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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팔순생신... 착하고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 아버지의 팔순생신... 착하고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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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아버지의 팔순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시골 부모님 집에 모처럼 모였다. 사실 온 가족이라고 말했지만, 한때는 명절이나 여름휴가 등 가족행사가 있으면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도 한데 모일 수 있었지만 세월이 갈수록 같은 날 같은 장소에 함께 모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살다보면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생긴다. 모두가 자기 삶을 지탱하며 살아가느라 공사가 다망하고 말 못할 사연들이 많다. 마침,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있는 막내 여동생이 일이 있어 한국에 들어와 있어 참석했지만 또 먼 이국땅에 떨어져 있는 여동생이며 언니는 이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모처럼 조용하던 시골집이 시끌벅적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하고 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눴다. 올해 팔순을 맞은 아버지. 젊은 날 건강하셨던 아버지, 흰머리라고는 하나도 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아버지 머리카락에는 어느새 하얀 서리가 내렸다. 크고 작은 주름 가득한 할아버지가 됐다.

그 많은 풍랑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

아버지는 일제 말기에 경상도의 작은 소읍에서 열한 형제들 중에 막내로 자랐다. 증조할아버지는 서당에서 글을 가르쳤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집안의 열한 번째 막내아들로 자랐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험악한 일들을 많이 보셨다. 고난에 찬 나라와 집안에서 우환이 많았고 고생을 밥 먹듯 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에 배를 곯아 위장병을 얻어 오랫동안 고생을 하시기도 했던 아버지는 예수 믿고 난 후 지금까지 신앙으로 살아오셨고 지금도 그러하다.

젊은 날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팔뚝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모습이다. 톱질과 대패질, 퉁탕퉁탕 배를 만들던 젊은 날의 아버지. 겨울에 부엌아궁이에 군불 넣을 장작을 패던 아버지 모습 그려진다.

우리 마을에 처음으로 교회가 들어올 때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짓던 아버지, 설 명절이면 가까운 읍내에 가서 설빔을 사오시던 아버지, 한겨울 얼어붙은 논에 나가 놀던 우리를 위해 썰매를 만들어주셨던 아버지…. 헤아려보면 끝이 없다. 남을 턱없이 잘 믿다가 사기도 당하고 그 덕분에 온가족이 풍랑을 만나기도 했었지만 아버지는 남에게 속을지언정 속이지 않았고 평생을 착하게만 살아오셨다.

아버지의 팔순... 아름다운 동행..
▲ 아버지의 팔순... 아름다운 동행..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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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아버지는 인생에 달관한 듯한 모습이 그러하듯 참 평안하고 천진하고 순박해보였다. 순후한 아버지 옆에 앉은 엄마의 백만 달러짜리 미소는 여전하다. 온갖 풍상을 다 겪어온 우리 엄마는 아버지와 살아오시면서 수치와 굴욕과 시련도 많았지만 언제나 생에 대한 열정과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새삼 그 미소가 빛난다. 언제나 베풀기를 좋아하고 많이 퍼주는 사람인 우리 엄마는 열정의 사람, 모성이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이다.

아버지는 오랜 만에 고운 옥색 한복을 입으셨고 엄마는 분홍색 저고리에 짙은 남색 치마를 입으시니 새신랑 새 신부처럼 고우셨다. 두 분이 나란히 앉은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감으로 환했다.

부모님 두 분이 나란히 앉으시고 자식들은 저마다 한 가정씩 자녀들과 함께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고 부모님은 덕담을 해주셨다. 식사하기 전 케이크 촛불을 켜고 불을 붙였고, 우리는 한 목소리로 박수치며 아버지의 팔순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 어린 조카들은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높여 멋진 화음을 이뤘다.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입김을 불어 촛불을 껐다. 한 상에 둘러 앉아 식사하기 전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아버지의 팔순 생신... 축복기도 하시는 아버지 모습...
▲ 아버지의 팔순 생신... 축복기도 하시는 아버지 모습...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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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오늘도 하나님께서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80년 동안 저를 이렇게 생명을 주셔서 아름다운 이날을 맞이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 믿음으로 살게 해주시고,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에게 많은 축복을 허락하셔서 앞으로도 믿음과 소망을 갖고 아버지 앞에 충성하는 종들이 다 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듬뿍 주셔서 남보다 더 뛰어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앞날에 모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귀한 자녀들 다 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모든 것 우리 주님께 의탁하옵고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다 같이 '아멘!"으로 화답했다. 이제 모두 상에 둘러 앉아 밥 먹고 사진을 찍고 하느라 좁은 집안이 들썩거렸다. 아버지와 엄마, 두 분은 어린 아이 같은 천진한 미소로 흐뭇하게 우리를 바라보셨다. 여기서 '곱게'라는 말은 얼굴이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거나 세련돼 보인다거나 한 게 아니라 살아온 품격이 보인다는 말이다.

지난날 풍랑도 많았건만 그 모든 시련 속에서 굴복하지 않고 끝내 잘 건너 온 자에게서 볼 수 있는 겸허함이랄까.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겸허한 태도와 인생의 욕망과 독기와 독소가 다 빠져나간 순후한 모습을 말한다. 한 세계를 건너온 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젊은 날이 포부와 꿈, 욕망들도 세월 속에 묻고 내려놓고 떠나오고…. 긴 세월 포복하듯 건너 온 날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이 연단되었을까.

언제 저렇게 늙으셨나.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되셨다. 두 분이 함께 계서서 참 감사하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한 노년의 동행이었으면 싶다. 한때는 코흘리개들이었던 우리도 이제 늙어가고 있다. 모두들 가정을 이뤘고, 그 자식들의 자식들도 청년이 되고 또 어린 아이들은 키가 자라고 마음이 자란다. 또 그 가정들마다 사연들도 많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월이 함부로 쏜 화살처럼 눈 깜짝할 사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에세이에서 김훈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늙어서 표정을 잃어버리는 노인들이 있고, 늙어도 표정이 넘치는 노인들이 있다. 그래서 노인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생애의 지도이며 궤적이다."

나의 노년의 모습은 어느 쪽일까. 아름다운 노년을 그려본다. 여든의 나이에도 순후한 아버지의 얼굴처럼, 백만 달러짜리 환한 미소를 가진 우리 엄마처럼, 생이 다하는 날까지 열정과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착하고 곱게 늙어가고 싶다.


#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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