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속에서 묻힌 공동체의 복원을 주제로 작품을 해온 임민욱 작가의 전시가 삼성 '플라토미술관'에서 설치 및 미디어작품 40여 점을 선보이며 3월 13일까지 열린다.
제목이 '만일(萬一)의 약속'이다. '만일' 이건 '만의 하나' 혹은 '만 분의 일'이라는 뜻으로 지금 당장은 그 어떤 것이 불가능해 보이나 그럼에도 가능성이 있다는 가정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예술가란 '시시포스' 신화에서처럼 돌을 높은 언덕에 올려놓아도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나 그래도 그걸 계속 들어 올리는 사람과 같다"고 비유한다.
원래 예술이란 무목적적이고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임민욱 작가는 실패의 가능성도 높고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 있는 버거운 주제로 15년 넘게 문제를 제기를 하는 방식으로 영상과 퍼포먼스와 다큐멘터리를 결함한 예술적 모험을 시도해왔다. 그래서 그는 "사회의식과 예술 간의 긴장을 탁월하게 조율하는 작가"라는 평가도 받는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는 평범한 삶의 흔적과 일상의 기억을 매우 중시한다. 이런 것이 결국 지구적 차원의 정치·경제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관점을 상정하면서 관객에게 조용히 말을 걸고 있다.
임민욱 작가는 컨테이너를 그의 전시의 매개체로 자주 등장시킨다. 이번에도 전시장 중앙에 '시민의 문'이라는 대형컨테이너를 세웠다. 이 작품에 가까이 가면 대중매체에서 흔히 듣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래서 관객에게 잊힌 과거를 상기시킨다. 막힌 통로를 여는 비밀 문 같은 위 작품을 보니 갑자기 '트로이목마'가 떠오른다.
'김남시'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교수는 '시민의 문'에 대해 "이 컨테이너는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닥쳐올 미지의 공동체를 환대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만의 하나'지만 그 어떤 약속의 가능성을 이룰 수 있는 상징적 발명품처럼 보인다"라고 전시도록에 적고 있다.
사회의 온도를 재는 촉각의 작가
백남준은 "작가란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는 안테나"라고 했지만 임민욱 작가는 "작가란 의사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의 체온을 재듯이 사회의 온도를 재는 존재"로 본다. 하여간 차가운 미디어아트로 온돌처럼 따뜻한 촉감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니 놀랍다.
임민욱 작가는 사람의 몸이 36.5도가 넘으면 고열이 나고 그 이하면 사망하는데 바로 그런 기준으로 공동체의 생사를 확인하려 한다. 그런 면에서 위 작품은 우리 사회의 온도를 재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요즘 그 체온이 과연 몇 도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작가가 사람의 몸의 체온을 중시하는 것은 그 속에 평등개념과 공동체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디어시대란 속도의 시대를 뜻하는데 속도만으로 부족한 온도를 추가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그 속에 인간의 갈망과 그리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미디어란 메시지이면서 또한 마사지"라고 미디어학자 '맥루한'도 말했지만 작가의 미학도 '시각(seeing)'보다는 '촉각(touching)'을 더 중시한다. 그는 이런 기능을 실행하기 위해 적외선 열 감지카메라를 발명한다. 위 작품도 그런 열 감지장치를 활용한 것이다.
작가는 또 '열대 통일코리아'라는 작품에서 우리가 60년 동안 냉전 속에 살아왔지만, 한반도를 녹일 열대 코리아의 눈물이 있기에 핵무기에도 구멍을 낼 수 있다는 생뚱맞은 발설도 한다. 이런 작가의 통일의 대한 열기는 우리에게도 가감 없이 전달된다. 이런 미래지향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 작가의 일관된 주제이다.
이 '코리아연작'에는 남북한의 역설적 모순을 담은 내용도 보인다.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죽었을 때, 남북한주민이 보여준 현상을 유사성을 보여주면서 남북이 너무나 다른 이념과 체제 속에 살면서도 유사점이 많음을 일깨워준다.
미디어작가가 본 미디어세상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방송매체환경을 펼쳐 보인 '허공에의 질주'를 보자. 이 작품은 미디어작가가 진단한 미디어세상이다. 기존의 미디어가 과연 사실보도를 제대로 하는지 아닌지 그걸 왜곡하거나 굴절시키지 않는지 감시카메라처럼 모니터링하고 있다. 작가는 미디어에서 사라진 장소와 시간과 관계와 공동체성이 파묻히지 않는지 주시한다.
