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한 삶을 꿈꾸는 그대여, 당신은 어제와 같은 삶을 견디기 힘든가?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적인 인생을 지겨워하는가? 매일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 그놈이 그놈 같고, 하루를 지우기 위해 넘기는 술 몇 잔으로 다음날까지 모두 지워지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한 가지 힌트를 주고자 한다. 삶의 활력소가 될 무한 충전 에너지원을 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는이야기 기사쓰기'라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앞잡이냐! 이런 간접 광고 따위의 낚시 글은 그만 올려라'면서 울분을 토하는 이들이 혹시 있다면,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보길 바란다. 일기처럼 써 내려간 사는이야기가 삶에 어떤 자극과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해보겠다.
글 하나에서 시작된 일상의 큰 변화지난 설날 특집 기사로 '아내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8년차 여보야, 못난 남편이라 미안하다)를 올렸다. 며칠 후 'S'본부 아침 프로그램의 작가님으로부터 섭외 쪽지가 날아왔다. 낯가림이 심한 아내를 위해 촬영을 고사했다. 물론, 전국 방송으로 갑자기 유명해지면 길거리에서 알아본 사람들의 싸인 공세로 인해 삶이 고달플 것 같다는 망상도 일부 작용하기는 했다.
요즘 재미 붙인 취미를 기사로 썼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레코드판 듣기와 기타 배우기 따위의 특별할 것 없는 주제였다. 지역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본격적인 취미 이야기를 칼럼으로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 많은 글자 공해에 이 한 몸 더 보태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 수락했다. 며칠 전 종이 신문에 첫 글이 실렸다. 그리고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이 하나 더 생겼다.
마을학교 협동조합 아이들의 사는이야기를 기사로 옮겼다. 들살이와 쥐불놀이 등등 일상에서 노는 모습들을 무덤덤하게 담았다. 대구 지역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협동조합 특집 방송으로 마을학교를 촬영하고 싶다고 했다.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서 거절할 수 없었다. 매스컴에 노출되기를 피하는 조합원들 덕분에(?) 거의 독무대처럼 카메라에 잡혔다. 피부 관리할 여유조차 없었다. 다음 달 초순에 귤껍질 같은 피부가 선명하게 방영될 예정이다.
그리고 2주전, 고장 난 내비게이션을 달고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습관적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기사로 올렸다. 서울의 한 케이블 방송에서 문자가 왔다. 아날로그적 삶에 대해 촬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때마침 주말을 이용해 '내비 없는 전라남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시간이 안 된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랬더니 여행에 동행하며 촬영을 하고 싶단다.
낯가림이 심한 아내가 반길 리 없다. 더구나 타인의 개입으로 가족 여행의 흥이 깨지는 건 가장된 입장으로 허락할 수 없었다. 몇 번의 통화 끝에 셀프 촬영을 해서 영상을 보내주는 선에서 협상을 마쳤다. 남원을 거쳐 구례로 가는 길에 가족들과 동영상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얼굴이 안 나온다는 전제 아래 아내는 촬영감독 및 피디의 역할을, 아이들은 뒷좌석에 앉아 유료 방청객의 흉내를 냈다. 신선한 재미를 안겨줬다.
여행 둘째 날, 아마추어들의 촬영 실력을 도저히 믿지 못한 방송국에서 현지 촬영감독 한 분을 보냈다. 성의를 무시하기도 그렇고, 휴일까지 반납하며 일하는 관계자들이 안쓰러워 아내를 설득했다. 결과적으로는 촬영감독님이 여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줘서 촬영도, 관광도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방송은 현재 편집 중일 것이다.
마당 쓸고 돈 줍고위에 일어난 일들은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발생했다. 공통점이라면 모든 연락은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보고서'라는 전제가 붙는다는 것이다. 방송국의 작가라는 사람들이 <오마이뉴스>만 보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예전에도 교육방송이나 라디오 방송국에서 몇 차례 섭외 시도가 온 적은 있었으나, 겁이 나기도 하고, 아내가 만류하기도 해서 대부분은 거절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새로운 경험을 마다치 않기로 했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 전환점을 돈 마당에 뭐 부끄럽고 못할 말이 있겠나 싶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을 살던 내게 하루하루 다른 빛을 내는 마법의 구슬이 생긴 것이다.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의 문을 활짝 열어준 고마운 구슬은 다름 아닌 <오마이뉴스>의 '사는이야기'다.
요즘도 내가 쓴 사는이야기 기사에는 종종 시비조의 댓글이 달린다. '이게 기사냐 일기냐'부터 시작해서 '개인 블로그에나 올려라' '이런 글 쓰는 애들이 기자라고 사칭하고 돈 뜯고 다닌다더라'는 둥 별별 댓글들이 많다. 나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싶은 댓글부대들의 노고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그렇다. 사는이야기는 기사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깝다. 쿨하게 인정한다. 거기에 읽는 재미가 담겨져 있는 거다. 누군가의 일기를 몰래 훔쳐 읽어본 기억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남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공감하고, 함께 웃고, 화도 내면서 세상 사는 맛을 깨닫는 것이 사는이야기라는 코너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부담 없이 써내려간 글들로 인해 예상치 않았던 경험들까지 얻게 된다면, 이는 마당 쓸고 돈 줍는 일이 아니겠는가.
"용기 내어 쓰세요, 당신의 글이 촛불이 됩니다"
나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글쓰기를 권한다. 삶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한 또래의 친구들에게도, 표현력이 부족한 젊은 직원들에게도 글로 생각과 삶을 정리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당신의 사는 이야기를 일기처럼 적어보라고. 그렇게 몇 번 쓰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기사가 될 것이라고 부추기고 있다.
첫 기사를 쓰던 날이 생각난다. A4 넉 장 분량을 적어 놓고 어찌할 바를 몰라 썼다 지우기를 나흘쯤 반복했던 것 같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 100개의 기사도 못 쓴 사람이 '사는이야기' 코너를 논하는 게 우습기도 하다. 바닷가에서 조개 껍데기를 줍는 누군가를 멀리서 스케치하는 정도의 수준인 내가 주제 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시민기자로써 사는 이야기를 쓰려고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이 한 마디쯤 해줘도 괜찮을 성 싶다.
"용기 내어 쓰십시오. 당신의 사는 모습을 가식 없이, 여과 없이 쭉 적어 내려가 보세요. 당신의 진심 어린 사는 이야기가 세상에 하나의 촛불이 될 수도, 힘든 이들에게 작은 웃음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서 당신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다줄 겁니다."[퍽퍽한 인생, 달달한 취미 지난 기사]② 눈 딱 감고 일주일만 버티라, 신세계가 열릴 게다① 중년에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