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월요일은 큰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2월 들어 '잠깐 졸업식에 다녀오겠다'는 직원들이 종종 있다. 나는 휴가를 냈다. 오전에 졸업식 오후에는 집사람의 병원치료가 있기 때문에 '잠깐'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참석하는 졸업식이었다. 나는 1981년 2월에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졸업했으니 35년만이다. 강산이 세 번 반이나 바뀌어서일까 참으로 신기한 장면들이 많았다.
1. 두 명의 제복 경찰학교 강당에서 열린(강당이라기 보단 농구코트 하나 정도 있는 체육관) 졸업식에 두 명의 정복을 입은 경찰이 나타났다. 아마도 학교폭력 방지 때문일 것이다. 덕분일까 아무런 잡음없이 평화로운 졸업식이 열릴 수 있었다.
2. 100명도 안 되는 졸업생졸업생은 전부 100명이 안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학생이 한 학급에 60명, 중학교는 70명인 학교를 다녔었다. 당연히 졸업하는 학생은 몇백 명, 몇천 명이었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감소가 떠올랐다. 학생수가 적다 보니 학생바로 옆자리에 학부모가 앉을 수 있도록 자리배치를 해줬다. 교장선생님은 학생 하나하나에게 졸업장을 전달했고, 화면에는 학생의 이름과 장래 희망이 나왔다. 공무원, 선생님이 절반이 넘었다.
3. 빨리빨리 축사 그리고 국회의원교장 선생님, 학교운영위원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포인트는 '빨리하기'였다. 교장선생님의 짧은 축사에 이어 학교운영위원장이 등장했다.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분이었다. 근데 이분이 갑자기 귀한 손님이 오셨다면서 지역구 의원을 모시겠다고 하더니 기다렸단 듯이 국회의원이 등장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 보다 길게 축사를 했다. 국회의원까지 참여하는 졸업식. 그만큼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지역에서 중요한 학교였을까? 지난해 예산을 많이 따내서 이제 이 학교에는 냉난방 시설이 더 잘 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4. 모두가 주인이 된 행사내가 졸업하던 시기 단상에 오르는 경우는 아주 공부를 잘한 학생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90여 명의 학생 모두가 단상에 올랐다. 아이들은 모두 미남 미녀들이었다. 요즘 인기있는 아이돌멤버들 보다도 예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공연을 했다. 노래를 부르고 리코터 연주를 했다. 졸업생들이 학부모를 상대로 말이다.
O15B의 '이젠 안녕'이란 노래였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 떠나가야 할 시간, 아쉬움을 남긴채 돌아서지만 시간은 우리를 다시만나게 해주겠죠. 우리 그때까지 아쉽지만 기다려봐요....' 졸업은 일종의 헤어짐이니까 맞는 선곡이기도 했지만 부르는 학생들 누구도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절반은 아예 부르지도 않는 것 같기도 했고.
졸업생의 70%가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헤어짐'을 강하게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놀랐던 것은 '대중가요'를 학교 행사에서 부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학창시절엔 대중가요는 일종의 금기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진 리코더 연주는 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블라다'였다. 끝나고 가장 큰 박수가 나왔다. 90명이 함께 리코더로 이 노래를 연주하니 그 맛이 색달랐다.
아이들의 노래, 연주로 인해 졸업식장은 유치원 재롱잔치로 변했다. 학부모들이 각자의 스마크폰을 들고 경쟁적으로 자기 아이들을 찍어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어느새 졸업식은 학생,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이 함께하는 작은 축제로 바뀌었다.
그렇게 짧은 졸업식은 끝났다. 부족한 아이를 잘 교육해준 선생님을 졸업식날 처음 뵙고 인사를 드렸다. 감사드린다는 얘기가 저절로 나왔다. 세상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졸업식장을 나올 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다른 정당 예비후보가 명함을 나눠줬다. 식장이 아닌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졸업식을 축하해주려는 사람이 안팎으로 정말 많았다고 믿는다. 모두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