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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를 사랑해 숲속의 놀이를 즐겨하는 나의 아이 / 수채화
▲ 나뭇가지를 사랑해 숲속의 놀이를 즐겨하는 나의 아이 / 수채화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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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혹독한 추위를 견디니 어느덧 겨울이 떠나갔다. 겨울이 남기고 간 빈자리를 채우려 봄이 왔고, 그 변화를 맞아 적응하려 세상 모든 것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바야흐로 봄이다. 3월의 시작은 생명이 꿈틀대는 계절의 변화가 주는 설렘이 단연 우선인 계절. 계절의 설렘이 몇 곱절 더한 이번 봄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하다.

생명이 움트는 그 시작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아이들의 성장도 자연스레 다가왔다. 잠자고 있는 중에도 수직 상승 중인 듯 느껴지는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은, 하루 온종일 놀고 싶은 욕구를 주체할 수 없는 녀석들의 에너지를 대변한다.

그 중 이제 네 살이 된 큰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변화가 시작되는 봄, 계절과 함께 녀석 일상의 변화가 두근거린다. 이제 흥미로운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며 녀석이 내게 보내는 신호로 여겨지던 순간들. 새로운 적응이 필요한 다른 방식의 생활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직감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눈여겨보던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 놓는 일이었다.

"오늘은 뭐 하고 놀지?"
"어디 놀러 갈 거야?"

겨울 동안 바깥활동을 못하는 날이면 특히 심해지던 큰 아이의 놀이에 대한 욕구불만은, 엄마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그 수치가 가라앉기도 높아지기도 했다. 매일 저녁 나 역시 그랬다.

"내일은 뭐하고 놀아주지?"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에 질리면 한 번쯤은 바깥으로 나가주기도 해야 엄마도 아이들도 좀 더 수월하게 지나가는 시간들이 있다. 그 때에 엄마가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특히 우리 집 큰 아이는 엄마를 가만 두질 못한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되는 식습관에 치중을 하여 전력을 다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하루 중 해야 할 일들의 시간 배분을 정할 때, 우선 순위는 늘 식사 준비 시간이긴 하다. 그러나 처음 아이를 키우며 밥을 먹이기 시작했을 때의 노력한 시간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 당시 떠나지 않던 마음 속 질문은 "내일은 또 뭐 해 먹지?"였다.

앞만 보고 달려 이제 살림과 육아를 막 시작하던 그때보다는 훨씬 숙달된 요리 실력과 정보를 지닌 엄마가 됐다. 산 넘어 또 산이더라니. 먹는 고민을 조금 내려놓으려 하니 이제 자기는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어디로든 데려가 달라는 듯 집 밖의 세상을 요구한다.

배불리 먹여놓고 돌아서려니 이제 놀 준비가 됐으니 놀 거리를 제공해 달라는 듯, 바짓가랑이를 붙든다. 직장인들의 업무 과중, 야근, 주말 특근, 번뜩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고민 등에 대한 스트레스가 분명 엄마들에게도 있다. 보다 긴 시간, 민감하게 아이의 요구에 반응하는 엄마는 안팎의 놀이를 쥐어 짜내다 결국 밑천까지 보고 좌절하기도 한다.

최선을 다했건만 더 이상 어떻게 해줄 엄마의 능력이 없는 것 같아 죄책감까지 들기 전에 누군가에게 SOS를 청해야 한다. 누군가, 누구라도 와줘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흥미를 유발해줄 수 있도록 말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엄마 대신, 몸과 마음의 힘을 가득 충전하고 온 다른 누군가들이 오는 날 아이들은 그 어떤 날 보다도 흥분지수가 높다.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장난감, 새로운 공간보다 그들과 힘껏 충분히 놀아줄 살아 숨 쉬는 대상이 필요한 것이었다. 녀석들은 엄마가 유난히 지쳐서 힘든 날, 놀아달라며 보채는 일이 더욱 잦다. 그러면서 꼭 한 마디 하는 우리 집 첫째.

"우리 집은 재미없어."

활력 넘치는 날엔 그런 말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웃어넘길 재간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재미 없고 지루한 시간 역시 아이가 커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꽤 여유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휴대전화처럼 배터리가 방전되는 그런 날이 있다. 하루 동안 쓸 체력을 아이들을 위해 다 쏟아 부었음에도 끝나지 않는다 느껴지는 날엔 재치와 여유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한계에 도달한 인내가 분노로 뒤바뀌어 화산처럼 뿜어나가는 게 두려워 아이들의 요구를 못들은 척 외면하기도 한다. 그래도 들으라는 듯 또렷하게 들리는 큰 아이의 목소리.

"우리 집은 재미없다구~!"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제시한 인간의 5단계 욕구에 적용해 본다면 큰 아이의 새로운 봄은 3단계, 즉 사회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시작이다.

'이제 아이는 엄마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거야. 날개 짓이 익숙해져 혼자 날 준비가 된 아기 새 처럼.' 

실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제 엄마 품을 조금씩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시시하고 재밌는 것을 직접 언어로 표현하게 됐다는 것이.

두렵고도 두근대는 아이의 새봄은 이미 시작됐다. 대기 시간은 끝났고, 이제 진짜 선택으로 인한 행동의 시작이다. 어린이집 입소가 확정되는 순간, 많은 날들 혼자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우리의 선택을 응원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에도 중복 게재했습니다.



#어린이집#아이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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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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