이 작품은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에서 선보인 '절반의 가능성'의 연장이다. 미디어의 현실을 초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면 '블랙홀', '히드라', '안티고네', '낙타의 바다', '관세음'과 같이 기괴한 제목의 소품과 방송장비, 카메라맨 등이 군상을 이룬다. 뒤로는 '임원실'이라는 제목이 붙은 컨테이너도 보인다.
'만일의 약속', 미디어의 본질을 보여주다
이번에는 작가가 미디어소통의 한 전형으로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만일의 약속'이라는 작품을 감상해보자. 임민욱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성장기에 본 가장 충격적 방송 3가지를 소개한다. 즉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 생중계와 1983년 '이산가족찾기' 방송 그리고 1984년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굿모닝 미스터오웰'이란다.
'만일의 약속'은 셋 중 하나인 KBS에서 방영된 '이산가족찾기(1983)' 특별생방송을 편집한 작품이다. 400시간이 넘게 진행됐고, 10만여 명의 이산가족이 참가해 한국전쟁으로 흩어진 1만여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결실을 얻었다. 한국방송사상 가장 큰 성과를 낸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90%의 이산가족에게는 '만일의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는 10%의 이산가족에게는 '만일의 약속'의 이루었다는 점을 주시한다. 이산가족이 사연판의 이름과 나이가 없이도 얼굴이 너무 닮아 직감적으로 한 핏줄임을 알아보게 되는 순간, 우리도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이 순간은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작가가 이 작품에 몰입하는 이유다.
작가는 KBS를 통해 이룬 이런 미디어의 성과에 공감하면서 이것이야말로 미디어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작가는 그 순간 아무리 감동이 크다 해도 제한된 프레임이 이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기에 또한 시간이 지나면 다 망각하기 마련이기에 그 감격스런 찰나의 순간을 박제화해 예술작품으로 영구히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가치에 대한 애도
근대화란 나름 기여가 컸지만, 2차 대전에서 인류에게 대재앙을 남긴 '나치'가 실은 이런 이분법적 근대화에 근간을 두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럴듯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폭력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백남준이 죽은 날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한 것도 이런 위험성에 대한 경고였다.
금이 간 위 '뉴타운'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우리의 눈먼 근대화를 풍자한 것 같다. 우리는 일본이 번역한 '근대화'를 식민시대에 도입했고 벌써 이를 경험한 지 100년이 되었다. 이제 우리도 이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많은 경제적 발전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작가는 이런 점에 누구보다 예리한 반응을 보인다. 급속한 근대화 속에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진 장소와 흔적 그리고 흩어지고 유실된 공동체를 그는 발굴하려고 하고 이에 끝나지 않고 이로 인해서 당한 슬픔과 고통에 대한 '애도의 의례'도 빼놓지 않는다.
그가 애도라는 통과의례를 중시하는 이유는 마치 살풀이굿처럼 밑바닥부터 그 고리를 끊어내 원한을 없애는 과정을 치러야만 진정한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리라. 이미 늦었지만 여전히 이른 미완의 역사를 현재시제로 다룬다.
작가가 이런 문제를 다루다보니 역시 실종과 이산이라는 고통과 아픔을 낳은 분단문제를 끄집어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통일문제도 등장시킨다. '통일등고선'은 바로 이런 주제의 작품으로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의 등고선을 형상화했다. 등고선 위에 집은 남북대표가 만난 장소인 '올림픽경기장'과 '평양개선문'을 본뜬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당장 남북이 하나 된다는 것보다 남북의 흐름이 하나로 회복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한다. '통일등고선'의 재료가 촛농으로 만든 '액체풍경'인 것은 통일문제를 다룰 때 보다 유연하고 포용적인 방식은 필수적이라는 걸 암시한다.
또 여기서 작가가 분단을 언급하는 건 분단이 낳은 악순환인 여러 형태의 분열, 분쟁, 분파의 확장을 막자는 의도도 보인다. 이를 빌미로 우리는 그동안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했고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지 못했음을 상기시킨다. 최근 남북 상황을 보면 어느때보다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테러 법을 둘러싸고 위기를 맞고 있다.
