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 난 두 딸의 철없는 아빠였고,할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젊으셨지- 이상옥의 디카시 <오버랩-스물 여덟의 아들에게> 2월 26일. 드디어 예순의 디지털노마드로 중국 정주에 왔다. 케리어 두 개와 작은 가방과 노트북 하나 둘러매고 공항에 도착하니, 수속할 때 공안이 Z비자(취업비자)로 목적지가 정주경공업대학교로 되어 있으니까, 나보고 '라오스(老师)'냐고 물어서 '칭꽁예따세 지아오슈(郑州轻工业大学 教授, 정주경공업대학 교수)'라고 대답했다. 또 몇 가지 질문을 해지만 서툰 중국어로 대충 대답을 했더니 통과시켜 주었다.
나 혼자 힘으로 중국 현지 적응하기 아직 힘들 것 같아 미리 중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가이드 노릇을 부탁해 놓았다. 어렵사리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정주경공업대학교 외사처 직원과 아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나를 픽업하여 아무 어려움 없이 대학이 제공하는 아파트까지 왔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아파트가 생각보다 크고 좋았다. 세탁기, 전자레인지, 책상, 침대, 냉장고, 에어컨, 인터넷 등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고, 아파트 관리비도 무료다.
중국에 있어도 타국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숙소 와이파이로 인터넷 전화를 이용하니 통화감도 좋고 요금 부담 없이 한국에 얼마든지 전화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세계가 구석구석 거미줄 같이 연결되어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지구촌 시대임을 실감한다. 중국에 있어도 타국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늘(27일)은 토요일이지만 외사처 직원 안내로 중국폰 번호를 땄다. 3월 1일부터 중국폰은 개통된다. 내일은 중국은행 통장 발급 등 업무를 보기로 했다. 아들이 곁에 있으니 불편이 없다. 아들은 올 8월 졸업이다.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아들과 며칠 같이 있으면서 많은 대화도 나누며 의미 있는 부자간의 시간을 기약하고 있다.
새삼 혈육의 의미를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이 나의 어머니는 아들인 내가 삶의 목적이셨고 보람이셨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머님께 훨씬 미치지 못한다. 생전에 어머님을 좀더 잘 모시지 못한 것이 오늘 따라 더욱 회한으로 남는다. 아들은 올해 스물 여덟이다. 그 나이에 나는 결혼을 하여 두 딸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당시 어머니는 오십 일곱이셨다. 지금의 나보다 젊으셨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어머니와 나와 아들 이렇게 삼대다. 어머니는 컴퓨터라는 게 있는지도 모른 채 당신의 맡은 일을 다 하시고 생을 마감하셨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디지털에 더 익숙한 스물 여덟의 아들에게 중국에서도 페북, 카톡 등 SNS로 원활하게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아들에게 가르칠 것보다 배울 게 더 많은 낡은 세대가 되었다. 그런 묵은 몸으로 디지털노마드를 자처하며 대륙체험을 하겠다고 의욕을 드러내는 내가 스스로 염려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오후 내내 중국폰 번호를 따기 위해 대기하며 에너지 소모가 컸던 탓에 저녁은 아들과 둘이서 숙소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덧붙이는 글 | 올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