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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항쟁 36주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5.18정신의 요체는 민주·인권·평화라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민주·인권·평화의 5.18정신을 현재화하고 있는 현장과 사람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네 번째로 오월창작가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가수 김원중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노래인생 30년을 맞이한 가수 김원중. 그는 여전히 '오월광주'를 산다.
 노래인생 30년을 맞이한 가수 김원중. 그는 여전히 '오월광주'를 산다.
ⓒ 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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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섬> <직녀에게> 등 누구나 알만한 히트곡도 있다. 여전히 전국 각지로 공연을 다닌다. 그런데도 그는 주 활동무대로 서울이 아닌 광주를 고집하고 있다. 노래 인생 30년을 맞이한 가수 김원중 이야기다.

"한국은 서울과 지방으로 나눌 만큼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 서울동, 광주동, 부산동 등 난 각 정주공간을 이렇게 동네 개념으로 본다. 현실적으로 서울에 경제적 문화적 집중이 있다는 것 인정한다. 하지만 서울은 용광로와 같은 거대도시여서 나와 같은 개인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을 녹여버리는 느낌이다.

광주에 산다는 것은 이 땅이 내게 주는 향토색의 양분을 자연스럽게 섭취하고 내 디엔에이(DNA)에 저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달거리공연을 체코에서 보고 전화 거는 세상이다. 거주하는 공간 개념은 중요치 않다. 오히려 가수가 음악적으로 향토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 많고 많은 동네 중에 하필 광주다. 그래서 그의 음악엔 광주 이야기가 많다. 그가 노래인생 30년을 맞이해 이번에 발표한 음반에도 역시 광주 이야기가 많다.

"보고 느낀 것을 추려냈을 뿐인데 광주에 관한 이야기가 많더라,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되더라. 2천년 전에도 광주에 달이 뜨고, 사람이 살고 물이 흘렀듯이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달이 뜨고 사람이 살고 물이 흐른다. 이렇듯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성을 획득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렇게 보편성을 이룬 가장 광주적인 노래가 가장 세계적인 노래가 되는 것이다."

그 광주에 다시 '오월'이 왔다. 가수 김원중을 '스타'로 만들어준 노래 <바위섬>이 80년 오월에 학살당한 광주를 위로하는 곡이었다는 것은 운명의 역설이다. 가장 잔혹한 학살의 상처를 그는 가장 담담하고 소박하게 어루만졌고, 세상은 눈물을 감춘 그의 진혼곡에 갈채를 보냈다. 가수 김원중에게 오월은 무엇인가.

"그냥 가수 김원중의 오월이 아니다. 5.18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가수 김원중의 오월이다. 그 당시 학생이었고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군을 향해 첫 번째 돌을 던졌던 가수 김원중의 오월이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몽둥이를 피해 도망갔던 전남대학생 김원중의 오월이다.
그 사건도 충격적이었지만 두려워서 도망가 숨었던 것도 내겐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 않지만 오월은 내게 천형(天刑)같은 것이다. 이 정도했으면 할 만큼 했지 않나 싶지만 아무리 노래하고 또 노래해도 그날의 빚, 그날의 책임감은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더라.

그런 점에서 나는 '오월의 일꾼' 같은 존재다. 광주의 오월에게 빚진 마음, 오월의 슬픔 같은 것을 음악을 통해 자부와 긍지, 즐거움이 있는 사명감으로 바꾸어가는... 그래서 지치지 않는다." 

노래인생 30년, 가수 김원중은 자신을 "광주가 준 사명감을 즐겁게 노래하는 '오월일꾼'"이라고 표현했다.
 노래인생 30년, 가수 김원중은 자신을 "광주가 준 사명감을 즐겁게 노래하는 '오월일꾼'"이라고 표현했다.
ⓒ 강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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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월광주는 승리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그리고 "여러 문제를 풀 해답이 오월광주에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월광주를 바라보는 시선엔 여전히 써늘함이 묻어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빛이 역력하다.

"사람들이 오월에 피로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진정한 오월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오월은 굉장히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오월은 승리했기 때문이다. 불의에 굴종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정신, 배운 사람 안 배운 사람 가릴 것 없이 정의를 위해 함께 피 흘렸던 민주 정신, 무정부 상태의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던 주먹밥의 나눔 정신...

이 시민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흔히들 말하는 '오월에서 통일로'이다. 세계 경제 수출입 규모 7위 된다는 나라가 어떻게 멀쩡히 살아있는 부모 자식이 만나지 못하는 이 지경을 방치할 수 있나. 오월이 남북 분단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듯 오월은 다시 분단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분단문제를 해결할 에너지와 씨앗을 오월광주가 만들어준 것 아닌가."

광주학살이 지나간 금남로에서 그는 전국의 음악인들과 함께 '오월거리 음악제'를 시작했었다. 아직은 어두웠던 독재의 시절, 세상이 '딴따라"라고 조롱하던 이들이 학살의 거리에서 노래로 저항을 했던 것이다.

그 '오월거리 음악제'는 이젠 5.18행사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어엿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오월거리 음악제'가 낳은 또 하나의 위대한 유산이 있다. '오월 창작 가요제'다. 광주를 주제로 만든 창작곡들이 경연을 하는 이 색깔 있는 창작가요제가 벌써 6회째를 맞았다. 15일 저녁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2016 오월창작 가요제"에서 그는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광주를 고리로 사랑이며 민주정신, 실업문제, 빈곤 등 1년이면 최소한 500곡이 넘는 창작곡이 만들어진다. 포크, 록, 힙합, 댄스, 트로트 등 장르도 다양하다. 광주가 해마다 500,600곡의 창작가요를 만들어내는 문화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중요하고 멋진 일인가.

15일 밤에 본선 진출 10개 팀이 빗속에서 마지막 경연을 치렀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탓이겠지만 가사내용이 진지한 무게가 약간 떨어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재기 발랄하고, 장르 다양하고 열정 좋은 창작가요제 본선이었다.

한번 생각해보라, 80년 5.18광주와는 아무 상관없는 세대가 오월광주가 깔아준 판 위에서 자신의 끼와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보다 더 파급력 있는 오월정신 계승과 확산이 어디에 있는가. 이 가요제 매우 소중하게 키워가야 한다."

노래인생 30년을 맞이한 가수 김원중의 6집 앨범.
 노래인생 30년을 맞이한 가수 김원중의 6집 앨범.
ⓒ 김원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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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인생 30년에 그는 "김원중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고 한다. '김원중 같은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 그가 발표한 새 음반은 전체적으로 목소리에 힘이 빠진 상태다. 한 음악평론가의 표현처럼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사자 소리"와 같은 기백은 사라졌다.

하지만 양철지붕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난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을 위무하는 '김원중 같은 노래'다. 어쩌면 광주는, 오월은 그렇게 위로받고 싶은지 모른다.


태그:#김원중, #5.18, #광주, #금남로, #가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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