작가에게 재료는 '스토리텔링'의 도구
위 작품에 사용된 깃털이나 뼛조각, 그리고 플라스틱 프로펠러 등은 참 희한하다. 작가에게 왜 이런 오브제를 사용했냐고 물어보니 그는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재료라도 거기에 과거의 흔적과 추억과 사연이 담겨있기에 '스토리텔링'의 역할을 한단다. 그러면서 이런 물건이 들려주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어야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하긴 현대미술에서 재료의 독창성을 매우 중요하다. 위 작품이 좋은 예다. 이런 특징을 잘 살린 '휴대용 지킴이(Portable Keeper)'는 2009년부터 발표해온 연작이다. 여기서 지킴이라는 말이 흥미로운데 일종의 수호신 같은 것을 뜻이리라. 작가는 이에 대해 "잊혀진 시공간을 매개시키는 풍경이자 흩어진 세계를 잇는 운송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재료를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묻지 않아도 위 첫 번째 비디오를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다 버려진 재개발지역에서 가져온 거다. 왜 이걸로 작품을 했는지는 생각해보면 역시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억을 중요시하는 작가의 주제와 부합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작가에게 왜 기억이 중한가를 물으니 그것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임민욱 작가는 우리가 미디어미술가로 알고 있지만 실은 파리국립미대에서 장식미술을 전공했다. 그의 독창적인 조형미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미적 성취를 획득하고 있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작가가 애니미즘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버려진 폐품 속에 혼과 기와 불어넣어 유기체로 되살려냈다는 점이다.
같은 연작인 위 작품은 원시부족의 토템을 닮아 재미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이 작품을 보니 우리 근현대사가 연상된다. 우리 어른세대가 겪었던 고난과 시련의 역사와 그 뒷이야기가 뒤엉켜져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여기서 건져야 할 교훈은 폐허 속에도 인간다움에 도전해야 하고, 삶의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자.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한 주제는 불가능 속에서도 만의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구현하는 공동체의 복원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뤽 낭시(J.-L. Nancy)'는 "가능성이 없기에 가능성이 있다"는 '무의(無爲)공동체'를 주장하는데 두 사람은 많이 닮았다.
낭시의 이 공동체는 타인의 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어떤 목적에도 종속되지 않고, 그 어떤 외부세력에도 작동되지 않는, 중심이 없으면서도 중심이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기존의 것과 확연히 다른 유연하고 평등하고 인간적인 공동체를 말한다.
임민욱(1968년생)은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수학하고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한국 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 재직 중
[개인전, 퍼포먼스, 프로젝트]
2015년 [1] 임민욱_만일(萬一)의 약속, 플라토미술관 [2] 임민욱개인전:연결된 역설(United Paradox)_PORTIKUS, 프랑크푸르트 [3] From X to A, 커뮤니티 퍼포머티비티 프로젝트, 광주 아시아문화의 전당
2014년 [1] 비(碑)300-워터마크를 찾아서, DMZ 피스프로젝트, 철원 [2] 임민욱_Navigation ID, 10회 광주비엔날레 '너의 터전을 불태워라' 개막작, 광주
2013년 [1] 임민욱_미열이 전하는 바람, 아트센터 나비 COMO, SKT타워 서울 [2] 불의 절벽4_In>Time 퍼포먼스 페스티벌(시카고) [3] Logan Center for the Art, 시카고 미국
2012년 [1] 임민욱_사회적 틈-이미지와 장치 사이, 미디어극장 아이공, 서울 [2] 임민욱: 그림자 열기_불의 절벽 3, 워커아트센터, 미네아폴리스 미국
[수상경력] 2015년: 앱솔루트 어워드 파이널리스트, 스톡홀름, 스웨덴 2013년: 하이드파크아트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 시카고, 미국 2012년: 올해의 작가상 최종후보, 과천국립현대미술관 2010년: 제1회 미디어 아트코리아상, 서울 2007년: 제7회 에르메스미술상, 서울 2006년: 제6회 광주비엔날레 재단상 광주은행상, 광주 한국 1995년: 프랑스 알베르 로슈롱 재단상, 파리 프랑스
덧붙이는 글 | 삼성 플라토미술관 서울 중구 세종대로 55 www.plateau.co.kr 1577-7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