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하루 10킬로미터는 기본, 30~40킬로미터를 걸을 정도로 걷는 것을 좋아했다. 일산 호수공원도 자주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나무맹'이라 할 정도로 나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늘 수많은 나무들과 함께 숨 쉬고 걸었음에도 나무들이 특별하게 와 닿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그에게 어느 날 우연히 안개나무와 박태기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홀딱 빠져버리고 말았단다. 그리하여 그날부터는 나무를 보려고 호수공원에 매일 갔고, 매일 만나는 나무들을 더 알고 싶어 수많은 나무 관련 책들을 읽다보니 수많은 나무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매일 만나는 나무들을 관찰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책으로 쓰는 것이 어떤가? 제의까지 받을 정도로 나무 박사가 됐다. <호수공원 나무 산책>(이상북스 펴냄)은 이렇게 나온 책이다.
'나무를 소개하는 책에서 이런 표현을 봤다. "나무를 동정한다." 동정이 무슨 뜻일까 한참이나 생각했다. 궁금해서 사전을 찾았다. 동정은 식물 식별이란 뜻이었다. "생물의 분류학상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의하는 일." 식물 용어가 일반인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식물학이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일이고 즐길 수 있는 일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나무와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가들만 독점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현재 쓰는 나무 용어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나무의 세계를 폭넓게 알기 더 어렵게 한다. 어려운 용어는 그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나무에 대한 관심을 덜 갖게 만들고 나무 공부를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삶을 정서적·육체적으로 풍부하게 해주는 나무 공부를 못하게 막는 것이다.' - <호수공원 나무 산책>에서.공감. 이런 이 책에서 만나는 '동정'의 바람직한 쓰임에 대한 지적이 반갑다. 나무와 풀에 빠져들면서 저자와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무 관련 책만이 아니다. 야생화 관련 카페에서도, 심지어는 곤충 관련 글에도 '동정'이란 말을 자주, 그리고 즐겨 쓰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보곤 한다. "식물의 명칭을 바르게 정의한다"란 본래의 뜻과 달리, 어느 곳의 식물을 보러가거나 곤충을 관찰하러 간 것 자체를 '동정한다', '동정했다', '동정기'라고 쓴 글들을 그간 참 많이 접했다. 지금도 종종 접한다.
전문가들이 주로 쓰는 전문용어를 쓰면 그쪽으로 아는 것이 많아 보인다는 기대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쓰니까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쓰는 것이 맞다고 알고 있어서? 여하간 전문가들이 그리 쓰니 일반인들이 당연하게, 그리고 뜻과 달리 쓰는 것일 게다.
어떤 식물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식물이나, 식물의 어떤 사실을 알리자는 것일 터. 그렇다면 최소한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글만큼은 '동정'처럼 대체적으로 전문가들이나 이해할 용어보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나 표현으로 쓰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요즘 나오는 일반인 대상의 책들은 식물 용어를 우리말로 쉽게 고쳐서 쓰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제는 우상복엽, 장상복엽이란 어려운 말보다 깃꼴겹잎, 손모양겹잎 등으로 쓴다. 열매 용어도 쉬운 우리말로 하나하나 고쳐 썼으면 싶다. 견과는 굳은열매, 구과는 방울열매, 삭과는 튀는열매, 시과는 날개열매, 영과는 이삭열매, 장과는 물렁(물)열매, 핵과는 씨열매, 협과는 꼬투리열매로 쓰면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 - <호수공원 나무 산책>에서.도시를, 특히 서울을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삭막한 곳'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의 글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하곤 한다. 그만큼 살기 힘들고 팍팍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그들의 심정이 헤아려지기도 하나 그래도 가급 고쳐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울러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그에게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자라고 있는 풀과 나무가 보이는 여유'가 생기길, 이왕이면 풀과 나무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곤 한다. 이 책의 저자처럼, 언젠가의 나처럼 말이다. 미처 못보고, 몰라서 그렇지 서울 한복판에도 매우 많은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5월 어느 날, 경기도의 한 낡은 아파트를 지나다 우연히 만난 이후 해마다 이즈음이면 모과나무가 있을 만한 곳을 기웃거리곤 한다. 시골태생이라 모과가 노랗게 익어가는 것을 어지간히 보고 자랐는데도 기억에 전혀 없던 모과나무 꽃이라 충격이 컸다.
이후 모과나무 꽃이 보고 싶어 모과나무가 있을 법한 아파트 단지나 관공서 화단, 주택가 근린공원 등을 찾아다니노라니 꽃사과나무 꽃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꽃일까? 이름을 알아가다가 '6개의 작은 꽃송이들이 모여 피는 꽃사과나무는 평균기온 18도가 지속되면 꽃망울을 터트린다는 것, 그런데 어김없이 시계방향으로 꽃송이들이 피어난다'는 것까지 알게 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와 같은 생활공간에서 나무나 풀을 만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일부러 가야하는 식물원보다 식물에 대해 알기에 더 좋은 곳으로 손꼽고 있다. 가까이 있어 그만큼 자주 찾을 수 있고, 무엇보다 어떤 식물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물푸레나무는 키가 10미터 정도 자라는 큰키나무다.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게 변한다는 데서 이름이 왔다. 수청목(水靑木)이라고도 한다. 나무 질이 단단하고 탄력이 좋다. 서당 아이들에게는 공포였을 회초리로 쓰였고, 농사도구인 도리깨로도 쓰였다. 도끼자루, 괭이자루로도 쓰였다. 조선시대에는 죄인의 볼기를 치던 곤장을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 버드나무나 가죽나무로 만든 곤장이 단단하지 않아서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물푸레나무는 쓰임새가 많은 나무였다. 그래서인지 일찌감치 베어져 오래되고 키가 큰 나무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한다. 지금은 야구방망이를 만드는 목재로 쓰인다. 정원수, 공원 풍치수로도 많이 심는다. …호수공원 만국기광장에서 공예품전시판매장 방향으로 가면 출구가 나온다. 이곳 녹지에 물푸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또 학괴정에서 자연학습원 방면으로 가면 덩굴식물 터널이 있는데, 이곳 호숫가 옆에 물푸레나무가 무리로 자란다.' - <호수공원 나무 산책>에서.나무나 풀을 좋아해 그 곁에 자주 있다 보니 나무나 풀꽃의 이름을 묻는 사람들도, 아이에게 이름을 알려주며 가는 모습도 자주 만나게 된다. 어른들이 조금만 더 알고 있어도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것들을 알려줄 수 있고, 그로 아이들이 생명의 신비나 자연의 힘 등을 훨씬 빨리 알게 될 텐데 싶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일산의 호수공원처럼 규모도 크지 않고, 많은 나무가 자라진 않겠지만 내가 모과나무 꽃이나 꽃사과나무 꽃을 만난 아파트단지나 근린공원, 학교 등에도 다양한 나무들과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많은 풀들이 자라고 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이 풀과 나무를, 그리고 자연을 만나고 알아가는데 결코 부족함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호수공원 나무 산책>,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들은 어느 날 내게 충격을 준 모과나무와 식물 알아가는 재미를 준 꽃사과나무, 옛날에나 지금이나 쓰임새도 많고 나무 이름 설명하기에도 좋아 아이들에게 알려주면 정말 효과적일 물푸레나무 등 대략 120~180가지. 호수공원에서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공간인 아파트나 공원, 학교 화단에서, 그리고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나무들이다. 그래서 우리 곁의 나무들을 알아가는 데 더없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호수공원 나무 산책>(김윤용) | 이상북스 | 2016-04-07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