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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은 어때?"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갈 때면 늘 듣곤 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에둘러 '거절'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나선 주변에서 나만 '공무원 시험'을 보지 않는 건가 싶어서 친구들에게도 자주 물어봤다. "너는 앞으로 뭐 할 거야?". 공무원 같은 '직업'이 아닌 진짜 '꿈'을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혹시 있을까 싶어서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친구들에게 묻지 않는다. 대다수의 친구들이 어차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는 거부하고 싶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공무원 수험서를 펼치게 될 거란 것을. 끝내 공무원을 하지 않다고 한들 공무원이 우리에게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최고의 선택은 공무원이다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이 치러진 9일 오전 시험장인 서울 경복고등학교 정문에서 경찰과 감독관이 보안 근무를 하고 있다.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이 치러진 9일 오전 시험장인 서울 경복고등학교 정문에서 경찰과 감독관이 보안 근무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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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공무원 시험을 권유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아들의 꿈과 장래희망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라 겪어온 사회를 비추어 지금의 사회를 이해하고 미래의 한국을 들여다볼 때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가끔 나 역시 '나는 공무원에 맞지 않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불안할 때가 있고, 군대에서 행정병 역할을 한 것을 떠올리며 '그래도 그때 괜찮게 한 것 같은데 안되면 공무원 시험 준비해볼까'라고 미래를 잰다.

'헬조선'에는 크나큰 벽들이 있다. 먼저 '인서울' 혹은 '명문대'라는 학벌의 벽이다. 그 벽 안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무한경쟁을 하게 만들고, 살아남아야 벽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벽은 대부분의 학생을 절벽 끝으로 밀어낸다. 불행히도 여기서 살아남은 학생들 역시 '정규직 취업'이라는 벽 앞에서 좌절한다. 운 좋게 그 벽도 통과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한 사람들은 40줄의 나이에서, 혹은 그 전에 '퇴직'이라는 벽 앞에 선다.

그 수많은 경쟁들에서 살아남아 회사에서 삶을 이어간다 한들 개인의 여가나 삶은 사라지고 만다. 언젠간 퇴직해 '치킨집'을 해야 한다는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이에 비해 공무원이 된다는 건 국가의 안전망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생 내내 이어지는 '경쟁'의 벽에서 밀려날 일 없이 '벽 안'의 안전한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다행히 아직 한국에선 공무원은 '언제든 교체 가능한 기업의 부품'이 아니라 최소한 '사람'이긴 하니까.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비극, 이제 시작일지도...

 결국에는 이렇게 되니까 공무원이다
 결국에는 이렇게 되니까 공무원이다
ⓒ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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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아버지는 예전처럼 내게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게 어떨지 묻지 않는다. 내 꿈을 듣고 나서는 "알았다"고 하시며 "그래도 공무원 시험이 너랑 잘 맞을 것 같긴 한데"라고 말을 줄일 뿐이다.

내 주변의 친구들 몇몇은 연락이 잘되지 않는다. 연락이 되더라도 만나기는 어렵다. 그들은 이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그래, 뭐. 공무원이 최고지. 공무원 준비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 거지 뭐"라고 말을 건네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수험생활을 위로한다. 그들의 어둡고도 기나긴 수험생활이 그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물론 그와 동시에 군대에서 만난, 행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결국 늦은 나이에 입대해 괴로워하던 선임의 모습도 떠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지만...

지난 1월에는 공무원이 되었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1년간 위장 출근했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결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얼마 전에는 7급 공무원에 합격하지 못해 삼엄한 경호를 뚫고 정부 서울청사에 들어가 자신을 합격자 명단에 넣는 위조행위를 하다 걸린 공시생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그 뉴스를 보며 하인리히의 법칙을 떠올렸다. 큰 재해가 1번 발생하기까지 29번의 작은 사건과 300번의 사소한 사고가 있었다는 1:29:300의 법칙.

올해 서울 7급 공무원에 약 15만 명이 몰려 최고 경쟁률은 288대 1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7급 국가직 응시자는 약 6만 명, 올해 9급 국가직 응시자는 약 22만 명이다.

마침 오늘(9일)은 9급 국가직 필기시험이 있던 날이다. 경쟁률은 53.8대 1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만든 '벽'이 있는 한 공무원 시험 열기는, 또 공무원 준비생들의 사고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지금까지의 사고는 이제 시작을 알리는 1:29:300의 '300'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공무원#헬조선#최효훈#공무원 시험#공무원 시험 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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