 지킨 '최루탄 해장라면'
수십년째 신촌을 지킨 '최루탄 해장라면' ⓒ 임동현

해장라면은 '매운맛 라면'에 송송 썬 청양고추와 콩나물, 김치, 바지락을 넣어 끓인 라면입니다. 자리에 앉으면 나오는 김치와 단무지를 반찬으로 먹습니다. 맛 조절도 가능해서 '덜 맵게 해달라'고 주문하면 청양고추 양을 줄여서 나옵니다.

매운 음식에 크게 자신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평소 '덜 맵게 해달'라고 주문했는데 오늘은 그냥 평상시 해장라면을 먹어보기로 합니다. 매운 맛이 나긴 했지만 속이 쓰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맛이 시원합니다.

청양고추는 라면을 맵게 하기보다는 칼칼한 맛을 내면서 라면스프가 만들지 못한 자연스런 칼칼함을 돋웁니다. 여기에 콩나물의 씹히는 맛 또한 일품이죠. 김치를 얹어서 먹고 바지락을 건져 먹고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습니다.

이곳은 과거 신촌 대학생들의 아지트로 불린 곳이랍니다. 민주화의 열망이 간절했던 70, 80년대 대학생들이 이곳에서 술을 마시며 토론을 하고 민주주의를 갈망했죠. 지금은 작고하신 이 집 사장님은 데모하던 대학생들을 숨겨주기도 하고 잠을 재우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이곳이 '24시간 영업 중'이 됐다고 전해집니다.

 라면은 역시 김치가 있어야 좋지요
라면은 역시 김치가 있어야 좋지요 ⓒ 임동현

최루탄 맡으며 민주주의 외친 이들의 아지트

이 라면이 '최루탄 해장라면'이 된 것도 물론 매운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80년대 데모장에서 어김없이 터지던 최루탄을 갖다붙인 풍자의 의미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낮에 최루탄 가스를 맡아가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이들이 밤에는 소주를 마시며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을 하고, '최루탄 해장라면'으로 쓰린 속을 달래며 민주화 된 대한민국을 꿈꿨겠지요.

꼭 민주주의를 외쳤던 이들만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촌에서 청춘의 추억을 지녔던 직장인들, 이곳을 기억하는 동네 사람들, 낮술 한 잔이 그리운 어르신들 모두 이곳을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학생들 혹은 젊은 손님들이 오면 '이모님'은 이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고 공기밥이 혹시 필요하냐고 묻기도 합니다. 라면을 끓이느라 바쁜 가운데도 김치나 단무지 더 달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직접 더 담아주십니다.

 해장라면에 든 바지락
해장라면에 든 바지락 ⓒ 임동현

그랬습니다. 그것이 대학교 앞 술집의 풍경이었습니다. 학생들 주머니 사정을 잘 알기에 이모님들은 돈은 적게 받으시고 안주 양은 많이 내줍니다. 모자르면 서비스 안주를 주시거나 공기밥을 챙겨주시기도 했습니다.

간혹 학생들과 말을 섞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시면 같이 건배를 하거나 맛난 안주를 챙겨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지트가 형성이 됐고 항상 모임이나 행사는 그곳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우정이, 사랑이 꽃피고 현실에 대한 아픔과 위로가 나왔습니다.

'헬조선'이란 말 속에는 위안이 없는, 무언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없는 우리들의 답답한 마음도 담겨있는 듯합니다. 소주 한 잔과 해장라면을 먹으며 민주주의를 꿈꾸고 우정과 사랑, 현실의 아픔을 느끼던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음을 생각하면서 추운 겨울날 청양고추가 든 칼칼한 라면을 맛있게 먹어봅니다.


#신촌#최루탄#해장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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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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