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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1인 시위 중 경찰에게 제지당하고 있는 나눔문화 김재현 연구원
 지난 2월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1인 시위 중 경찰에게 제지당하고 있는 나눔문화 김재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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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의화 국회의장님. 필리버스터 의사 진행으로 고생 많으십니다. 저는 지난 2월 23일, 국회 본관 앞에서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1인 시위 중 체포된 31살 청년, 김재현 나눔문화 연구원입니다.

의장님께서 '국가비상사태'라는 명분으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테러방지법'을 충분한 국민적 토론 없이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 하셨던 날, 저는 절박한 마음에 국회로 달려가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저는 이번 서한을 통해 의장님께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취소하셔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벌어진 국민 기본권 침해

 2월 25일,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나눔문화 김재현 연구원
 2월 25일,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나눔문화 김재현 연구원
ⓒ 나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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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은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국민 기본권 침해가 벌어진 날이었습니다. 체포 직전, 저는 3분간 피켓을 들었고 한 번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제 옆에서는 동료가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경찰 10여 명이 저희 둘을 제지하며 피켓을 압수했고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약 20시간 뒤인 지난 24일에야 풀려났습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1인 시위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의사표현의 방식이고,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입니다. 명백한 경찰의 '과잉 대응'이었습니다. 또한,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대한 체포는 향후 한국 정부가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약하려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국민들은 공권력에 의한 '국민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테러방지법은 국민의 통화 및 통신 내용과 금융거래 정보를 합법적으로 감청, 추적,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을 국정원에게 부여하는 법으로, '국민 사생활 침해법'이자 '대국민 사찰법'에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군 병력 동원까지도 더욱 쉽게 만듭니다. 테러방지법의 오남용은 '자기 검열'의 일상화까지 불러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내밀한 사생활을 누군가 들여다본다는 불안이 우리 삶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테러방지법은 '정치 독재'를 넘어 '생활 독재'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테러방지법의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자국민과 전세계의 통신 내용을 도감청한 미국의 NSA(국가안보국) 사태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SNS에 올린 장난 글 때문에 무장경찰에게 검문을 받거나, 수 시간 동안 구치소에 수감되는 등 기본권에 큰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스페인에서도 별다른 혐의 없이 예술가들이 징역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국민과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의장님의 심경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이 필요한지는 의문입니다. 국정원은 국민이 부여한 엄청난 예산과 인력,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국가보안법, 통합방위법 등 테러방지법령이 존재하며, 대테러전담부대도 있습니다. 더 강력한 권한으로 테러 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국정원의 공권력 남용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던 당시, 국정원은 고의로 수사기록을 언론에 공개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2013년에는 탈북자 출신의 한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조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국정원은 지금까지도 지난 대선 개입과 '카카오톡' 사찰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이 결정할 수 있도록 직권상정을 취소해주십시오

정의화 의장,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고 있다.
▲ 정의화 의장,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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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국민들은 국정원을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국가정보조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국정원이 특정 정치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사찰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는 우려와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만일 한국이 비상사태에 처해있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러와 같은 국가적 비극을 사전에 막으려면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필수입니다.

세월호-메르스 참사 이후, 국민 대다수가 한국 사회의 '선장'들과 정부의 말을 그대로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 권한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테러방지법' 제정이 과연 정부와 여당, 국회가 우선해야 할 일인지 다시 한 번 숙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의화 국회의장님.

이제야 국민들은 '테러방지법'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의 뜻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국민 삶에, 청년들과 아이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법안은 국민 뜻에 따라 제정되어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테러방지법' 제정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직권상정을 취소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국회의 입법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나날입니다.

덧붙이는 글 | 나눔문화 홈페이지(www.nanum.com)에도 올라갈 예정입니다.



#테러방지법#직권상정#필리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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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에서 사회행동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www.nanum.com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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